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산행기

제주도의 봄 (제 1부 마라도편)

휘뚜루50 2019. 8. 30. 11:40
 

▒ 제주도의 봄 [마라도편(馬羅島)] ▒
 


 
큼큼~ 예정에도 없던 제주도 나들이를 2박 3일하고 왔다. 오래 된 지인의 원수값음(?)이라는 희안한
복수전에 휘말려서.. 그것도 부부동반이라는 그렇고 그런 나들이였다. (제주공항에서 본 한라산)
 

 
만 17년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 그때도 지금처럼 왕벚꽃이 한창 필때였다. 왕벚꽃은 일반 벚꽃에 비해 꽃
잎이 크고 화사한 것이 특징이라서 한때 일본이 자기네 사꾸라꽃(벚꽃)이 원산지라고 우기다가 몇해전
우리나라 산림청 식물유전자 기법으로 밝힌 자료에 따르면 한라산이 원산지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면
쪽바리 근성은 [우기기]인가보다. 주변에 [우기기] 잘하는 사람은 쪽바리 피가 흐르는지도 모른다.
 

 
제주공항에서 렌트를 하고 마라도를 가기 위하여 모슬포항으로 향하다 배시간이 넉넉해 잠시 산방산
기슭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바로 앞에는 하멜기념관이고 용머리해안이다. 그리고 좌측의 섬은
형제섬이고 오른쪽 멀리 보이는 구릉은 송악산이다. 그 넘어 희미한 섬이 마라도이다.
 

 
산방산과 산방굴사에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이 산에는 옛날 한 포수가 한라산에 사냥을 나갔다가 잘못해서 산신의 궁둥이를 활로 쏘자
산신이 노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날아와 산방산이 되고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여신 산방덕과 고승(高升)이란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이곳의 주관(州官)으로 있던
자가 산방덕의 미모를 탐내어 남편 고승에게 누명을 씌우고 야욕을 채우려 하다가 이를 알아차린
산방덕이 속세에 온 것을 한탄하면서 산방굴로 들어가 바윗돌로 변해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 200m의 남서쪽 기슭에 있는 산방굴은 해식동굴로 부처를 모시고 있어 산방굴사라고도 하는데,
길이 10m, 너비 5m, 높이 5m 정도이다. 고려시대의 고승 혜일(蕙日)이 수도했다고 하며, 귀양왔던
추사 김정희가 즐겨 찾던 곳이다. 굴 내부 천장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은 이 산을 지키는 여신 산방
덕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 하며, 마시면 장수한다는 속설에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모슬포항이다. 예전에는 가파도와 마라도를 잇는 유일한 포구였다. 모슬포의 모슬이라는 뜻은 제주도
방언으로 모래라는 의미인데.. 어느 허풍쟁이가 제주도 사방에서 한라산 정상을 볼 수 있지만 모슬포
에서는 한라산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못살곳]이란 뜻에서 모슬포라는 말이 유래하였다고
뻥을 처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들 있다. 그리고 모슬포는 6.25 전쟁 당시 육군
제1훈련소가 잠시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마라도와 모슬포 정기여객선)
 

 
모글포에서 약 25분만에 도착한 국토 최남단  마라도 도선장이다. 원래는 가파도를 들려서 45분 걸려서
도착하는데.. 요즘 가파도에서 청보리축제를 하는 관계로 따로 운항을 하여 20여분 단축하여 도착하였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제주도는 3다의 고장이다.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 많은 고장인데 제주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가파도와 마라도는 3다가 더욱 두러진 곳이었다. 그런 가파도와 마라도 이름에 대한
아주 허망스럽게 서글픈 야그가 있어서 여기 소개한다.
 
가파도와 마라도의 이름의 유래에 대한 전설..
 
바람 많고 돌 많은 곳에 여자들만 사는 가파도 마라도에 어쩌다가 남자들이 찾아 들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어쩌다 찾아드는 손님들이었고 남자가 귀한 가파도나 마라도를
찾아오는 남자들은 어쩌면 뭍에서는 인생의 낙오자들이었다.

그러나 여자들만 사는 가파도 마라도에 오는 남자는 그래도 가파도나 마라도 여자들에게는
칙사들이었기에 정도 주고 몸도 주고 온갖 것을 다 내 주었다. 남자들은 빈 말이라도
나중에 다시 오면 다 갚겠다고 했다.

