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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산행기

연꽃의 꽃술을 닮은 청량산(870m)를 다녀오다.(2010/02.27)

by 휘뚜루50 2019. 9. 3.

 
▒ 연꽃의 꽃술을 닮은 청량산(870m)를 다녀오다.
 
 

 
지난 날 몇번인가 다녀 온 청량산.. 그때마다 얼치기로 다녀와서 늘 마음 한구석에 찝집함이 남았었다.
청량산은 870m으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축륭봉, 등 12봉우리와 어풍대, 밀성대, 풍형대,
학소대, 금가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등 12개의 병풍 대(臺)로 형성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정상적 산행을 한다는 것은 예전에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몇년전부터
봉화군에서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위험하고 난해한 등산로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새로 설치하여 이제는 어느 정도의 체력만 있다면
누구나 규정코스를 다녀 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일년 12달 산행객이 끊어지지 않는 인기 명산으로 급부상한 산이다. 특히 가을
단풍철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산행이 불가할 정도이다. 다행하게도 지금은 겨울의
 강을 건너서 봄으로 가는 계절의 와중이라 산행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입석]에 주차를하고 잘 정비되어 있는 등산로를 따라 산행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날씨는 나의 바램과는 정반대이다. 청량산은 비경의 산이라 청명하게
맑을수록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데.. 흐린 하늘의 폼이
휘뚜루의 심보처럼 찌그러져 있다..^(^ 큼큼~


 
이리저리 알맞게 구부러진 오름길을 따라 우리들만의 호젖한 산행을 하였다.
때때로 이름모를 산새들의 노래소리도 들으면서..^^


 
[입석]들머리를 출발하여 10여분쯤에 제 1전망대에 도착했다.산아래 자동차 들머리길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조금전 저 길을 지나올때는 전혀 몰랐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보니 나도 [관조의 미학(美學)]을 터득하고 즐길 나이인가 보다..^(^


 
누구인가 그랬다. 청량산은 외유내강형의 산이라고.. 언뜻 보면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이내 암산(岩山)이라고.. 그래서인지 길은 수십길 벼랑위를 휘돌아 가도록 되어 있어서 때때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곳을 여러번 지나면 금탑봉 아래 청량사의 부속 암자인 응진전(應眞殿)이다.
 
수십 길 절벽 중턱에 자리한 외청량사 응진전은 683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공민왕을 따라 피란 온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던 곳이다.
 
고려 말 공민왕은 정략결혼 차원에서 원나라 노국공주와 결혼하고.. 공주는 고려인을 자처하며
공민왕을 진심으로 도와 고려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다. 아쉬운 점이라곤 결혼한 지 8년이 되도록
아기가 안 생긴다는 것이었다. 왕은 중신들의 간청을 못 이겨 후궁을 얻으나, 이를 두고두고 미안해
했다 한다. 이후 부부는 홍건적의 침입 때 개경에서 피난 와서 석달 정도를 안동에서 지낸다.

공주는 이 기간에 응진전에 와서 기도를 드렸다 하니 기도의 내용은 짐작이 간다. 개경으로 돌아간 뒤
공주는 임신을 하나 난산 끝에 숨지고, 이후 공민왕은 마음의 병을 얻어 굴절된 말년을 보냈다는
것이다. 응진전의 16 나한상 중에는 노국공주를 닮은 것이 있어 지금도 기묘함을 느끼게 한다.
어쨌든 봉화에서는 현재도 공민왕과 공주를 위해 동제를 지내는 곳이 많다고 한다.
굽이굽이 맺힌 사연을 듣고 어풍대(御風臺)로 향하였다.


 
길은 금탑봉을 휘감으며 어풍대(御風臺)에 닿았다. 청량산 전망대 중 가장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청량산의 뭇 봉우리들이 빙 둘러 연꽃잎 마냥 하늘을 향해 있고, 그 중앙에 꽃술에 해당하는 청량사가
앉아 있는 장관이 펼쳐진 곳이다. 하여..청량산의 [꽃술].. 청량사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연꽃 모양의 암봉들속에 꽃술 모양을 하고 있는 청량사를 감상하고
어풍대(御風臺)에서 약 20여분 오름길을 오르니 김생폭포에서 잔설 녹은
가녀린 물방울들이 낙화를 하고 있었다. 정녕 봄이 오고 있나 보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신라의 명필 김생이 무려 10년간을 서도에 정진했다는 김생굴이다.
김생은 왕희지에 필적할 만한 천하명필이자 해동서성(海東書聖)으로 불렸다. 현재 김생굴은
자연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바람직한지~?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나의 생각에 함께 한 산벗들도 수식어 없이
모두 전적으로 동의하며 가파른 오름 계단길을 쉬엄쉬엄 올랐다.


