세월 참 빠르게 많이도 흘러 갔다. 내가 처음 이곳을 다녀 간지도 강산이 세번 바뀐다는 삼십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동안 이곳을 일년에 한 두번은 빠짐없이 다녀갔었다. 그리고보니 그때마다 나와 함께 이곳을 다녀 갔던 산벗들이 꽤나 여러명이다. 그중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 산벗들도 여러명이다. 그.리.운.사.람.들..
오늘은 나와 20년 이상 함께 산행을 했던 산벗들과 오늘 15년만에 이곳을 함께 산행하기로 했다. 모두 오랫만의 길 없는 먼산의 오묘하고 신비로운 산행에 빠져서 들 뜬 마음으로 산행 준비를 하고 있다.
길 없는 먼산의 들머리는 진동계곡 건너편이라 신발을 벗고 개울을 건너야 한다. 점봉산 동남쪽에서 시작한 진동계곡은 5월까지는 얼음장 물이지만 6월이 되면 신기하게도 물은 따뜻하다.
유순한 진동계곡물을 건너 본격적인 길 없는 산행이 시작되는 협곡으로 들어섰다. 이 협곡은 울창한 천년림으로 조성되어 있는 남한에서 몇 곳 안남은 오지의 심산유곡이다.
모든 것들이 언제나 항상 [있는 그대로]의 형상으로 존재해 있던 협곡은 뜻밖에도 계곡 초입부터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지난 삼십년동안 매년 들락거렸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라 어리둥절하였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저 나무들이 뿌러지고 넘어져 있는 것일까~? 그것도 한 두 그루의 나무가 아니고 계곡에 있는 절반의 나무들은 넘어지고 뿌러저 아무렇게나 딩굴고 있었다.
나무 중에서도 잘 뿌러지지 않기로 유명한 박달나무와 물푸레나무 같은 나무들이.. 최소 50년에서 100년정도 되는 나무들이..그러니까 나무의 수명으로는 청년기에 해당하는 나무들이 무슨 연유로 속절없이 뿌러진걸까~?
일반적인 상식범위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협곡속으로 들어 갈수록 심오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궁금증은 잠시 뒤로 미루었다. 협곡으로 들어 갈수록 앞을 가로막는 뿌러지고 넘어진 나무들 때문에 고민에 빠젔다.
애시당초 길 없는 먼산산행이라 마음의 준비을 당당히 한 팀들이지만 잠시 망설려진다. 꼅꼅으로 뿌러지고 넘어진 나무들을 통과 하기란 장애물경기와 다름없는데.. 어쩔것인가~? 그러나 이 협곡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장애물경기를 하는 수 밖에..^^
첫번째 주자(이사장)의 장애물 통과이다. 산행경험 약 35년의 베테랑 답게 정석으로 가볍게 통과을 하였다. 이사장은 나하고 약 15년전에 이곳을 산행한 경험이 있다.
두번째 주자는 산행경력 약 20년으로.. 전직 산악회 가이드 출신의 김형이다. 작은 체구의 날렴한 몸놀림으로 가장 쉽게 통과를 하였다.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 산행경력이 가장 적은 박사장이다. 산행스타일도 무리수를 던지지 않는.. 그래서 오늘의 길 없는 먼산이 가장 부담이 되는 박사장도 간단하게 통과를 하였다.
그러나 낮은 포복의 자세로 통과할 수 없는 협곡의 급사면 비탈은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며 올라야 했다.
적설량이 많을 때 번갈아 교대을 하며 러셀을 하듯이.. 선두자주가 교대하며 장애물 통과와 비탈길을 올랐다.
더러는 쉬운곳도 있었고..
쉬운 곳을 통과하면 반드시 힘들고 어려운 곳들이 나타났다. 마치 세상살이처럼..^^
단 칼에 두동강이 난 나무들.. 도대체 무엇이 왜 그랬을까..? 처음에는 벼락으로 인한 현상으로 판단했었는데.. 한 두 그루의 나무가 아니고 협곡의 절반에 해당하는 나무들이 뿌러지고 넘어 진 상황으로 보아서 벼락은 아니란 판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바람이..? 태풍의 바람이 할키고 지나간 흔적이란 말인가..? 믿기지 않는 현상이지만 믿어야 했다.
지난 여름 이곳 진동계곡을 강타하고 지나간 태풍의 흔적들이였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되었지만, 난공불락의 장애물통과로 힘들어서 협곡 중간지점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청정계곡수에 조금전의 힘들고 어려웠던 고통스러움을 한방에 날려 보냈다. 유쾌, 상쾌, 통쾌라는 단어의 의미가 가장 적절하게 공감되는 순간이다.
오감이 소통되는 유일한 시간들이다. 눈, 코, 입, 귀, 그리고 피부의 느낌들이 아낌없는 밀애를 즐긴다..^^
진실로 살아 숨쉬는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순간들이다.
지상 최고의 고품질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길 없는 산행을 시작하였다. 협곡 상단부에 도착하자 물소리도 사라지고 너덜지대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곰취산행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완벽한 육산으로 수천년 동안 쌓인 자연퇴비와 조각난 햇빛, 그리고 적당한 바람으로 곰취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삼십년전부터 나만의 무허가 곰취농장으로 운영하던 곳이였는데.. 5~6년전부터 무허가 곰취농장을 침범하는 객들이 있었다.
