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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타산(頭陀山) 자락에 있는 쉰움산(五十井)과 천은사(天恩寺)산행
2021/11/23 - 화요일 -
강원도 삼척과 동해에 걸쳐 있는 두타산(頭陀山,1,357m) 은 부처님 10대 제자 중 두타제일
(頭陀第一)로 일컫는 가섭존자(迦葉尊者)를 말하는 것으로, 속세의 번뇌를 떨치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으로 명칭 하였을 것이다. 두타산은 명승 제37호 지정되어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그런데 등산객들은 골때리는 산이라 희자해서 부르고 있다..^^
그 두타산 자락에 기묘하고 신비롭게 생긴 암반에 오십여개의 크고 작은 구멍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한자로 오십정산(五十井山)이라 하고, 우리말로 '쉰움산'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오십정과 은사암 주변은 전국 무속인들의 유명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쉰움산 깊은 숲속에 속세와 별천지의 세상을 만들어 숨어 있는 작은 고찰이 하나 있다.
우거진 밀림 같은 그 속에 숨어 있는 절 이름은 천은사(天恩寺)이다. 또 바로 인근에는 고려
시대 대문호였던 동안 이승휴거사가 '제왕운기'를 집필한 유적이 있다.
서울에서 동해시로 가는 KTX 기차..청량역에서 07시 22분에 출발하여 동해역에 09시 42분에 도착..
정동진역을 자나며 바라본 동해의 해맑은 푸른바다 풍경..
구름 한 점없이 맑은 하늘과 일망무제로 펼처진 동해바다 풍경만으로 카타르시스된 느낌이다.
KTX-이음 기차는 정시(09시42분)에 동해역에 도착하였다.
내가 타고온 KTX-이음 고속열차..청량리역에서 2시간 23분만에 동해역에 도착하였다.
동해역에서 곧 바로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미로면 천은사로 향하였다. 약 25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 천은사는 초겨울 아침의 쓸쓸함으로 짖게 물들어 있는 풍경이였다.
천은사 앞 뜰마당까지 우리들을 태워다주고 되돌아가는 택시..오후에 다시 콜하면 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이곳은 동해시를 벗어나서 택시요금이 복합활증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동해역에서 천은사까지 요금은 33,000원이였다.
천은사(天恩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이며 강원도에서 지정한 제34호
전통사찰이다. 신라 경덕왕 17년 758년에 두타삼선(頭陀三仙)이 백련(白蓮)을 가지고 와서 절을
창건 한 뒤 백련대(白蓮臺)라 하였다.
흥덕왕 4년 829년에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건립함으로써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고려 충렬왕 때는 동안(動安) 이승휴거사가 이곳 용계(龍溪)에 용안당(容安堂)이라는 별장을
짓고 10여 년 동안 대장경을 공부한 후 『제왕운기 』를 저술했다.
71세 되던 충렬왕 30년 1304년에는 별장을 간장암(看藏庵)이라 이름을 바꾸고
전답을 시주하여 절의 재산으로 남게 했다고 한다.
조선 선조 31년 1598년에 청허당 서산(西山)대사가 절을 중건하고 응진전, 백화당, 청연당, 동별실,
설선당, 수검당, 범종각 등 가람을 크게 중창했다. 이 때 절의 서남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른
것을 보고 흑악사(黑岳寺)라 개명하였다.
1899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목조(穆祖)의 능과 5대조·비의 묘인 준경묘와 영경묘를 미로면
활기리에 수축할 떄 이곳을 조포사능에 속해 나라 제사에 쓰는 두부를 맡아 만들던 절로 지정하고
원당사찰로 삼았다. 이후 '임금의 은혜를 입었다'하여 천은사(天恩寺)라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오층석탑(五層石塔)이다.
전체적으로 둔탁한 분위기가 많고, 기단부에는 각면 2구씩하여 팔부신중을 양각하였다.
아침햇살을 듬북 받고있는 곶감..
쉰움산(五十井)과 두타산(頭陀山)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약사전(藥師殿)..
계곡을 따라 산으로 가는 들머리 길에서 뒤돌아 바라본 천은사 전경..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약 30년전에 어느 산악회를 따라 무박으로 닷재에서 두타산을 올랐다가 하산
코스로 쉰움산과 천은사로 하산한 기억이 있다. 그때 천은사 주변은 매화인지 벚꽃인지 활짝
피었는데 두타산은 엄청난 폭설로 눈길을 뚫고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계곡길에 있는 이정목..쉰움산은 약 2km이고 두타산은 장장 5km이다.
계곡에 있는 첫번째 목측교..
