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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하여

[스크랩] [꿈꾸는 백마강]의 노랫말에 얽힌 사연

by 휘뚜루50 2018. 7. 16.

 

▒ [꿈꾸는 백마강]의 노랫말에 얽힌 사연


물새가 우는 금강의 달밤을 노래한 가요시(歌謠詩) '꿈꾸는 백마강'은 세 개의 서글픈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낙화암에 얽힌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이야기가 그 첫째이다. 둘째 이야기는 이 노래가 발표될 당시의 시대 상황과 관련된다.
이 노래가 발표된 것은 1940년,일제의 군국주의가 극에 달했던 때이다.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백제의 멸망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의 내용이 일제하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암울한 현실과 잘 어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금지곡으로 묶이고 만다.


그러나 어인 일인가..? 해방 이후 이 노래에 또 하나의 서글픈 이야기가 보태진다. '알뜰한 당신' '바다의 교향시'
'세상은 요지경' '무정천리' '목포는 항구다' '선창' 등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노래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작사가가

조명암이라는 사실은 최근에야 알려지게 되었다. 시인 조명암은 1928년 금강산 건봉사에서 출가하여 만해 한용운의

가르침을 받았고, 1930년대부터 시와 극작 활동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1948년 월북하여 남한에서는 금기의

인물이 되고만 것이다.


특히 조명암은 북한에서 교육문화성 부상(副相), 평양가무단 단장을 역임하는 등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진 월북 문인들에 대한 해금 조치에서도 제외된다. 그래서 10여년 전까지도

그의 이름은 거론하기 거북한 대상이었고, 그의 노래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작사가로 등재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남한에 남은 시인의 유일한 혈육인 딸이 저작자를 바로잡고 권리를 회복하기에 이른 것이다.
민족 분단으로 인해 한동안 자신의 작품에 이름도 내걸지 못했던 슬픈 사연이 있는 작품인 것이다.


노랫말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서정시와 달리 가요시라서 가지게 되는 몇 가지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시적 화자의 정서를 자연물에 의탁하여 표현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서정시와는 달리 시적 정서를 간접적으로

환기하는 상황 묘사는 최소화하여 제시되고 있다. 즉 일반적인 서정시라면 물새가 우는 백마강 달밤의 정경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음직하다. 그러나 이 가요시에서는 그것이 직접 언급되고 있을 뿐, 시적 정황에 대한 묘사는

최소화해 제시된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여기서 물새가 우는 것은 객관적인 상황 묘사로 볼 수도

있지만, 물새가 마치 잊어버린 옛날을 애달퍼하면 운다는 것은 순전히 시적 화자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시적 화자는

낙화암을 보면서 백제가 멸망할 때 스스로 죽음을 택한 아리따운 궁녀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애달픈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그리고 백마강의 뱃사공에게 배를 저으라고 재촉한다. 갑자기 뱃사공을 제시하는 것은 일종의 시상 전환에 해당하며,

시상은 낙화암 그늘에서 울고 싶은 마음으로 귀결된다.


제2절은 제1절의 정서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지만, 표현상으로는 약간의 변주가 가미되어 있다.
제5행의 경우는 제1절의 첫행이 그러한 것처럼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애절함의 정서를 환기한다. 낙화암 절벽에

매달리듯 세워진 고란사의 종소리는 제1행에서 제시한 백마강 달밤의 물새우는 소리를 좀 더 심화시켜서 애절함을

환기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시적 화자는 마음 속 깊이 애달픈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것이다.


제7행에서는 제3행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시상 전환이 이루어진다. 시적 화자의 내부로만 향하던 애절함이, '누구가

알리요'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외부의 대상을 향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말 그대로 아무도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겉으로는 그리 표현되었지만, 낙화암에서의 애절함이 시적 화자 자신만의 정서는 아닐 것임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마지막 행의 '깨어진 달빛'은 그 함축적 의미가 깊고 울림이 만만치 않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낙화암에서 애달퍼하는

시적 화자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시적 표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망국의 현실에 처한 민족의 심정을 나타내는

시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 꿈꾸는 백마강 / 조용암 작사 임근식 작곡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모치는데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같으니

 

작사가 조명암(본명:조영출)

 

 

▒ 백마강에 대한 소고(白馬江 小考)

 

백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백마강(白馬江)은 충남 부여군을 지나는 금강 구간 16㎞를 부르는 이름이다.
금강이 충북 옥천 등 상류에서는 적등강, 공주지역에서는 웅진강이라 불린 것처럼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라 불린다.


