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굴거리나무에 대하여..
굴거리나무는 중북부지방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무다. 주로 남해안에서부터 섬
지방을 거쳐 제주도에 이르는 난대지방에서 자라는 탓이다. 굴거리나무는 늘푸른나무로서
키 10여 미터, 지름이 10~30센티미터까지 자랄 수 있다. 울릉도 성인봉 부근의 원시림에
한 아름이 훨씬 넘는 굴거리나무가 있다는 암반 등반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굴거리나무는 팔목 굵기에 키가 3~4미터가 고작이다.
잎은 아기 손바닥만 한 넓이에 길이가 20센티미터 남짓한 긴 타원형이고 두꺼우며 가지
끝에 방사상으로 모여 달린다. 잎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흰빛이 돈다. 손가락 길이만 한
잎자루는 언제나 붉은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굴거리나무는 자람 터인 남부지방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알려진 자람 터로는
가장 남쪽으로 제주도 돈네코 계곡이고, 가장 북쪽으로는 전북 내장산이다. 내장산에서 케이블카
를 타고 올라가면 5분이 채 안 되어 굴거리나무 군락이 시작되는 연자대 전망대에서 내린다.
내장사 절 쪽으로 내려가는 길 옆으로 다른 갈잎나무와 섞여서 자라는 모습은 ‘북한지(北限地)’라
는 식물 분포학적인 중요성 외에도 잎이 떨어진 겨울 내장산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91호로 지정되어 있다.
굴거리나무의 한자 이름은 우리와 중국, 일본 모두 ‘교양목(交讓木)’이다. 일본인들은 양엽(讓葉)
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새잎이 나오기 시작하여 제법 자리를
잡았다 싶으면 묵은 잎은 일제히 떨어져 버린다.
마치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 다 자란 자식에게 모든 권리를 넘겨버리고 은퇴하는 모습
에 비유할 수 있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녹나무 종류도 이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유독 굴거리나무에게만 이런 해석을 내리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일본인들은 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맞이하면서 집 안을 장식할 때 굴거리나무 잎을 깐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굴거리나무에 얽힌 특별한 민속은 없지만, 제주도의 유명한 민속학자 진성기 씨가
수집·편찬한 《제주민요 선집》의 〈자탄가(팔자노래 43)〉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물랑 지건 산짓물 지곡 / 낭기랑 지건 돔박낭(동백나무)지라
나 인성은 굴거리 인싱 / 밖앗드론 넙은 섶 놀려 / 쏙엔 들언 피 골라서라
뒷부분을 잠깐 훑어보면 ‘나 인생은 굴거리나무 인생인데, 바깥으로는 넓은 잎 휘날려도 속에는
피가 괴었더라’는 내용이다. 이는 푸른 잎사귀로 장식된 나무속에 붉은빛이 들어 있어서일 것이다.
굴거리나무는 암수가 다른 나무로 잎이 나올 때 잎겨드랑이에서 꽃이 핀다.
암꽃은 연초록, 수꽃은 갈색으로 때로는 붉은색이 강한 적갈색을 띤다. 가지 끝에 모여 달리는
잎자루 역시 붉은빛이니 속으로 피멍이 들어가는 아픈 가슴을 이렇게 비유한 것 같다. 그만큼
흔하고 팔자타령에까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나무 이름과의 관련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옛사람들은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흔히 굿판을 벌이는데, 이 나무는 ‘굿거리’를 할 때
잘 쓰여서 굴거리나무가 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또 굴거리나무는 만병초의 잎과 비슷하여
예부터 약재로 쓰이던 나무다. 병이 들면 약도 먹고 굿도 하였을 것이니 굿거리에 쓰인 것으로
짐작된다. 잎에서 즙액을 내어 구충제로 쓰이기도 했다.
원래 대극과(科)란 집안에 속해 있었으나, 최근 굴거리나무과란 새로운 가계를 만들어 독립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굴거리나무와 달랑 둘이 만든 단출한 집안이지만, 나무의 여러 형태가
대극과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집안에 넣을 수 없었다고 한다.
굴거리나무는 전체에 독성이 있어서 구충제나 청혈해독제 등으로 사용하는데 주의해야 하는 나무로,
굴거리나무의 학명은 Daphniphyllum macropodum 이고, 꽃말은 "내 사랑 나의 품에"라고 한다.
2020/11/11 - 휘뚜루 -
相思夢(상사몽)/상도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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