계곡은 온통 울불퉁 바위돌에다 낙엽이 덥혀있어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낙엽이 수북히 덮혀있다. 이런 길은 낙엽을 믿고 걸으면 일백프로 당(?)한다..^^
이번엔 철다리이다.
산위의 낙엽이 모두 계곡쪽으로 쓸려 내려왔나보다. 걷기가 매우 불편하다. 마침 내려가는 중년의
남녀 두분의 산객을 만났다. 낙엽 때문에 조심하라는 말을 해 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산객이
아니고 내 직감적으로 쉰움산에 치성(?)을 드리고 가는 인근 마을사람들 같았다.
오늘 산행중에 유일하게 만났던 사람들과 헤어지고..
조금은 걷기 쉬운 길을 따라 가니..
능선으로 가는 길은 온통 굴참나무 길이다.
이곳 너덜지대부터는 돌바닥이 잘 정리되어 있어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조망이 열리는 곳에서 잠시 뒤돌아 동해바다쪽을 바라 보았다.
산 위로 올라서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암릉이 시작하는 곳에서부터는 금강송(또는 적송)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계곡쪽 사면은 굴참나무 군락지이고..암릉 위쪽으로는 대단위 금강송 군락지이다.
이곳의 금강송들은 대체로 쭉쭉빵빵형이다.
철 없는 진달래꽃이 반기고 있다.
두꺼비일까..? 개구리일까..?
금강송 향기 가득한 군락지에 있는 암릉 쉼터에서..
내가 나를 찾아가는 시간도 잠깐 가져 보고..^^
암릉에는 세월의 깊이만큼 골도 깊게 페여있다.
바위와 더불어 살고있는 금강송들.. 잠시 소나무의 품종에 대해 알아 보자~! 소나무 품종으로 땅 표면
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개로 갈라져 나무 모양이 부채를 편 것 같은 반송(P. d. f. multicaulis)과 춘양목,
강송으로도 불리며 유난히 가지가 곧게 자라 훌륭한 목재로 손꼽히는 금강소나무(P. d. f. erecta)와
처진소나무(P. d. f. pendula), 은송(P. d. f. vittata) 등이 있다.
소나무의 '솔'은 '으뜸'을 의미하여, 소나무는 나무중에 으뜸인 나무라는 뜻을 가진다.나무 줄기가
붉어서 ‘적송(赤松)’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주로 내륙 지방에서 자란다고 ‘육송(陸松)’이라고
부르기도 하며..여인의 자태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고 ‘여송(女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적송은 소나무의 일본 이름이다. 한국의 옛 문헌에서 소나무를 적송이라 부른 예는
없다. 일본이 먼저 세계에 소개하였기 때문에 영어 이름은 일본적송(Japanese red pine)이
되었다 얼마 전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립수목원에서 korean red pi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나무는 잘 썩지 않으며 단단한 소나무 목재는 벌레가 생기거나 휘거나 갈라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궁궐이나 사찰을 만드는 데 쓰였다. 특히 궁궐을 짓는 목재는 소나무 외에는 쓰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강원도와 경북 울진, 봉화에서 나는 춘양목은 결마저 고와 최고급
목재로 이용되었다.
소나무의 약재로 솔잎은 싱싱한 것을 따서 쓰는데, 통증과 피를 멎게 한다. 송진은 고약이나
반창고를 만드는 데 쓰는데 염증을 빨리 곪게 하고 고름을 빨아 낸다. 송화 가루는 기운을
돋우고 피를 멎게 한다.
소나무를 베어 내고 7~8년이 지난 뒤에 뿌리에서 외생근균이 자라 버섯이 생기는데 이것을
‘복령’이라 하며, 입맛을 돋우고 구역질을 없애 주어 중요한 약재로 썼다. 그 밖에도 소나무
씨앗, 속껍질, 봄에 나는 새순도 약으로 썼다.
민간 요법으로 막걸리 1리터에 솔잎 300~400그램을 넣고 밀봉하고 15일이 지난 다음 찌꺼기를
버리고 한 번에 한 잔씩 하루 3번 공복에 마시거나, 생솔잎을 찧어서 넣는다. 소주 3리터와 섞어
일주일에서 열흘간 두었다가 하루 3번 공복에 먹으면 습기가 많은 곳에서 생활하거나 중풍
때문에 생겨난 요통에 효과가 있다.
소나무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나무로 매화와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에 포함
되었다. 소나무는 애국가에 등장하는 나무이고, 어린아이가 태어났을 때 금줄에 거는 생명을
나타내는 나무이다. 한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중에 소나무가 40종목으로 가장 많다.