[백제에서 제일 큰 강]이란 뜻의 백마강은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의 물줄기로
사비성을 품고 있는 부소산을 반달처럼 휘돌아 흐른다. 백마강은 일명 백강(白江)이라고 하기도 한다.
강물이 맑고 시원하며 곱기가 마치 비단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시대에는 부여의 옛 명칭
‘사비’를 따 사비수(泗沘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백마강에는 위로부터 지천, 은산천, 구룡천, 금천 등의 하천이 유입하고 있으며 백마강과 이들 하천이
만나는 지역에는 충적평야(沖積平野)가 형성돼 있다. 백마강이 흐르는 부여에는 국내 최대 선사유적지인
송국리 선사 취락지가 입지하고, 백제의 도읍지로서 123년간에 걸쳐 화려한 백제문화를 꽃피웠다.


당시의 백마강은 백제문화를 전파하는 국제해상교통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백제가 막을 내린 후 국제 해상교통로로서의 역할은 사라졌으나 수운으로서의 기능은 근대까지 계속됐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교통로의 역할과 더불어 삶의 터전으로 백마강은 지역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인지 백마강에는 유난히 나루터가 많다. 육상교통에 의해 그 기능을 상실하기 전까지는 지역 간
물자의 교역은 물론 교통로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으며 자연스럽게 나루터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금강하굿둑 건설과 육상교통의 발달로 인해 수상 교통로의 기능과 어업활동 등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백마강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상징성은 여전히 변함없다.


백마강은 또 1300년전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강이다.
백제시대의 중요한 국사를 결정했다는 천정대를 비롯해 백제의 왕궁터와 부소산성 그리고 삼천 궁녀들이
충절과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뛰어내리는 모습이 꽃잎 날리듯 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낙화암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백제의 역사와 전설이 땅속에 묻힌 기와파편처럼 무수하다.


이밖에 부소산성과 구드래 나루터, 황포돛배 등 백제의 유고한 역사문화와 함께 천년을 흘러 내려온 아름다운
강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 약탈당한 문화재가 숱하지만, 아직도 ‘야외박물관’이라는
수식어를 부여할 만하다. 발굴이 진행될수록 묻혔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와 학계는 물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백마강은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강이다.
1990년 금강하굿둑이 들어서기 전까지 밀물 때 하구로부터 64㎞에 있는 부여군 규암면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과거에는 200t 정도의 큰 배는 강경포구까지, 소규모 배(50여t)는 130㎞ 떨어진 충남 연기까지 운항할 정도로

내륙 수운이 발달했다.


바닷물과 함께 뭍으로 온 수많은 어종과 수생생물들이 이곳에서 육지의 기운을 느꼈다. 우여와 황복, 참게,
뱀장어 등 지금은 잊혀진 옛 금강의 회유성 어종들의 경계점이었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가 전화위복을 꿈꾸는 것처럼 백마강도 백제의 전설을 소중히 간직한 채 화려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비록 지금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백제의 도읍이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인구 7만여
명의 소도시로 전락해 있지만 말이다.


백마강 뱃길 복원과 금강 옛 모습 살리기, 백제역사재현단지 등 백제문화권 관광기반 확충사업 등을 통해
백제의 역사와 문화와 백마강의 친수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역사문화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해상강국이자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의 제2의 전성기가

예고되는 셈이다.


[금강의 어제와 오늘전] 부여군 전시회에서는 백마강의 물길과 자연환경, 역사와 문화는 물론 삶의 모습까지도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강을 따라 함께 흐르는 애환과 추억, 사연과 설화가 담겨진 사진 속에서 ‘금강 정신’을
재발견하고 잊혀진 왕국 백제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14/02/02 Mh - Jang

출처 : 산으로, 그리고 또 산으로..
글쓴이 : 휘뚜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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