글자 그대로 무허가 농장이니 내것이라 주장할 수도 없는 일.. 그저 선의의 경쟁으로 나누어 가질 수 밖에..^^ 사실 나야 취미로 무허가 곰취농장을 다녀가지만, 이곳을 5~6년전부터 다녀가는 사람은 인근 지역에 사는 사람들로 일년에 한 철 산나물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내가 한발 양보를 해야 한다. 5월 초순 그네들이 초물의 곰취채취를 먼저 한 다음 지금쯤 이렇게 곰취를 채취를 해도 나는 항상 넉넉하니까...^^
정신없이 곰취사냥을 하다보니 눈에 익은 풀 한 포기가 저 만큼에서 손짖을 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누리대(유리대)이다. 독특한 향취 때문에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특별 대접을 받는 산채이다.
누리대를 몇 포기를 채취하고 돌아서니 저 만큼의 거리에 있는 나무사이에 다섯잎이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헉~! 다섯잎이라면.. 산삼인데, 그것도 이런 심산유곡에서라면 틀림없는 천종산삼이 아니겠는가..^^ 희망찬 기대에 부풀었던 꿈은 곧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노안으로 인한 시력저하로 천남성잎을 착각한 것이다. 흐~
그러나 조금전의 깨어진 꿈을 보상해 주려는 듯, 이번에는 네잎의 산더덕 줄기가 저 만큼에서 웃고 있었다. 최소한 20년 이상은 된 산더덕들이 여기저기 즐비하게 자라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 이상만 채취를 했다.
제 1차 무허가 곰취농장에서 이삭줍기를 하고 능선을 올라서 제 2차 무허가 곰취농장으로 향하였다.
능선길에는 수령이 몇백년 이상 된 고목들이 즐비하였다.
억겁의 세월을 견디기 위하여 스스로 비워내기를 하고 있는 고목들..
바라보는 사람의 느낌에 따라서 이겠지만, 나는 이런 고목을 볼 때마다 위대함이라든지.. 거룩함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게 된다.
스스로 그러한대로 존재한다는 것..
내 영혼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고목들이 있는 이곳은 어쩌면 내 영혼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꿈꾸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던 곳에..
아무런 꺼리김없이 안긴 그 넉넉한 행복감은
선택받은 자들만의 축복이기도 하다.
그리고보니 인생을 살면서 산을 선택받은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얼마 남은 삶인지.. 또 얼마나 내가 산엘 오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먼산을 오를수 있는 그날까지 행복하리라~!
능선에서 제 2 무허가 곰취농장으로 향하다 보니 전에 없던 이런 맷돼지 집들이 수십개가 보였다. 그렇다면 맷돼지의 개체수가 엄청 많이 늘어 났다는 증거인데.. 별로 반갑지 않은 현상이다.
연가리골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안부에는 각종 고산식물들이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아뿔사~! 작년까지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곰취와 병풍취는 오간데 없다.
줄잡아 약 삼백여평이 넘는 곰취농장은 맷돼지들에 의하여 완벽하게 초토화되어 있었다.
망년자실.. 무허가농장이라 이럴수도 있다는 또 하나의 자연의 법칙과 교훈을 배웠다. 하긴, 이 고산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맷돼지이니..그네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한것이므로 내가 뭐라 할 것이냐~!
연가리골의 물줄기 시작점인 이곳은 백두대간 능선상의 1,114m의 이름없는 고지이다.
이곳 주인님들이신 맷돼지들에게 아작 난 무허가 곰취농장을 포기하고 다시 곰취 이삭줍기를 시작하였다. 1,114m 정상 부근에서 곰취 이삭줍기를 하다보니 이른 봄철의 대표적 고급 산나물인 눈개승마(삼나물)가 군락으로 꽃피우기를 하고 있었다.
높은 산 깊은 숲속이라 혼자는 외로웠는지 둘이서 다정스럽게 열매맺고 있는 고산의 대표적 약초인 연령초이다
줄기 크기가 내 팔뚝보다도 굵은 산당귀이다. 지금은 약효가 적으므로 가을에 채취를 해야 한다.
하산길 중간쯤에서 본 함박꽃(산목련)이다. 다음주가 이곳 함박꽃은 절정이 되겠다.
비로서 하늘이 열려 보이는 협곡 중간 부분에서..
다시 협곡을 따라 장애물통과를 하며 하산을 하였다.
한 두곳의 장애물 통과가 아닌 수십곳의 장애물 통과라 기진맥진하며 하산을 하다 잠시 쉬어가기를 하였다.
쉬면서 보니 큰괭이눈풀이 마치 내 손바닥만하다. 그것도 여기저기 엄청난 군락지로 자라고 있었다.
마지막 협곡을 벗날때는 엄청난 짐을 하나 털어 낸 기분이였다. 약 6시간의 산행이였지만 엄청 힘에 겨운 산행이였기에..^^
진동계곡을 건너며 옛날과 비교해 보니 계곡은 많이 변하였다. 수년전보다 현재 계곡의 바닥이 약 1m 정도는 높이 쌓여 있다. 따라서 예전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은 없다.
길 없는 먼산의 무허가 곰취농장의 산행을 마무리하며 뒤돌아 올려다 보았다. 오늘 다녀 온 1,114m 고지를..
모두 적당량의 곰취를 수확하고 무탈하게 하산하여 현리의 허름한 식당에서 곰취와 삼겹살 파티를 하고 해넘이 시간에 아홉살이 고개을 넘어 서울로 향하였다. 먼산이 있어서 행복했던 하루였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옛 사람은 떠나고 없다.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