은사암이다. 절집의 부속 암자가 아니고 산 아래 미로면 사람들이 기도하고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조금전에 만났던 두 사람도 산객이 아니고 이곳에 치성을 드리고 내려가는 중이였나보다.
강원도 일대에는 산악신앙의 일종으로 '산멕이'라는 풍습이 있다.
산에게 음식을 먹인다(대접한다)는 뜻으로 붙은 이름인데..
산신령을 포함하여 산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신령들을 위하고 대접하고자 지내는 제사이다.
내미로리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날을 잡아 쉰움산(五十井)으로 산메기를 간다.
사람들은 삼신메와 한지, 실 한 타래를 가지고 가서 바위에 걸어놓은 뒤 치성을 드린다.
쉰움산(五十井) 중턱에 은사암이라는 바위 절벽이 있는데..
이 자리도 오십정과 마찬가지로 쉰움산을 찾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치성을 드리는 자리이다.
원당(五十井)과 대비하여 은사암을 '산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당(五十井)까지 올라가기엔 힘들다 하는 사람은 산당(은사암)에서 기도한다고 한다.
은사암(산당)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다. 맛있는 간식도 하면서..^^
오늘 이곳 쉰움산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인데..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장난이 아니다.
은사암(산당)은 계곡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아직 바람은 강열하지 않는데..바람소리는 요란하다.
은사암에서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좌측 길 없는 암릉으로 올라갔다.
직벽 위에 작은 돌탑들이 보이고 있다. 좌측 암릉은 릿지코스로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다.
지나온 릿지코스 전경..
암릉 위 넓은 마당바위에는 작은 돌탑들이 무수히 있었다.
돌탑광장에서 바라본 오십정(五十井) 정상..
마당바위에 있는 돌탑들은 절반 이상이 허물진 상태로 버려져 있다.
누구인가 오래전에 소망과 기원으로 돌탑을 정성껏 만들어 놓은것 같은데..
지금은 관리가 되지 않아 절반은 허물어진 상태이다.
나도 소망과 기원을 돌탑에 빌어 보았다. 오늘 산행을 즐겁고 무탈하게 해 달라고..^^
돌탑 부근에서 내려다 본 협곡 풍경..
돌탑이란 민속신앙물 중 한 유형이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돌을 쌓아 올린 실체로서..
마을 수호의 기능을 하기도 하고, 개인의 소망과 기원을 담아서 쌓은 것들이다.
그러면 이곳의 돌탑들은 과연 누가 어떤 의미로 쌓았을까..?
어째던 모든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이 담긴 돌탑마당에서 줌으로 당겨서 바라본 두타산 전경..
생을 마감한 노송 한 그루..
다시 금강송 대단위 군락지이다.
올 곧게 선체로 생을 마감한 노송 한 그루..
수령이 몇 백년 이상된 금강송들이 쭉쭉빵빵 즐비한 노송길..
요절한 노송 한 그루..어느 해 겨울 눈보라에 쓰러진듯..아니면 어느 해 태풍에 쓰러진 것일까..?
금강송의 향기가 불어오는 바람에 진하게 묻어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초겨울의 헤맑은 하늘과 테르핀 향기 가득한 금강송 숲길..
그냥 걷기만해도 몸도 마음도 정신도 모두 카타르시스가 된 기분이다.
쉰움산(五十井) 낙락장송(落落長松)의 금강송 숲길은 최고의 힐링의 길이다.
금강송 숲길의 힐링구간이 끝나는 안부 부근에 샘이 있었다. 관리는 되고 있지 않으나 샘물은
조금씩 나오고 있는듯 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688m의 삼각점이 있는 쉰움산은 갔다가
되돌아 와야 하는데..조망도 없고 하여 그냥 생략하기로 하였다.
곧 바로 오십정(五十井) 우물이 있는 쉰움산 정상으로 갔다.
겨울철 안전을 위해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지금이야 필요없는 밧줄이지만 한겨울철에는 안전을 위한 요긴한 밧줄이다.
밧줄구간을 올라서 뒤돌아 바라보니 688m의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조망되고 있다.
오른편으로 시야를 돌려보니 갈메기산과 그 넘어 응봉산(매봉산)과 육백산이 조망되고 있다.
쉰움산(五十井)은 해발 670m 봉우리이고 앞산의 높이는 688m이니 높이로는 저곳이 쉰움산
정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모양인데..쉬움산 이름값으로는 670m봉이 정상이다.
오른쪽 릿지 암봉에 올라서서 바라본 명품송 한 그루와 뒷편의 688m봉 전경..
