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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스크랩] 60~70년대를 생각케 하는 것들..

by 휘뚜루50 2018. 7. 1.

▒ 60~70년대를 생각케 하는 것들..



그때는 왜 그리 종기나 헌데가 많이 났었는지 원.. 그 가운데 붙이는 발근고(노락색의 약)을 검은 고약가운데

이겨 붙이고 뜨거운 유엔성냥으로 녹여서 착 붙이면 뜨금하다 시원해지는 그때의 기분이 지금도 엊그제인듯

한데.. 암튼 이명래 고약이나 됴(조)고약은 생각 나는데, 이 고약은 생각이 날동 말동..

 


지금 40~50대는 이것 먹고 큰것 같음. 아무튼 낯이 익음. 저 아이만 할때 저 아이 그림이 있는 우유깡통을 보고

만지작 거리며 본 기억이 날 것이다. 아마 조금 더 커선 저 깡통에 뒷면을 못으로 망치질을 해 구멍을 여럿 내고

동내 개천가에가서 철사줄로 역어 쥐불놀이를 했을 것이다.

 


거울이 있는 경대에 이렇게 생긴 영양크림 한개쯤은 있었던 듯. 그냄새가 요즘의 영양크림이라는 것과 냄새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던데.. 아무튼 이것도 그때는 일본식 발음으로 구루무.ㅋㅋ~

 


요게 아마도 진로 30도 짜리 처음 나온 진로소주이다. 왼 쪽 것 보다는 오른쪽 것이 기억나는듯..

왼쪽 라벨도 기억은 나는 것 같은데 아마도 이 소주병들이 이즘부터 참기름 병으로도 대용되기

시작했던 것도 같다.

 


사실 이건 50년대부터 나온 것이다. 미풍과 미원 경쟁이 엄청 심했었지..

 


이것은 참 빗 이라는 건대 다 아시겠지만 그땐 할머니들이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머리뒤로 비녀들을 많이

꼽았을 때라 어느집에나 다 있었던 것인데, 왠지 그땐 소중하게 안보였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여인들의

물품이었던것 같아서였나 보다. 그러나 이젠 이러한 우리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 동백기름에 참빗으로 단정하게 빗으시던 옛 사람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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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화영화 제목에도 나오는 검정 고무신. 내 기억엔 검정 고무신은 50년대에 주류였고 60년대에는

흰고무신이 대세였다. 그리고 예전엔 한복들을 많이 입었으니까, 기술이 좋와져 여성 고무신은 가격에 따라

좋은 것도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항상 뾰족한 코가 나온것을 보면 어린마음에도 우리신발은 아마 옛날부터

이렇게 앞이 톡 튀어 나왔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곧 버선을 집에서 어른들이 만드는

것을 보면 버선 코가 뾰족하게 나오게 가위로 오려 두 가닥을 똑같이 만들어 꿰메 버선을 만들어 신어보실

때에도 고무신과 앞코가 같은 모양이라 그때에서야 고무신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이해가 같다.그리고 부엌

의 부엌칼도 우리의 옛 것은 여성고무신이나 버선같이 앞코가 뾰족하게 나온칼도 무슨 이유가 서로 있지

않겠나 생각도 해 보았다. 어쨓든 버선은 그 앞코가 잘 이쁘게 빠져야 잘 만든 버선이었다 그려..ㅎ

 


그때(50년대)에 담배 태시던 어른들은 아마도 기억이 날 것이다. 나도 몇 가지 담배는 기억난다.

 


내가 군생활 할 때는 화랑담배였는데.. 아마 한산도하고 같이 나왔던 것 같은데..ㅎ

 


지금은 볼 수 없는 삼발이 자동차인데 어려서는 연탄공장차나 아니면 삼립빵 차로 기억되는데,

다양한 곳에서 쓰여졌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삼립빵 삼륜차가 생각나는 것 왜 일까..?

