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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산행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있던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지를 나홀로 산행하다

by 휘뚜루50 2020. 9. 23.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있던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지를 나홀로 산행하다.

     - 2020/09/18 금요일 -


오늘은 역사기행 산행으로 오대산 깊은 산속에 있는 오대산 사고지로 나홀로 찾아 간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40여년전 대학생때 한번 다녀간 희미한 기억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오대산를 산행하려면 갈 때는 버스를 이용하고 올 때는 기차를 이용하는게

편리하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06시 40분 진부행 버스를 타고 광나루를 지나며 본 풍경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이 내일 모래이니 일출도 많이 늦어지고 있다.

 

대략 2시간 10분 정도 걸려서 진부터미널에 도착하면 08시 50분이다. 곧 이어 09시 05분에 상원사로

가는 첫 군내버스를 갈아타기하고 조계골입구에 하차를 하였다. 진부터미널에서 약 25분 소요되었다.

 

조계골의 계곡수가 오대천에 합류하는 지점..

 

조계골 버스 정유소에서 약 100m 정도 걸어가면 오대산 사고지로 가는 삼거리이다.

 

사고지 삼거리에 있는 약간 삐뚫어진 이정목..

 

오대사고지로 가는 길은 약간 경사진 길이다.

 

그런데 길바닥이 특이하다. 자연석 판석으로 되어 있어 정감이 가는 길이다.

 

길바닥에 나딩굴고 있는 까먹다가 만 잣 한송이.. 아마도 청솔모짓이 아닐까 생각한다.

 

길섶에는 회목나무 열매..

 

향유꽃인지..? 배초향인지..?

 

구릿대..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에 도착하였다.

 

조선왕조실록 (朝鮮王朝實錄) 또는 이조실록(李朝實錄)이란 조선 태조 때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27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적은 사서(史書). 사초(史草)와 시정기(時政記)를 기본으로 하였다.

 

그리고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의정부일기(議政府日記)》를 자료로 삼음. 태백산본(太白山本)

1,181책, 정족산본(鼎足山本) 848책, 오대산본(五臺山本) 27책, 잔여분 21책, 모두 2,077책이

서울 대학교 부속 도서관 규장각(奎章閣)에 보존되어 있다. 국보 제151호이다.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지에 대하여..


평창 오대산사고(平昌 五臺山史庫)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에 있는 《조선왕조실록》

(朝鮮王朝實錄)』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璿遠譜略)』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璿遠譜略)』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실록』은 조선 전기에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 전주, 성주에
나누어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1592)으로 전주사고에 보관하고 있던 것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선조 39년(1606)에 다시 만들어 춘추관·태백산·묘향산·강화 마니산·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보관하였다.
그러나 인조 때 이괄의 난(1624)과 병자호란(1636)으로 『춘추관본』이 불타 없어졌고, 그 후 정족산,
태백산(각호산), 적상산, 오대산에 보관하게 하였다.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현재 서울대학교에 보관되어 있고, 『적상산본』은 한국전쟁 중 없어졌으며,
『오대산본』은 일본에서 거의 불타 없어졌다. 오대산 사고가 있던 곳은 원래 물·불·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상서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사고를 지을 당시에는 실록각, 선원각·별관, 그리고 사고를 지키던 수호사찰로 영감사가 있었으며,

참봉 2명과 군인 60명, 승려 20명이 사고를 관리하고 지켰다.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탔으나

1992년에 사각과 선원보각으로 이루어진 사고의 건물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지 안내문​ 내용..


이 곳은 조선시대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朝鮮王室)의 족보(族譜)인 선원보략(璿源譜略)을

보관하던 사고(史庫)가 있던 자리이다. 오대산 사고는 1606년(선조 39)에 이 곳이 물·불·바람의 재화

(災禍)를 막을 수 있는 길지(吉地)라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역사서를 보관하기 적절한 곳이하 하여

건립되었다.

 

사각(史閣)과 선원보각(璿源譜閣) 등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불에 타서 모두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하여 복원된 것이다. 부근에는 역사서를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사고사(史庫寺)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초기에 춘추관(春秋館)·충주(忠州)·전주(全州)·성주(星州)에 1부씩 보관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실록만 내장산(內藏山)으로 옮겨져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 버렸다. 1606년

(선조 39) 3부가 다시 제작되어 춘추관·태백산(太白山), 묘향산에 보관되었고, 전주본은 강화

마니산(摩尼山)에, 그리고 교정본(校訂本)은 이곳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었다.

 

그후 병자호란(1636년)과 이괄의 난(李适의 亂, 1624년)으로 인하여 춘추관본·마니산본이 불에

타거나 파손되었으므로, 다시 4부의 실록이 작성되어 강화도 정족산(鼎足山)·태백산, 무주

적상산(茂朱 赤裳山)·오대산에 1부씩 보관되었다.