암봉에 올라서니 동해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빛내골(비린내골)쪽에서 불어오는 강풍은 순간적으로 초속15~20m 정도이다.
따라서 기온도 급강하하여 손이 시릴 정도이니 체감온도는 영하권인듯..
암봉 조망처에서 바라본 비린내골(또는 빛내림꼴) 바위협곡 전경..
비린내골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임진왜란때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그 썩은
냄새가 비릿하여 '비린내가 나는 골'로 불리워지다가 '빛내골'로 바뀌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설은 옛 묵호항에서 잡은 생선을 이 골짜기에서 씻어 비린가나는 골짜기라고 비린내골로
부르다가 빛내골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설이 정설인지 나는 모른다. 어째튼 저 골짜기의
협곡풍경은 최근 핫하게 떠오르는 배틀재 바위길과 견주어 손색이 없겠다.
쉰움산(五十井) 정상 가기전의 암릉길에서 바라본 기암과 두타산 전경..
쉰움산(五十井) 정상 가기전의 암릉길에서..
쉰움산(五十井) 정상 가기전의 암릉길에서..
쉰움산(五十井) 정상 가기전의 암릉길에서..
쉰움산(五十井) 정상 가기전의 암릉길에서..
쉰움산(五十井) 정상 가기전의 암릉길에서 줌으로 당겨본 은사암(산당) 전경..
정상으로 가는 암릉 릿지길은 맨손으로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어서 왼편으로 내려셨다.
강열한 돌개바람을 막아선 봄날의 햇살 같은 따뜻한 암벽에 기대여 잠시 망중한의 시간을 보냈다.
암릉에서 내려서 우회길을 조금 따라가면 성벽같은 돌탑이 나타났다.
그리고 주변에는 이상하게 유리파편과 옹기 조각들이 즐비하게 흐터져 있었다.
처음에는 이 높은 산위에서 유리병과 옹기조각들을 이렇게 많이 깨트려져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무당들이 굿을하고 마지막으로 옹기나 병을 깨트리는 의식을 본적이 떠올랐다.
쉰움산(五十井) 정상 부근의 풍경..
쉰움산(五十井) 정상 우물에는 벌써 얼음이 꽝꽝 얼은 곳도 있다.
쉰움산(五十井) 정상의 우물들..
쉰움산(五十井) 정상 마당바위에는 큰 우물 구멍도 많지만 아주 작은 구멍들도 엄청 많다.
쉰움산(五十井) 정상석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중..
쉰움산(五十井) 정상석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중..
점점 더 강풍이 휘몰아 치고 있다.
한 겨울 백두대간 능선이나 설악 대청봉에서 만나던 강풍 수준이다.
오십정(五十井) 우물 뒤로 삼척항 바다가 조망되고 있다.
대체로 큰 오십정(五十井)에 해당되는 우물..
바람이 잠잠한 틈을 타서 이동을 하다.
오십정(五十井) 정상석으로 가는 중..
오십정(五十井) 정상석으로 가는 중..
쉰움산(五十井) 정상석에서 바라본 두타산 전경..
쉰움산이란 이름은 능선 꼭대기 암반지대에 움(구멍, 우물)이 50여 개가 있다고 붙은 것으로 ,
한자로는 오십정산(五十井山)이라고 쓰기도 하며 실제로 우물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사실 흔히들 말하는 '쉼움산 정상'은 산봉우리 정상이 아니라, 산봉우리와 이어진 능선 꼭대기에
드러난 암반지대이다. 그래서 진짜 정상과 구분하여 '오십정'이라고 하기도 하고, 인근 마을
주민들은 '원당'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 쉰움산 정상에서 맞이한 칼바람과 오십구멍은 오래동안 기억할듯..^^
쉰움산 정상 바위틈에서 마지막 꽃피우기를 하고 있는 바위구절초꽃..
쉰움산 정상에서 바라본 두타산 전경..
다시 한번 빛내골(비린내골)을 담아 보았다.
오른쪽 암릉은 설악산의 천화대 암릉을 많이도 닮은 것 같다.
줌으로 최대한 당겨서 담아 보고..
쉰움산(五十井) 정상에서 바라본 688m봉 전경..
쉰움산(五十井) 정상에서 바라본 갈매기산 방향..응봉산(매봉산)과 육백산이 육안으로 조망되었는데..
내미로 방향..뒤로는 삼척항 동해바다 전경..
생을 마감한 명품 금강송 한 그루의 자태..죽어서도 아름모습을 우리들에게 남겨 주고 있다.
멈출기세가 전혀 없는 강열한 동해바다 바람에 체감온도는 급강하 한다.