그 삼립 크림방이 생각 난다. 이렇게도 먹다 저렇게도 먹다 나중에는 집안의

석유곤로(난로)위의 뚜껑에 구워먹는 것이 최후의 비법. ㅋㅋ~

 

 


기억나는 분들 있겠다. 아이들때 군것질, 뽀바이, 딱다구리등, 이 삼양라면은 그땐 별식으로 일요일 날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별식으로 먹었던 것 같다. 그 라면 먹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어뒀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문구점에서 팔던 스티커들인데 그땐 다들 문방구라고 했었다. 우표를 모은다고 우채국에 가서 씨리즈나

명판(우표 한 질에 구석모퉁이에 제조국인 한국조폐공사라고 인쇄된 부분의 4장)이나 문방구에서 돈주고

사는 이름모를 외국우표묵음들을 종이판에서 뜯어서 파는 것들을 참 많히 사는 유행도 있었다.

그때 모았던 우표들이 다 어디갔는지 모르겠다.참 많이 모았었는데..

 


기억나죠..? 이껌. 이껌 말고도 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그땐 껌도 귀해 먹다가 밤에 자려거든 버리기

아까워 벽지에 붙여놓고 다음날 일어나 다시 씹던 시절도.. 애이 더러워라..ㅋㅋ~

아이들은 껌종이 모으기가 유행이었을 정도니까.. 그리고 귀한 껌종이(주로 수입껌 종이)는 껌종이

먹기 놀이에 한장에 몆장씩을 더 쳐 주었던 기억도 나고..

 

 


구슬치기. 역시 그땐 다마치기란 말을 더 많이 쎃는데 지금보면 교육이 60년대 이후에부턴 우리의 것(말)을

많이 찾았던 것 갔다. 딱지치기, 딱지접기(둥근딱지 삥둘러 별이 꽉찬딱지가 제일 높은 것)등 또 그 이후에

계급장먹기 놀이등, 군것질이란 동내 어귀에 설탕뽑기, 달고나(하얀 당원)녹여먹기 등등 그런 것 먹어가면서

이러한 것들 가지고 놀았던 기억도 날 것이다.

 

 

이 가방은 양쪽 책을 넣게 돼있고 가운데도 끼워 쓸 수 있게 만든 학생용 가방인데 가방 모퉁이엔 항상

도시락에서 흘러나온 김치국물이나 이런 것 들이 묻어있었던 것 같다. 교과서 한 두권 쯤은 역시 반찬

국물이 묻어 있었다. 모자는 신입생일때엔 보이는 것 처럼 순수한 처음 그대로의 모양이겠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멋을 부리느라 모표는 보이지도 않게 납작하게 눌러쓰고 역시 챙은 각지게 오므려 폼

잡아가는 것 ㅋ. 아마도 한 참 멋부리고 싶은 사춘기일테니 누가 말려~큼큼~

 


이것 또 빼 놓울 수 없다. 황금색 은박지로 쌓여있던 다이알 비누. 세수할 땐 다이알 비누를 아끼느라 은박지를

절반만 벗겨 비벼서 쓰곤 했었다. 그땐 아마도 아끼는게 미덕이였으니까.. 지금도 선진화된 사회는 오히려

써서 없에는 것이 시장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원리이지만, 그것도 제동없는 낭비는 결국 사람들의 정신

세계가 어려움 몰라 오늘처럼 맹한 사람들로 정신적 경쟁력이 없는 신세대의 국가가 된 원인도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나는 건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학생들을 정신교육차원의 연수를 하기도 했다. 그때 가서 교육받은

것으로 이 다이알 비누를 한번 돌려 비빈후 세수를 끝내고, 치약도 뭐 일미리를 짜 준다던가? 하는 그런 절약

정신을 배우고 와 그것이 미덕인 양 자랑하고했던 때 였으니 지금보면 참 딴 세상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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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한일 선풍기. 이땐 아직 일본사람들이 만든 선풍기 프로펠러가 쇠로 된 것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때마다 일본놈들이 이런것 만들기는 참 잘 만든다 하면서 몃해를 두고 써도 고장한번 안나게 만드니

