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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하여

[스크랩] 포크 거장, 피트 시거(pete seeger)가 부른 한국 아리랑

by 휘뚜루50 2018. 7. 4.

 

포크 거장, 피트 시거(pete seeger)가 부른 한국 아리랑


세계 각국의 민요를 채집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는 피트 시거(pete seeger).. 역시, 우리 나라의 아리랑도 있다.

 

첨부파일 Pete_Seeger_Arirang.wma ☜ [클릭하여 아리랑 듣기]

 

 

 

▒ 피트 시거와 아리랑


아리랑은 1950년대 모던포크 운동의 여파 속에 미국에서 급격히 퍼졌습니다.

그 운동의 중심에는 피트 시거(Pete Seeger,1919~ )처럼 6.25전쟁에 참전해 아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영어로 아리랑을 부른 가수들도 있었습니다.

 

1951년 경기도 포천과 의정부 지역에서 보병으로 참전했던 피트 시거는 총구를 맞대고 싸우는 북한에서조차 아리랑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복무를 마치고 돌아간 피트 시거는 한국에서 듣던 아리랑(Ariran)을

만돌린과 비슷한 반조(banjo)라는 악기로 연주하며 구성지게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많은 미국인들과 가족들의 심금을 울렸고 아리랑이

미국 전역에 급속하게 퍼지는 커다란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조안 바에즈(Joan Baez)와 함께 모던포크운동을 주도한 그는 아리랑을 부르기 전 아리랑의 역사와

배경에 대해 소개하는 멘트를 달았습니다.

 

[한국에는 다양한 멜로디를 가진 아리랑이 있습니다. (중략). 일본이 지배할 때는 이 노래가 금지되기도 했습니다다.

그러나 이 노래는 지금 남북이 분단되어 있지만 남북이 하나가되어 부르는 상징적인 노래입니다.]


피트 시거는 1950년대에 이미 아리랑을 남북이 하나되는 상징적인 노래로 보았고,

아리랑을 부르는 한 한국과 북한은 분단국가가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50여 년 전 난무하는 포연 속에서 발견해 부른 구성진 아리랑은 1957년 미국에서 유명한 스틴손(Stinson)레코드

10인치 SLP 음반에 담겨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오늘날까지도 CD등에 담겨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아리랑을 통해 겪은 한국.. 그가 난무하는 포연 속에서 느낀 아리랑은 각별했습니다.

6.25전쟁 이후 반전운동에 뛰어 든 피트 시거는 그 후 부터 베트남전 반대, 심지어는 83세의 고령에 이라크전 반대운동

시위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 우리 민족의 가락 [아리랑]

 

아리랑의 발원지는 정선의 아리랑(아라리)에서 그 발원을 찾는다고 하는게

정설 같다. 중앙 아시아 수메르의  에벤키語 등에서도 찾는다는 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허공 중천에 뜬 달은 님 계신곳을 알지만  나는야 어이해서 님 계신곳을 모르나."  아리랑 ~  아리랑 ~ 아라리오  ~


1865년 경복궁 중수 무렵 전국 각지 에서 모여든 인부들은  그 어려움(힘든 노역)을 이겨내기 위하여 흥얼 거림이 

아리랑 가락의 골격 같다. 정선 아우라지 에서 한양  한강으로 뗏목을 타고  노를 젓는 사공의  흥어림 ~

 

백성들에 의하여 가사가 만들어 지고,  불러지고 지금까지 구전 되어 내려 오는 우리의  한 많은 아리랑~!

소리꾼에 의해서 불러진게 아닌 순수 백성들에 의해서  구전 되어 내려온 아리랑이다.

 

진도 아리랑의 구성진 가락

섬마을 진도 아리랑은  여인들이 선창을 하고 리드를 한다. 들일 물일을 할때도 그래서 여인들의 감성이 묻어 있다.

 

밀양 아리랑의 경쾌한 가락..

와 이리 좋노 와이리 좋노 하는 흥겨움이 극치.. 고달프지만 고달프지 않은 것 처럼 기쁨은 더욱

기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정선 아리랑의  꺽어지는 진하디 진한 참소리의 맛~!

을메나  애닯길래 십리 백리를 울려 퍼질까~ !

 

아주까리 동배야 더 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 애기 신바람  난다,

아라린가 스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오.

 

앵두나 오디는 단맛에 먹구요 딸기나 살구는 신 맛에 먹는다

아라린가  영천 인가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오.. 아리랑 쓰리랑...

 

이 아리랑은 영천 아리랑 으로 국민의 정부때 북한에서 우리 대표단

만찬에서 불리워져 영천 아리랑의 근원이 새롭게 발견 되는 뜻 깊은 수확 이었다.

 

1930년대말 영천 주민들이 집단으로 만주나 횡령 근처 등의 마을에 정착 하여 기쁠때, 힘들때,

덩실 덩실 춤을 추며 삶의 애환을 달래지 않아나 한다.

영천 아리랑은 바로 독립군의 아리랑과  많이 흡사 하다 하며 독립군들이 많이 불렸다 한다.

 

미국의 님 웨일스 라는 종군 여기자가 썼던 김산의 아리랑 (song of arirang)란 책이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30년대 중반 중국의 모택동이 기세를 부르던 시기 님 웨일스는 젊고 예쁜 여기자겸 작가 였다.

 

그녀는 폐쇠적인 조선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도선관에서 영어판 책을 모조리 빌려다 읽는
동양 청년  김산(본명 장지락)을 보게 된다. 그녀는 그때 조선에 대하여 궁금증을 풀 동양인이라 생각 하고 

그를 찾아가 만나게 된다.

 

만남이 있을수록  그녀는  그 동양 남자  김산에게 푹 빠져들게 된다.
바로 "아리랑" 과 함게   미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1940년 초반 김산의 아리랑 이란 책을 쓰게 된다. 

 

이책이  미국에 유학 중이던 학생들에게 입소문으로 퍼진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70년대 군사 정권시절 뭇 지성인들의 필독서 처럼 되어버린 김산의 아리랑 이다.

1984 년 이후 민주화와 함께 더욱 세상의 빛을 본다.
김산, 그의 그 불꽃 같은 항일의 삶은  "아리랑" 의 슬픈 주술과  이데올로기의 슬픔속으로 사라진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그대 열두구비 에서  멈추지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열세 구비를 넘으리니


 

출처 : 산으로, 그리고 또 산으로..
글쓴이 : 휘뚜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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