사진을 찍는 짧은 시간인데도 장갑을 끼지 않은 상태에서 손이 꽁꽁 언 느낌이다.
조금은 여류롭게 쉰움산(五十井) 정상에서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동해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훼방을 하고 있다.
내미로 방향의 산군들..
갈매기산 방향..
흐미~ 못 참겠다. 칼바람과 맞서봐야 좋을게 없을것 같아서 병풍바위쪽으로 이동하였다.
쉰움산(五十井) 정상의 이런 풍화혈은 나마(gnamma) 라고 하고..
마이산 풍화혈 같이 벽면이나 사면에 형성된 것은 타포니(tafoni)라 한다고 한다고..
잘 생긴 금강송 한 그루의 자태..
병풍바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잡석지대..모든 바위들이 곤두서 있다.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 지대에 있는 명품송 잎과 에머랄드빛 하늘색..
명품송이 있는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에 있는 기도처..
병풍바위 지대에서..
병풍바위에 자생하는 명품송 한 그루..
이곳의 병풍바위는 한 두 곳이 아니고 여러곳으로 흐터져 있다. 그리고 병풍바위에서
더 이상 두타산으로 진행하지 않고 천은사 방향으로 되돌아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목에서 만난 생을 마감한 금강송의 자태..
생을 마감한 금강송의 자태..
올라 갈 때 본 거북바위와 내려 올 때 본 거북바위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돌탑 마당바위에 도착하였다.
올라 갈 때 못 본 상어바위..
돌탑 마당바위에 있는 풍화혈의 라마(gnamma).. 이곳에도 나마(gnamma)가 여러개 있다.
돌탑 마당바위에 있는 명품송 한 그루..
돌탑 마당바위 광장을 지나 정규 등산로로 하산하였다.
은사암 삼거리..
계곡으로 내려서니 칼바람도 잠잠해지고 낙엽 밟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골 깊은 협곡이다보니 오후 3시가 안되었는데도 벌써 땅거미가 내려 지고 있다.
천은사 약사전 창살 무늬들..대나무와 소나무와 매화나무 전경..
아침에 천은사 절집은 대충 들려 보았으므로 동해고속터미널에서 강남고속터미널로
16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하여 아침에 타고온 택시를 콜하였다.
천은사 절집에서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길..
초겨울 오후의 산사풍경은 쓸쓸하다.
두타산 천은사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니 왼편으로 산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듯한 조형물이 하나 서있다.
이름하여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李承休)선생의 상징조형물이라고 한다.
바닥에 놓여진 4개의 화강암은 삼척의 바다와 산을 상징하며, 가운데 기둥은 동안 이승휴선생의
맑고 강직한 정신문화를 상징하였다고 한다. 글쎄 어찌하여 내 눈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같다.
이곳은 고려 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정치가인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1224~1300)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집을 짓고 살던 터이다. 고려 충렬왕 13년(1287년) 무렵 이승휴는 이곳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서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한 곳이라 한다.
이승휴는 어렵게 벼슬을 얻었으나 강직한 성품 탓에 여러 번 좌천되었다. 이에 어머니의 고향인
두타산 구동(龜洞)으로 돌아와 「제왕운기」, 「내전록」, 「동안거사집」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제왕운기」는 우리나라 역사와 중국 역사를 칠언시(七言詩)와 오언시(五言詩)로 엮은
서사시로,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고 계승 관계를 체계화한 귀중한 자료이다.
「동안거사집」의 '보광정기'를 보면 이승휴는 언덕 위에 용안당(容安堂)을 짓고 여기서 생활
하였다고 한다. 용안당 남쪽에 우물을 만들어 표음정(瓢飮渟)이라고 불렀으며, 이 위에 정자를
짓고 보광정(葆光亭)이라고 불렀다. 보광정 아래에는 연못을 만들어 지락당(知樂塘)이라고
불렀다. 이 내용은 1998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절터와 연못의 흔적, 청자 가마터 등이
나오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쉰움산 오십정(五十井)의 신묘(神妙)한 바위 구멍들을 만나 내 안에 있는 허잡한 모든 것들을 훌훌
날려 버리고 남은 생을 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영위할 수 있도록 소망하고 기원하였다. 초겨울의
고즈넉한 산사를 내려와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콜 한 택시가 도착하여 곧 바로 동해 종합버스
터미널로 가서 간발의 차이로 16시 차를 탑승하여 3시간 30분 후에 강남 고속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오늘도 먼산을 편안하고 신속하게 다녀온 즐거운 하루산행이였다..^^
2021/11/26 - 휘뚜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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