그런 남자들에게 무수한 세월을 속아 온 가파도 마라도 여자들은 그 말을 믿지도
않았기에 갚아도 그만 말아도 그만이라고 자위를 하면서도 뭍의 남자들에게
정도 주고 몸도 주곤했으나 뭍의 남자들은 떠나면 그만이었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 지내 온 제주도 여자들에 의해 이름도 없는 제주도의 외로운 두 섬은
갚아도(가파도) 그만 말아도(마라도) 그만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큼큼~ 뭍의 남자들에게 정도 주고 몸도 주고 온갖 것을 다 준 제주도 여자들이 갚아도 그만
말아도 그만이라는 자위적인 넋두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가파도 마라도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고~ 이 사실을 진작에 내가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 캬캬~
 

 
마라도에는 여러개의 해식동굴이 있는데.. 남대문 해식동굴(↑), 섯해식동굴, 콧배기 해식동굴(↓) 등이
있다. 마라도의 해식동굴은 우리나라 겨울과 여름의 계절풍인 북서계절풍과 남동계절풍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다. 북서해안과 동해안, 남동해안에 높이 30m 안팎의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는 이들 해식동굴은 거친 파도가 암석덩어리에 부딪히며, 침식의 저항이 약한
단층이나 절리층을 따라 이뤄졌다.
 

 
마라도 섬 북쪽에 있는 콧배기 해식동굴
 
백과사전에 기록된 마라도(馬羅島)

면적 0.3㎢, 인구 90명(2000)이다. 해안선길이 4.2㎞, 최고점 39m이다.
한국 최남단의 섬으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11km 해상에 있다.
원래는 가파리(加波里)에 속하였으나 1981년 4월 1일 마라리로 분리되었다.

형태는 고구마 모양이며, 해안은 오랜 해풍의 영향으로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원래는 산림이 울창하였다고 한다.
1883년 영세농어민 4∼5세대가 당시 제주 목사로부터 개간 허가를 얻어 화전을 시작하였는데
이주민 중 한 명이 달밤에 퉁소를 불다가 뱀들이 몰려들자 불을 질러 숲을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 

주민들은 전복·소라·톳·미역 등을 채취하고 관광객을 위한 민박을 열어 소득을 올린다.
용천수가 나지 않아 집집마다 비가 오면 빗물을 모았다가 여과시켜 가정용수로 사용하며,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는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계로 어쩔수 없는 현상들이지만 왠지
옛 모습을 잃어버린 허전함은 메울길이 없더라~! 마라도는 국토 최남단이라는 의미에 환상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봄이 오는 마라도의 전역에 가장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갯강활이다.
 
마라도에 무진장으로 서식하는 갯강활에 대하여..

갯강활(Angelica japonica A. Gray)의 성분에는 휘발성 정유, β-sitosterol, 유기산, alkaloid 등이
함유되어 있어 한방에서 해표산한(解表散寒), 거풍승습지통(祛風勝濕止痛), 이관절(利關節)의
효능으로 사용하는데, 요약해보면..
 
▷ 발산 작용이 강하여 외감성으로 인한 두통과 전신통 및 오한, 열 등의 증상을 다스린다.  
▷ 풍한습(風寒濕)으로 인한 관절통, 근육경련마비, 견갑배통(肩胛背痛), 
▷ 구안와사(입과 눈이 한쪽으로 쏠리어 비뚤어지는 병), 수족을 못 쓰고 말을 못 하는 증상에도 활용되며,
▷ 피부궤양 및 창진(瘡疹) 초기에 오한, 발열, 동통이 있고 땀이 없는 증상에도 쓴다.
▷ 유행성 감기에 유효율이 크게 향상된다. 그러나 빈혈로 인한 사지마비에는 쓰지 않는다.

큼큼~ 참고로 지리산에서 나는 지리강활은 유독성 때문에 약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 개인적
소견으로 마라도 갯강활 역시 지리강활처럼 유독성이 있어 보이므로 사용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현재 전교생이 3명뿐인 초미니학교 (가파초등학교 마라도분교)이다.
큼큼~ 6년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지 않는 이 학교 학생은 좋것따~!
공부못해서 한 맺힌 학생은 이 학교로 전학하면 어떨까..? 캬캬~
 

 
마라도의 옛날집이다. 60~70년대의 건축한 가옥으로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더라~!
 