 
▒▒▒ 허난설헌 [규원가] ▒▒▒

천상(天上)의 견우직녀(牽牛織女) 은하수 막혀서도,
일년일도(一年一度) 실기(失期)치 아니거든,
우리 님 가신 후는 무슨 약수(弱水 )가렷관듸,
오거나 가거나 소식(消息) 조차 쳣는고..
 
큼큼~ 산행 할 때는 몰랐는데.. 이 다리가 오작교 다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들머리길에 몇마리의 까마귀와 까치가 해맑은 소리로 노래를 했나보다.
그렇다면 칠월 칠석날 여기 와서 내 꿈속의 직녀(?)을 만나야 겠다..^(^


 
오작교에서부터 길은 협곡지대를 지나 가파른 계곡 오름길로 이어져 있었다.


 
가파른 계곡 오름길을 버리고 조금은 여유로운 능선길로 접어들자 수령이 백년 이상된 적송(금강송)
군락지였다. 그런데 나무 밑둥이에는 모두 엄청난 상처의 흉터을 가지고 있었다. 노송의 슬픈 흉터
에는 이런 슬픈 역사가 있었다. 일제시대때 일본이 비행기, 선박, 자동차의 기름으로 사용하려고
강제로 우리 국민들을 동원하여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에고~ 슬픈 오욕의 역사여..-_-


 
그 모진 상처의 흔적을 안고 살다가 생을 마감한 노송(老松) 한 그루의 마지막 잔영(殘影)이다.


 
노송지대(老松地帶)를 벗어나 자소봉(보살봉) 마지막 구간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올랐다.


 
헉~! 이 무슨 뜻밖의 행운의 선물이람~! 자소봉 바로 아래 철계단에 도착하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고대가 활짝 핀 웃음으로 우리들을 반기고 있는게 아닌가..^(^


 
오늘 아침의 기상조건으로는 상고대가 필 가능성은 단 1%도 희박한 상황이였는데..
갑짝스러운 기상변화로 해발 800m 이상에서만 현재 상고대가 활짝 피고 있는 중이다.
 

 
자소봉은 암봉으로 높이 20m 수직 철계단을 올라야 한다.
철계단 위의 자소봉 정상은 널직한 암반으로 되어 있다.
 

 
[푸른 바위가 천길 허공으로 솟아있는 모습]이라는 자소봉(820m) 표시석 바로 옆에는 무료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청량산에서 이곳 저곳을 관람하기에 가장 좋은 곳인데.. 
현재는 안개로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하나를 잃으면 또 다른 하나를
얻는다고 오늘은 상고대꽃이 대신해 주고 있다.


 
자소봉 전망대 주변 솔나무에 핀 상고대(凇)-[1]


 
자소봉 주변 북사면에 핀 상고대(凇)-[2]


 
자소봉 주변 잡목지대에 핀 상고대(凇)-[3]


 
자소봉에서 다시 철계단을 내려와 탁필봉으로 가는 중이다.
청량산의 바위들은 퇴적암(堆積岩)으로 몇억만년전에 바다속이였는데, 열과 압력으로
지각변동을 일으켜 솟구처 올라 온 산이라서 바위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크고 작은 자갈들과 간혹 조개껍질과 갑각류들이 뒤섞여 있다.


 
[붓끝 같은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탁필봉이다.
 

 
탁필봉은 두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사람이 올라갈수는 없고, 그냥 옆으로 우회를 해야 한다.


 
그리고 탁필봉 바로 옆에 있는 연적봉 정상은 [연적을 닮아서]라고 한다.
연적봉에서 바라 본 탁필봉 북사면에 피고 있는 상고대의 모습이다.
 

 
겨울 끝자락 산행때 어쩌다 만나는 행운의 상고대꽃은 유리꽃의 가사 내용처럼
아침햇살에 사라지는게 대부분이였는데.. 오늘은 피어나는 상고대를
만나서 또 다른 황홀한 상고대꽃을 감상하여 더 없이 좋다.
 
그리고 연적봉에서 잠시 부산에서 오신 중년부부가 상고대에 대하여 궁금해 하기에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해 주고 수직 철계단으로 되어 있는 뒷실고개로 내려 갔다가
다시 내려 간 것보다 조금 더 철계단을 올라서 자란봉을 올랐다.
 
자란봉은 아무런 표시석도 없고 그냥 민밋한 봉우리지만 멀리 축륭봉에서 보면
[상상의 새가 춤추는 모습]으로 보여서 자란봉(795m)이라 한다나 뭐라나..