 

오대산에 보관되었던 실록은 일제 강점기에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으로 옮겨져

1923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 때 거의 불타 버렸다.

 

오대산사고의 수호 사찰(守護寺刹)인 월정사는 사고에서 너무 떨어져 있어 암자 격인 영감사

(靈鑑寺)에서 실제로 수호를 하였다. 따라서 영감사를 일명 사고사(史庫寺)라 하기도 하였다.

 

오대산사고지에서 영감사로 올라가느 길목에 핀 동자꽃과 오리방풀꽃..

 

박하향이 은은하게 나는 것으로 보아서 깻잎오리방풀인가 보다.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지를 지키는 영감사(靈鑑寺) 전경..

 

영감사(靈鑑寺) 뜨락에 있는 배나무의 열매가 탐스럽게 열렸다.

 

영감사(靈鑑寺) 뜨락 전경..

 

시원한 조망를 가지고 있는 영감사(靈鑑寺) 뜨락 전경..

 

전각 추녀사이로 바라본 하늘..

 

영감사(靈鑑寺) 추녀끝에 배달린 풍경소리..그런데 물고기가 어디론가 출타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쪽에 있는 샤스타 산(Mt. Shasta)이 고향인 저 꽃이 이 깊은 산중에 피어 있다.
스님이 데리고 왔을까..? 아니면 마가리트(Marguerite)꽃인가..?

 

영감사(靈鑑寺) 뜨락에서 바라본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지 전경..

 

영감사(靈鑑寺) 뜨락에서 바라본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지 전경..

 

영감사(靈鑑寺) 뜨락에서 바라본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지 전경..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지와 영감사(靈鑑寺)에서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1,301m 고지로 갔다.

 

영감사에서 좌측 계곡으로 내려가서 계곡을 타고 조금 오르다 우측 능선으로 올라갔다.

 

참장귀 열매..

 

회목나무 열매..

 

천남성 열매..

 

길 없는 조릿대 능선으로 계속 올라가면 1,301m봉 정상이다. 계방산과 소계방산이 머리만 보인다.

 

계방산을 줌으로 최대한 당겨 보았다.

 

이번에는 소계방산을 줌으로 최대한 당겨 보았다.

 

조계골 전경..

 

이번에는 조계골을 줌으로 최대한 당겨본 전경이다.

 

1,301m봉 암봉 전경..

 

1,301m봉에 있는 삼각점..

 

이번에는 반대편 효령봉과 비로봉 전경..동피골이 구름그늘에 가려졌다.

 

1,537m봉과 효령봉 전경..

 

동피골과 1,529m봉 전경..

 

1,301m봉 사면에 자라고 있는 석이버섯..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석이버섯이 가득하다.

 

크기도 애기 손바닥만 한걸보면 이 능선은 사람들의 출입이 거이 없나보다.

 

이번에는 두로령과 신선목이 방향을 조망해 보다.

 

그리고 신선목이에서 동대산까지의 백두대간 능선을 조망해 보다.

 

몇 개의 크고 작은 암릉을 넘었다.

 

진보라색의 투구꽃..

 

곰취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름모를 무명봉에서 바라본 계방산..

 

줌으로 당겨본 계방산..

 

오래전에 쓰러진 고사목의 잔영..

 

지난번 태풍에 쓰러진 고사목..

 

멀리 장군봉이 조망되고있다.

 

약간 비켜서 바라보니 발왕산도 조망되고 있다.

 

능선을 따라 하산하다 갑짜기 나타난 절벽..아무리 궁리를 해도 내려갈 수 없다.

 

절벽 주변에 군락지를 형성한 며느리밥풀꽃..

 

절벽 주변에는 산랭도가 익어가고 있다.

 

바로 코앞이 조계골 계곡인데..

 

도저히 내려 갈 수 없어 약 100m 빽하여 짐승들만이 다니는 급경사지로 서커스 수준으로 하산을 하다.

 

내가 내려선 날머리..

 

어렵게 내려선 조계골 도로.. 길 끝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월정사 화림원이 있다고 한다.

 

화림원으로 가는 용화교이다.

 

이 아름다운 길은 아쉽게도 비탐코스의 길이다.

 

신작로길 오른쪽으로는 조계골 물소리가 친구가 되어 함께 걷는다.

 

조계골 날머리에 도착하니 철문이 닫혀있다. 문이 엉성하여 문사이로 빠져 나왔다.

 

아침에 내린 조개골 버스 정유소에서 16시 10분쯤 진부로 가는 차를 타고 진부역에 16시 35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19시 차편을 16시 50분 KTX 기차로 변경하여 승차하여 편한하게 귀경을

하였다. 편리한 세상이다. 그것도 대중교통으로 하루만에 여유롭게 다녀 올 수 있으니..

계절이 한번씩 바뀔 때마다 오대산 구석과 산을 다녀와야겠다.

 

2020/09/23 - 휘뚜루 -

낙화유수 / 하모니카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