 
마라도 섬 서편에 군락으로 있는 야생 손바닥 선인장(백년초)이다.
 
마라도의 백년초(百年草)에 대하여..
 
백년초는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손바닥 선인장의 열매로 1976년 제주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약 200년 전 선인장 씨앗이 북제주군 한림읍 월령리 해안에 떠 밀려 와 자연 서식하면서 군락을 이루기
시작한 백년초는 매년 4~5월경에 작고 파란 열매가 열리고, 5~6월경에는 열매에 꽃이 핀다.
이후 꽃이 지면서 열매가 커져 11~12월경이면 자주색으로 열매가 익어 수확하게 된다.

겨울 내내 강추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꼿꼿이 지조를 지켜온 백년초(百年草).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움츠렸던 줄기는, 봄이 되면서 뿌리에 압축돼 있던 진액이
줄기(잎)로 솟구쳐 오른다.

봄에는 백년초 줄기가 사람의 몸 안 기운을 끌어올리는 작용을 한다.
기력이 달리고 위장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봄 기운을 북돋아 주는 약초인 셈이다.

예로부터 오래 살아서 불로초(不老草), 백 가지 병을 다스린다 하여 백년초(百年草)라
불리며, 우리 나라의 경우 약 200여 년 전부터 가정상비약으로 재배되어왔던 손바닥
선인장.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하고 황토와 사토가 적당히 섞인
토양에서 자랐을 때 더 독특한 효과를 낸다고 한다.

뿌리에서 강한 사포닌 냄새가 난다고 해서 태삼(太蔘)이라 불리는 백년초가 약초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백년초는 일찍이 인류의 건강증진 목적으로 재배한 귀중한 약용식물이었고
최근 백년초에 효능과 기능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통해 많은 결과가 입증되고 있다.

특히 건강 시스템의 강화 등에 탁월하여 민간요법에서 효과를 보이자, 병원 및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의료 목적용 식물로서 연구 활동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백년초의 주성분
영양 성분에서는 식이섬유, 비타민 C, 플라보노이드, 칼슘 등 함유량이
많다. 비타민 C는 알로에보다 5배가 넘게 들어 있고, 노화억제와 향암 효과가 있는 페놀
성분도 함유돼 있다. 백년초의 줄기나 보라색 또는 붉은색 열매를 공복에 갈아 마시면 변비,
이뇨, 장운동 활성화에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백년초는 비료와 농약을
 싫어하는 무독 식물로서 그대로 먹을 수 있다.

▶약리효능
경성대학교 약학대학에서 항동맥경화작용 연구를 위해 손바닥 선인장 줄기 및
열매를 고지혈증 동물에 투여 하였더니 고지혈증의 개선효과가 뚜렷하다고 밝혔다.
이 효과는 체내 지질의 합성 및 분해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의 생체내 흡수
및 배설에 관여하면서 나타나는 결과라는 것.

이 대학 항 당뇨병 효과연구에서도 유전적 당뇨유발 생쥐에 대하여 손바닥 선인장의 줄기와
열매를 장기간 투여. 여러 대사기능을 호전시켰는데 특히 손바닥선인장의 줄기는 우수한
 효과를 보였다 한다. 이 손바닥선인장은 부분적으로 알파 글루시데이즈(a-glucosidase)에
대하여 경쟁적 억제 작용과 또 다른 기전에 의해 식후 혈당치를 감소시켜 고혈당증에서
원인이 되는 당뇨병의 각종 합병증 및 기타 다른 질환들의 예방적 치료제로서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연구소도 호흡기에 대한 효과연구에서 손바닥선인장은 기관지 근육
수축(천식)에 대해 모든 현저한 이온작용을 보였다고 밝혀냈으며, 이 기관지 근육이완은
기존의 치료약물과는 다른 작용의 효과로 분석되었다.

