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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아(姮娥)의 노래 / 대금 : 원장현
“인간의 봄날은 짧았습니다”로
인간의 봄날은 짧았습니다.
나 당신께 죄도 참 많이 지었습니다.
인간의 사랑을 믿지 못한 것은 아니었어요.
돌아가고 싶어요.
당신 참으로 착하고 따스했습니다.
[월궁항아(月宮姮娥):전설에 달나라 궁궐에 산다는 선녀(仙女)]
▒ 원장현 대금명인의 진솔 담백한 예술인생이야기를 듣다.
그 중 마스터 클래스는 각 음악분야에서 명인으로 인정받은 예술가를 초청하여 그 인생이야기를 듣고, 예술적 노하우와 음악전공자와 애호가를 위한 명언을 전한다. 무대에서만 만났던, 최고의 예술가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평론가 및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중강의 사회로 수십년 한길을 걸어온 대금 원장현 명인의 진솔하고 담백한 예술 인생이야기를 듣는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원장현 대금명인은 원광준, 김용기, 오진석, 김동식, 한일섭, 한갑득 사사를 받았으며, 민속음악의 달인 한일섭에게서 완성된다. 지병으로 악기를 불 수 없었던 한일섭은 그를 찾아온 원장현을 구음으로 자신의 음악을 젊은 연주가인 원장현에게 전수한다. 한일섭의 가락을 바탕으로 원장현의 풍부한 음악적 경험과 독자적인 가락은 1985년 30대의 젊은 예술인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완성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를 이어온 대금 연주자 집안에, 끊임없는 노력으로 순수한 대금 자체의 묵같은 소리를 만들어낸 원장현 명인. 특별한 기교 없이도 감동을 주는 원장현의 깊은 대금 소리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본다.
기쁩니다. 이런 연주공간을 제공해 주신 학인당 관계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원장현>
‘대금’이란 용어를 전혀 몰랐다. 그 전에는 ‘젓대’라 했다. 중학교 시절 대금이란 용어를 알게 되었다. 숙부(원광호)께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산조 예능보유자로 계셨는데 이런 집안(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원장현 : 담양군 월산면에 울타리가 대밭으로 되어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대밭 속에서 태어났고, 대나무를 보고, 또 아버지로부터 댓소리를 들으며 자라왔다. 초등학교까지 아름다운 담양에서 자랐고, 중학교 때부터 광주로 나와 대금을 시작했다.
너무 좋았다. 어린 시절 대금을 불지마라 할까 봐 더 열심히 했다.
공부를 했다. 똑같은 가락인데 표현하는 방법이 매일 달랐다. 때문에 미리 연습하지 않으면 배우기 어려웠다. 연습실이 없어 악기들고 산속에 들어가서 연습한 적도 있으며 가까운 사찰스님들께 안 좋은 소리도 듣기도 했다. 힘들게 공부했다.
없었다. 잘 알아주지 않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했고,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스승)한일섭 선생님 같은 경우 간암으로 몇 달 후 돌아가실 분이 셨는데 그런 (배움의)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부했던 것이 오늘날 저에게 큰 자산이 되었던 것 같다.
오른쪽으로 불다보니 집게손가락의 이용이 많은데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그렇게(왼쪽) 불기 시작했고 우연찮게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부셨다, 신윤복의 풍속화에서도 그렇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고, 인도의 반수리라는 악기도 그렇게 부는 것 같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왼쪽) 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파트로 옮겼는데 사실 대금을 반대방향으로 (연주)하니 합주가 안됐다. 국립국악원에서 독주를 권유하여 오히려 큰 행사에서 독주를 많이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왼손으로 연주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다.
윤중강 : 80년대 원장현 선생님하면 대금보다 거문고로 유명한데, 자랑을 부탁드립니다. 원장현 : 당시 국립국악원 민속단에 가야금 할 사람이 없어 우연한 기회에 가야금까지 하게 되었다. 많은 분이 헷갈려 한다. 정체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대금, 거문고, 태평소 등이 있으며 태평소 시나위는 대금연주와 같으며 힘들고 어렵게 독공을 했다. 이 세 가지는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악기이다.
윤중강 : 1985년 국악의 역사의 새로운 흐름, 원장현 류 대금 산조 탄생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원장현 선생님 얘기를 들어보시고 ‘원장현 류’라고 처음 말씀하셨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지만 그땐 30대로 철들지 않았던 때였던 것 같다. 유파는 나이가 70대 정도로 모든 음악을 완성했을 때 붙여 진다고 생각 하는데 말이다. 그때 당시 팜플렛에 '대금산조 원장현류'가 처음 소개되었다. 당시 김호서 선생이 말씀이 ‘연주만 잘하면 되지’ 하면서 힘을 주셨다. 거문고 산조 40분 후 대금산조 긴 산조를 잘 끝냈고, 나쁜 평을 듣지 않았다.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한양대 등 저에게 대금을 배운 많은 유명한 교수님들 있어 뿌리를 잘 내리게 되었다. 복이 많은 것 같다. 모든 일 들이 순조롭게 이루어 졌다.
표현하는 것이다. 산조는 남도의 시나위에서 발전되었고, 시나위 이전엔 판소리, 육자배기, 흥타령, 무속에서 나오는 구음 등으로 발전, 정립되어 산조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무속인 들이 굿하는 것도 많이 보고 자랐다. 산조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것이다. 그래서 산조를 쉽게 이해 했다.
소리이다. 지금은 학교교육이 우리 음악을 가르치고 있어 국악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배울 기회가 없었던 기성세대들은 우리 음악을 이상하게 평가한다. 플롯과 같은 서양악기의 소리는 자연스럽고, 우리음악을 무섭다 한다면 문제인 것이다. 그 만큼 교육문화가 중요하다. 올바른 국악교육은 반드시 가르쳐야 된다.
즉흥적 연주를 요청받은 전북대 1학년 김원중 학생. 대금산조 중 진양조를 연주한다. 그리고 원장현 명인의 지도가 이어진다. 요성(대금을 흔드는 것)이 우조와 계면조 구분이 되어야 한다. 농음도 남성적인 힘있는 우조와 섬세한 계면조와 구분, 굵게 흔드는 농음과 가늘게 흔드는 농음을 구분해야한다. 무분별한 농음은 자제하고 악보에 표기된 대로 해야한다. 그리고 특히 다루치기가 중요하다. 진양조를 잘하면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모두 잘한다. 진양조에 수법이 다 들어 있고 박자의 탬포만 달라진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즉흥 연주를 해준 학생에게 마스터는 원장현 류 산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음악도 변한다. 독특한 개성으로 자신의 세계를 펼쳐라'
.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 자신의 예술세계를 포기했다. 집사람의 내조를 잘 해줘서 언제나 고맙게 생각합니다.
없기 때문에 그 사람 만에 독특한 개성으로 자신의 세계를 펼치게 해야 한다. 나처럼 돼라는 씩 안 된다. 그 사람만의 독특한 음악이 있는 것이다.
따라가지 못한다는 혹자의 말처럼 한길을 줄 곳 걸어온 원장현 선생님의 예술인생이야기는 가정환경에서 얻은 선천적 재능보다 열정과 노력이 앞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2012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선사한 명인의 진솔한 이야기 만큼이나 후덕한 명인의 배려로 그 날 참석하신 많은 분들과 멋진 기념촬영을 마무리로 원장현 대금명인의 '마스터클래스'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자료출처 / 소리타래 블로그에서..
2012/11/03 - 휘뚜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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