 
자란봉에서 잠시 지나온 연적, 탁필, 자소봉들을 바라보았다.


 
요즘 청량산의 명물이 된 [하늘다리]이다.
하늘다리는 봉화군에서 2008년 5월에 해발 800m의 자란봉과 선학봉 사이에 놓여져 있는 현수교로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곳(길이 90m, 바닥높이 70m, 넓이 1.2m)에 위치해 있는 다리이다.
 
스릴만점의 하늘다리에 올라서면 기암절벽으로 이어진 청량산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으며,
사방으로 시야가 확보되어 태백, 소백이 펼쳐 놓은 양백의 지맥과 용트림 치며 흘러가는
낙동강 상류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다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아니였다.
 

 
아쉬움을 달래 보려고 하늘다리 중간 지점에서 멀리 낙동강 중상류의 모습을 담아 보았다.
 

 
하늘다리를 건너서 신선학이 사는 곳이라 하는 선학봉에서 다시 백여개의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보기에도 무시시한 협곡이 마치 입을 벌리고 나를 잡아 먹을듯이 노려 보는것 같았다.


 
그 협곡에서 시작한 청량산의 정상 장인봉(예전에는 의상봉이라 하였음)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철계단..


 
철계단이 끝나고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는 상고대가 지친 우리들을 활짝 반기고 있었다.


 
청량산(淸凉山 : 870m) 정상인 장인봉(丈人峰)이다.
청량산은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명산으로 예전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고
했다. 최고봉인 장인봉(丈人峰)을 비롯하여 외장인봉(外丈人峰)·선학봉(仙鶴峰)·축륭봉(祝融峰)
경일봉(擎日峰)·금탑봉(金塔峰)·자란봉(紫鸞峰)·자소봉(紫宵峰)·연적봉(硯滴峰)·연화봉
(蓮花峰)·탁필봉(卓筆峰)·향로봉(香爐峰) 등의 12개의 고봉이 치솟아 절경을 이룬다.
 
그 가운데에서도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는 최고 절승으로 꼽히고 있다.
그 밖에도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가 가무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을 비롯
하여 신묘한 절승지가 많다. 지질은 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낙동강이 이 산의 서쪽 기슭을 흐르며,
반곡폭포(盤谷瀑布)·산북폭포(山北瀑布) 등의 폭포가 이 산의 풍광을 더하여주고 있다.


 
정상에서 낙동강변이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가는 것은 짖은 안개로 생략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왔던 철계단을 내려 갔다가 내려간 만큼 다시 나무계단으로
올라와서 하늘다리를 건너다가 절경이 너무 아쉬워서 다리 입구에서
노송 한그루의 모습을 담아 보았다.


 
그리고 뒷실고개에서 청량사까지 급경사 계단길로만 이루어진 길로 내려왔다.


 
청량사 큰 법당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유리보전이다. 유리보전에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다고
알려진 지불, 종이로 만든 부처가 있다. 하지만 종이라고 해도 단단한 데다 현재는
금칠을 해 놓아 겉으로 보아서는 여느 불상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이곳은 3월 중순에 방영될 MBC 창사 49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동이]의 첫 회 촬영장소라고 하더라~!


 
또,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첫 장면 촬영장소였던 오층석탑..


 
청량사에서 입석으로 가는 길목에는 오산당(吾山堂)과 [산꾼의 집]이 나란히 있다.
오산당(吾山堂)은 물론 청량산 전체가 이퇴계의 문중 소유라고 한다. 산꾼의 집 역시 문중 사람으로서
영양 산악계의 대부역을 해왔던 이대실씨가 임시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산꾼의 집 앞,
[약차 한 잔 거저 들고 가시라]는 팻말에는 아무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 팻말 그대로
약차 한 잔마시고, 제 손으로 씻어두고 되돌아나오면 된다. 그런데 오늘은 쥔장이
출타중이라 문이 잠겨 있었다. 산꾼의 집 주인장(이대실)과 나는 이십여년
전부터 산에서 알게된 막연한 사이라서 내가 청량산에 올때마다 약차
한 잔씩 나누고 했는데.. 오늘은 짧은 메모 한줄 남기고 하산하였다.


 
하산을 하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금탑봉 아래 응진전을 한번 더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 입석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 듯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보니 오늘 산행은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와 같다]는 퇴계(이황)선생의 말씀을 조금은 알것 같다.
자고로 산은 읽어야 한다. 그것도 온 몸으로.. 큼큼~
 
 
 
2010/02/27 - 휘뚜루 -

♬ 진흙속에 핀 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