또 위염 및 위궤양에 대한 효과연구에서도 손바닥 선인장 열매 및 줄기는 위산 분비의
억제작용이 없기 때문에 항궤양 작용은 인정되지 않았으나 손바닥선인장의 항위염
효과를 분석한 결과 항위염작용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 한의학적 효능
중약대사전에 의하면 기의 흐름과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열을 식히고
독을 풀어준다고 나와 있는데 심장과 위의 통증치료, 이질, 치질, 기침 해열진정제,
기관지천식, 가슴이 두근거리고 수면부족일 때 열매과 줄기100g 즙을 내어
복용하면 아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

또 본초강목에서도 당뇨, 성인병에 선인장즙을 매일 마시면 근골을 굳게 하고 불로장생하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밖에 가정한방의학에서는 백일해, 늑막염에 선인장을 갈아 매일
마시면 좋고, 상용중초약수책에서도 부스럼, 종기에 신선한 선인장을 잘라서 찧어
발라주면 좋다고 밝히고 있다. 영남체약록에는 신경통, 관절염에서는
가시를 제거한 다음 술을 담가 복용한다고 나와있다.

▶ 외국의 가시선인장 이용사례
멕시코에서는 1987년 살바로르수비 국립영양연구소에서
당뇨치료제로 캡슐 및 정제약 개발되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예로부터 농부들이
피곤하거나 목이 마를 때 선인장 잎 및 열매를 먹고 놀라울 정도로 회복이 빨라
[정력제]로 인기가 높았으며 열매는 스프의 맛을 내는데 사용되어 왔다.

또 젊은 여성의 다이어트, 피부미용, 변비로 이용하고 있다. 미국은 심장병 및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며, 현재 2년마다 세계적인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후꾸호카지방에서는 10여종의 가공식품을
개발하여 판매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어 지방특산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라도 섬 양지바른곳에 피어 있는 이름모는 꽃이다.
 

 
마라도 섬 남서해안 풍경이다.
 

 
초코렛을 전시판매하는 집..
 

 
마라도의 장군바위 전설
 
장군바위는 마라 최남단비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하늘에 살고 있는 천신(天神)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는 길목이라 전해지는 장군 바위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 쪽을 향하여 신사참배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군바위 가까운 곳에는 신사비가 세워져 있었으나,
민족 정기를 살리기 위해 부숴 버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라섬의 등대를 일본인들이 세운 것과 연관 지워 보면 그 신사비의 의미가 가볍지만은 않다..?
마라도 사람들은 이 장군 바위가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믿어왔으며, 그래서 이 곳에서
해신제를 지내곤 했다. 그런 만큼 이 바위에 올라가는 것은 금물, 혹시라도 장군바위에 올라
가면 바다가 노한다고 믿어왔다. 전해지는 바로는 바위중간까지 올라가면 중놀(바닷물이
크게 너울거리는 현상)이 불고, 더 높이 올라가면 대놀(집채만한 파도가 치는 현상)이
분다하여 이 곳에 올라가는 것을 금기시 했다한다.
 

 
마라도 최남쪽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학생들의 조국순례 기념비이다.
 

 
마라도 동남쪽 해안 절벽해안이다. 높이가 약 30m 정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저 수평선 끝 어디쯤에 전설의 섬 이어도가 있을 것이다.
 

 
한국 최남단 기념비(최초 새운 표시석)
 

 
대한민국 최남단(1983년에 새운 표시석)
 

 
마라도 등대와 성당
 

 
마라도 옛날 선착장 (멀리 한라산과 산방산이 보인다.)
 

 
마라도 할망당(처녀당)에 얽힌 슬픈 전설

수백 년 전, 가파도에도 마라도에도 사람이 살지 않았던 시절, 모슬포에 살고 있는 이씨 부인은 어느 날
물을 길러 가다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울음소리를 좇아가니 태어난 지 3개월도 채 안된
여자아이가 수풀 속에서 울고 있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아이의 부모를 찾을 수 없게되자, 이씨 부인이 딸처럼 기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씨 부인에게도 태기가 있어 첫아이를 낳았고, 여자아이는 자연스럽게 아기를 봐주는
애기업개가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시절의 마라도는 금단의 땅이었다. 섬 주변에는 각종 어류며 해산물들이
풍부했지만, 그것들을 잡으면 바다의 신이 노해서 거친 바람과 흉작 등으로 화를 입힌다고
여겨 사람들이 접근을 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매년 봄, 망종으로부터 보름 동안은 마라도에 건너가는 것이 허가되던 때였다.
어느 해 봄, 모슬포 잠수들은 마라도 [섬비물]해안에 배를 대고 물질을 시작했다.
바다는 매우 잔잔했고, 날씨도 좋아서 소라, 전복 등이 많이 잡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레가 지나고, 가지고 들어온 양식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 물질은 잘도 푸진게, 이제 그만하고 오늘랑 돌아갑주.]
 