그런걸 우리도 배워야한단 말들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어느덧 우리풍토는 잘 고장나게

만들어야 또 사게만들어 잘 팔리게 할 생각만 하는 뉘앙스로 바뀌었다. 물론 한일 선풍기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사회전반적 인식이 아직 선진화되지 않았을 때니깐..아마 중국이 요즘 그 단계를 거치고

있나 본다. 분유파동이니 뭐니.. 한일이 이때부터 모터산업에 뛰어들었나본데 그후론 모터는 한일 따라

갈곳 없다 할 정도로 됐던 것 같다. T.V광고에 서수남, 하청일가수 두엣이 나와 "물 걱정을 하지 마세요~

한일..한일자동펌프♬~"하고 선전하던때도 기억나니 말이다.

 

 

다음은 몃가지 그 시절을 생각케하는 광고들을 여기저기서 모아 보았다.

 

 

60년대의 까스 활명수.
예전에는 그냥 활명수였는데 60년대부터 까스활명수로 바뀌었다.

 


이때엔 또 판콜A인가, S인가를 감기약으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저에겐 그게 체질에 맞는다나요, , 그레서, , .

 

 

 

 

 

 

 

 


이 T.V는 앞에 문이 여 닫이로 돼 있어서 학생들 티비만 보지말고 공부하라고 정해진 시간 외에는 어른들이

자물쇠로 잠가놓은집도 있었다. 아무튼 우리집은 그런 걸 자율로 했으니 잠가놓진 않았다. 이것 나오기 전엔

아마도 일제 T.V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역시 그놈들것은 잘 고장나지가 않아 아마 80년대 컬러T.V가 방영

시작할때까지도 잘 나와 끌고 다녔던 것 같다. 컬러T.V가 처음 나왔을때엔 조금보면 왜 그리 눈이 아른

거리고 아팟던지..

 

 


소풍갈때엔 한병씩. 김밥에 찐 계란에..

 

 


물파스가 벌래 물린데 바르란 말은 없었다. 아마도 시대가 지나면서 중간에 생긴것으로 기억된다.

 


처음에는 1등이 오백만원이였는데 800만원이 된 것은 한참후에 일로 기억된다.

 

 

 


이것도 이것이지만 카라멜 제품도 많이 나왔던 것 갔다.



서울 용두동에 동아제약 박카스공장이 있던것이 생각난다.

 

 


삼천리표하니 자전거도 생각난다. 요즘자전거보다 더 잘 만들었던것 같은데,

요즘것은 영 그때 삼천리 자전거보단 디자인이나 여러면이 뒤떨어지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드디어 미원 광고도..



로켓트 건전지하니 그때엔 꼬마전구도 생각난다. 학교에서 배운것으로 전구실험..

다 쓴 건전지속에 무엇이 들었나가 궁굼해서 못을대고 망치로 두드려 깨 보았던 기억도 있는데

그 속에 뭐 이상한 검정 석탄과도 비슷한게 들었던데 그것이 무언지 알려주는사람이 없었다.



나중엔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동아 전과도 생각나죠. 참고서의 일종인데 뒤에 해답편부터 보기가 일수였지~


 


집안의 어떤 사람은 칫솔질하다 자주 턱이 빠져 혼나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요즘엔 칫솔질하다 턱빠졌다는

말은 못 들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칫솔질은 같은데 그땐 왜들 그랬을 까..? 너무 좋와서 열심이 닦는다는

정성이 앞서 그랬겠나..? 지금보니 이해가 안가네..ㅋㅋ~

 

 

2015/01/13 - 휘뚜루 -

마음먹기 달렸더라 / 김 보성

출처 : 산으로, 그리고 또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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