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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자 싯달타의 출가 박순신 작사, 정강스님 노래
동쪽문 나갔을 적에 늙은자 모습보았네
서쪽문 나갔을 적에 죽은자 모습보았네
북쪽문 나갔을 적에 구도자 모습보았네
왕궁의 부귀영화도 한순간 던져버리고
석가모니(釋迦牟尼,Sakayamuni) 부처님은 우리 불교의 교조(敎祖)로서,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전(BC 624년) 히말라야 남쪽 산기슭 지금의 네팔 타라이 지방의 [카필라(迦毘羅, Kapila)]국의 왕자로 탄생하신 분이다.
[숫도다나(淨飯, Suddhodana)]왕을 아버지로 [마야(摩耶, Maya)]왕비를 어머니로 하여 탄생하였는데, 마야왕비는 흰 코끼리가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자를 잉태하였다.
산월(産月)이 가까워지자 마야 왕비는 당시의 풍습대로 친정인 [코올리(拘利, Koli)] 성으로 해산차 가는 도중 갑자기 산기를 느껴 [룸비니(藍毘尼, Lumbini)]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무우수의 가지를 잡고 태자를 낳았다.
탄생일은 음력 4월 초8일 한낮이었다. 갖추어졌다]는 의미이다.
태자는 어려서부터 그 용모가 수려하고 두뇌가 명석하여 나이 7세 때 당시의 종교, 문학, 예술, 의학, 과학 등 각 분야에 걸쳐 교육을 받는 한편, 무술도 겸해서 배우게 되었다.
태자는 성품이 총명하여 하나를 들으면 백과 천을 깨달아서, 오래지 않아 문무를 겸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태자는 명상과 사색하는 일이 많았으며, 인생에 대하여 남다른 회의를 갖고 있었다.
태자의 번민이 심각한 것을 눈치챈 부왕은 태자의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삼시전 (三時殿)을 지어 수 많은 궁녀들의 춤과 노래로써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하였다.
소위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하여 인생의 허무하고 괴로운 시상을 직시하고 출가 수도의 뜻을 굳혔다.
야소다라(耶輪陀羅, Yasodhara)를 맞아 태자비를 삼기로 하였다.
태자는 29세가 되던 해 아들을 낳았으니 그 이름을 라훌라(羅喉羅, Rahula)라고 지었다. [라훌라]란 장애(障碍)라는 뜻인데, [몸과 마음을 얽어 매어 방해가 되는 것]이란 의미이다.
엿볼 수 있다.
태자는 궁중 생활의 화려함과 부모 처자의 은애(恩愛)도 정리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마침태 태자의 나이 29세 때 음력 2월 8일, 드디어 궁전을 벗어나 수행의 길을 나섰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여래는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잡아함경 권 14)
태자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옷을 바꾸어 입어 출가 수행자, 즉 사문(沙門, Sramana)이 되었다. 태자는 당시의 유명한 수행자였던 바가바(跋迦婆, Bhagava)라는 고행주의자를 만나 그를 따라 수행하였으나, 고행의 모순점과 그것에 의해 해탈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당시 가장 명망이 높은 또 다른 수행자 두 사람을 차례로 찾아가 사사(師事)하였다.
한 사람은 알라라칼라마(訶羅羅迦蘭, Alara Kalama)이며, 또 한사람은 웃다카 라마풋타(優陀羅羅摩子, Uddaka Ramaputta)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선정법(禪定法)에 의하여 수행하는 사람들이었다.
태자는 이들의 가르침을 듣고 오래지 않아 그들의 경지를 증득하였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을 떠나 홀로 가야(伽耶, Gaya)의 네란자라(尼連禪河, Neranjara) 근처 고행림(苦行林)에 들어가서 6년 동안 맹렬한 고행을 시작했다.
결국 태자는 고행이 생사를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길이 못됨을 깨닫고, 네란자라에 나아가 목욕하고 소치는 처녀 수자타(善生, Sujata)에게서 우유죽을 공양 받았다.
보리수라고 함) 나무 밑에 앉아 결심하기를 [도를 이루지 못하면 결코 이 자리(金鋼寶座)에서 일어나지 않겠다.]하고 수도를 계속하였다.
밤낮으로 공부를 계속하다가 48일이 되는 날 새벽 하늘에 샛별이 떠 오르는 것을 보고 크게 깨쳐서 성도(成道)하시니, 태자의 나이 35세 되는 해 음력 12월 8일 이었다.
교화한 곳으로는 왕사성(王舍城, Rajagaha : 코오살리국의 수도)이 가장 중심지이었으며, 북쪽으로는 카필라, 남쪽은 바라나시Varanasi, 동쪽은 참파Campa, 서쪽은 코삼비 등이었다.
유명한 설법 장소로는 처음 설법한 바라나시 교외에 있는 녹야원(鹿野苑, Mrgadva, 현재 사르나트라고 불리는 곳), 왕사성의 죽림정사와 기사굴산(靈鷲山, Gijihakuta) 사위성의 기원정사와 녹자모강당 (鹿子母講堂, Migarasala) 등이다.
이와같이 부처님의 생존 당시 이미 그 가르침은 동쪽으로 갠지스강 하류까지 전해졌고, 서쪽으로는 지금의 봄베이, 북방의 수로나 아파라 안타카 지방, 즉 아라비아 해 연안에까지 전파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또한 각계 각층에 전파되어 국왕, 왕비, 귀족, 부호, 평민, 천민들에게 차별없이 교화되었고 큰 감화를 주었다. 부처님의 제자에는 신분의 귀천도, 빈부의 차별도, 인종의 구별도 없었다.
그리고 당시까지 인도 종교계에 허용되지 않았던 여성 출가수행자(比丘尼, Bhikkhuni)가 새로운 불제자의 위치에 자리잡기도 하였다. 성불한 뒤 가르침을 펴기 45년의 발자취는 실로 위대한 바가 있었다.
부처님은 석달 전에 자신의 열반을 예고하시고, 북쪽 쿠시나가라Kusinagara국의 사라(沙羅, Sala) 나무 숲으로 가서 사라 나무사이(沙羅雙樹間)에 자리를 잡고 아난을 비롯한 여러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고, 법(法)에 귀의하며, 남에게 귀의하지 말라.
스스로를 광명(光明)으로 하고, 법을 광명으로 삼아 남을 광명으로 삼지 말라. 구하라]는 마지막 유훈을 남기신 뒤에 인류의 영원한 스승 부처님은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서쪽을 향해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입멸(入滅)은 인간으로서 참으로 위대한 일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자 그대로 그는 성인 중의 성인(聖中聖)이라고 할 수 있다.
2005/09/12 - 휘뚜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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