잠수들이 섬을 떠날 채비를 하자, 갑자기 바람이 불고,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어졌다.

[잔잔해지면 가야되큰게]
 
그런데, 바다가 참으로 이상했다. 떠날 것을 포기하고 배를 묶어 놓으면 잔잔해 지고,
배를 타려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거칠어졌다.
 
[이거 틀림없이 바다신이 노한거라. 이제 살앙 돌아가긴 틀린 거 닮수다.]
 
물이고 양식이고 다 바닥이 난 날 저녁, 잠수들은 다음날에는 죽을 각오로 떠나기로 뜻을 모았다.
떠나기로 한 날 아침, 가장 나이 많은 잠수가 선주(船主)에게 지난밤의 꿈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젯밤 꿈에 누가 나타나 이르기를 애기업개를 두고 가야지 데리고 가면
모두 물에 빠져 죽을거랜 합디다. 어멍도 아방도 없는 아이니 두고 가야쿠다.]
 
신기하게도 부인 역시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일행들은 의논 끝에 애기업개를 희생시키기로 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어찌 갈등이 없었으랴만, 더 이상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배를 띄워
사람들이 오르자, 잔잔했던 바다에 다시 바람이 일기 시작해면서 거칠어질 조짐을 보였다.
아기 어머니가 애기업개에게 말했다.
 
[아이고, 얘야, 아기 기저귀 널어놓은 것을 잊어버리고 안 걷어 와졌구나.
저기 저 바위 위에 하얀 걸렁이 보이지? 얼른 가서 좀 걷어 오너라.]
 
애기업개가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에 배는 바다 가운데로 빠져나갔다.
뒤늦게 눈치를 챈 애기업개는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줍서~!]
 
그러나 무정하게도 배는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바다는 더 이상 거칠어지지 않았다.
배에 탄 사람들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차마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그 뒤 3년 동안 사람들은 무서워서 마라도 쪽으로 가지 못했다.
 
3년이 지난 뒤 마라도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슬포와 가파도가 가장 잘 바라다 보이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모슬포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외로움과 굶주림에
지쳐서 죽은 애기업개의 뼈를 볼 수 있었다.
 
잠수들은 애기업개의 뼈를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리고 애기업개를 위해
그 자리에 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달 7일과 17일, 27일에 제를 지내고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죽는 일이 드물어졌다고 한다. 세월이 무수히 흘러 애기업개는
처녀에서 할망으로 일부 바뀌어 불리게 된 것이라 한다.
 
 
애기업개 내용중 제주 사투리 해석

[이번 물질은 잘도 푸진게, 이제 그만하고 오늘랑 돌아갑주.]
이번 물질은 수확이 아주 좋네요. 이제 그만하고 오늘은 돌아갑시다.

[잔잔해지면 가야되큰게]
바다가 잔잔해지면 가야겠어요.

[이거 틀림없이 바다신이 노한거라. 이제 살앙 돌아가긴 틀린 거 닮수다.]
틀림없이 바다의 신이 화가 나신 거예요. 이제 살아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아요.

[어멍도 아방도 없는 아이니 두고 가야쿠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아이이니 여기에 두고 가야할 것 같아요.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줍서!]
저도 데려가 주세요. 제발 데려가 주세요.
 

 
이상으로 약 3시간동안 마라도에 머물며 17년전과 이것저것 대비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옛날의 마라도가 좋다. 다시 모슬포행 뱃머리에서
마라도를 바라보며 마라도의 상처가 더 생기지 않기를 기원했다.
 
 
제 1부 제주도의 봄(마라도편 끝)
 
 
 
2010/04/04~06 - 휘뚜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