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삭제된산행기모음

너에게로 가는 나홀로산행..경기도의 금강(金剛)이라고 하는 운악산(937,5m)을 다녀오다.

by 휘뚜루50 2021. 6. 11.

▒ 너에게로 가는 나홀로산행..경기도의 금강(金剛)이라고 하는 운악산(937,5m)을 다녀오다.

    - 2014/09/04 -

 

건강과 교통사정을 감안하여 여름내내 나홀로 산행을 근교산으로 맴돌았더니 조금은 지루하고

답답함도 느껴지기에 경기권이지만 먼산에 해당하는 운악산으로 향하였다. 기실 운악산으로

가는 또 하나의 숨어 있는 이유는 경기권에서 능이버섯과 송이버섯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운악산으로 가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20여년전까지 이 산 언저리 여러곳에서 능이버섯과 송이버섯을 횡재하였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그러나 십여년전부터 나보다 동작 빠른 지역주민들에 밀려서 매번 꽝을

치고 부터는 이곳을 찾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으면 좋고 없으면 유람이나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산행

코스를 만경로능선으로 하였다. 이틀동안 비가 내린 다음날의 능선길은 능이와 송이가 자라

나기에 최적의 상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숲은 예전보다 우거져서 능이와 송이버섯들이

자라기에 좋지 않은 환경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 저곳을 끼웃거려 보았다. 그런데 숲속을 누구인가 벌써 오늘 다녀간

흔적이 있다. 하긴 산아래 지역 주민들이 이른 새벽에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찰나..산 위쪽에서 버섯

채취작업을 마치고 하산하는 지역주민을 만났다. 아직 능이와 송이가 나오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다며 오늘은 능이버섯만 약 1kg 정도 수확했다고 한다.

 

그와 해여지고 잠시 망설였다. 계속 능이와 송이버섯을 탐색하로 길 없는 산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모처럼 찾아 온 운악산을 유람산행을 할 것인지 망설였다. 그런데 갑짜기 안개와

운무에 휩쌓여 있던 만경로가 밝아지고 산아래 풍경이 시원하게 열리는 날씨로 바뀌고

있었다. 큼큼~ 이런 날씨라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없이 유람산행을 하기로 했다.

 

눈섭바위이다. 이 바위는 중생대 쥬라기 화강암으로 약 1억 5천년에서 2억년 사이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어서 형성된 암석으로, 차별화된 풍화로 눈썹모양으로 형성되었

는데..예전부터 전해 오는 전설이 하나가 있다.

 

옛날에 한 총각이 계곡에서 목욕하는 선녀들을 보고는 치마를 훔쳤다. 총각은 치마가 없어

하늘에 오르지 못한 션녀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선녀는 치마를 입지 않아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에 총각은 덜컥 내주었고, 치마를 입은 선녀는 곧 돌아

오갰다며 하늘로 올라갔다. 총각은 션녀 말만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이 눈섭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만경로능선은 눈섭바위를 지나면서 부터 조금씩 위험한 난코스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60년대말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이 코스를 접했을 때는 자일을 이용하여서만이 갈 수 있는

대단히 난해하고 위험한 길이였다.

 

그래서 70년대 중반까지는 오로지 바위꾼들만이 다닐 수 있는 비경의 코스였다. 그런데 안전

장비없이 이 코스를 타다가 많은 사람들이 추락 사망을 하여서 70년대 중반에 최소한의

철사다리와 안전 로프를 설치한 것이다.

 

산아래의 안개는 점차 거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 산 위의 운무는 오락가락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이 바위를 찐빵, 호떡, 버섯바위라고 기분 내키는 대로 부르던 바위였는데..

요즘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첫번째 전망이 좋은 암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대슬랩 암벽구간을 오르다 오른쪽 절벽에 핀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바위구절초를 만났다. 문득 곽재구 시인의 들국화란 詩가 스처 지나간다.

 

사랑의 날들이 올듯 말듯 기다려온 꿈들이 필듯 말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무릎걸음으로 걸어 간 절벽 끝에서 당신은 햐얗게 웃고 오래 된 인간의 추억

하나가 한 팔로 그 절벽에 끝끝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들국화 / 詩 곽재구)

 

절벽 여기저기 흐터져 피어 있는 들국화를 감상하며 바위길을 오르다 보면 도봉산 여성봉

정상의 거시기를 닮은 바위와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가운데 소나무는 많은 세월이

흘러갔는데도 별로 자란 것 같지 않다.

 

이곳부터는 암벽지대라 곳곳에 펼져 보여주는 명품소나무들이 즐비한 곳이다.

산아래 숲으로 가려진 현등사와 암자가 관심을 두고 보는이에게만 살짝 보인다.

 

이름없는 암봉에 올랐다가 급경사지대로 내려서는 길은 안전하게 나무테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 운악산에서 유일하게 산행길에서 만난 걺은이들 3명이다.

 

운악산 최고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나무테크가 설치되어 있는 전망대이다. 이름하여

포토존인데 갑짜기 날씨가 심술을 부린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펼처지는 운무(雲霧)의

광경은 운악산이 왜 운악산인지 설명하고 있는 듯 하였다.

 

어찌할것인가..? 그냥 정상으로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기다릴 것인지..? 망설이고 있는데,

젊은 친구들은 그냥 올라 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올라가기에는 너무 아쉬워 나는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선명하고 화사한 모습도 보기 좋지만 신비로운 몽환적 분위기에

휩쌓여 있는 풍광도 버릴 수 없는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운악산(雲岳山)은 화악산, 관악산(冠岳山:629m), 감악산(紺岳山), 송악산(松嶽山:489m)과 함께

경기 5악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산수가 가장 수려한 곳으로는 운악산(雲岳山)의 망경대

(望景臺)코스가 제일로 꼽힌다. 운악산(雲岳山)이란 이름은 망경대(望景臺)를 중심으로 높이

솟구친 암봉들이 구름을 뚫을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두대간의 여러 맥 가운데 한북정맥에 속한 산으로, 북쪽으로 청계산, 강씨봉, 국망봉 등과

이어져 있으며 북동쪽에는 화악산(華岳山:1,468m), 명지산(明智山:1,267m) 등의 명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매봉, 연인산, 서쪽으로는 관모봉이 보인다.  경기의 금강(金剛)으로 불릴 만큼

산세와 기암괴석, 계곡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대체로 산이 크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다. 남동쪽의 산 중턱에는 고찰 현등사(懸燈寺)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약 20여분간 신비로운 몽환적 분위기에 휩쌓여 기다렸더니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인지

짖은 운무에 가려져 있던 미륵바위와 병풍바위가 조금씩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기 시작

하였다. 절로 감탄사가 아니 나올 수 없는 절경이다.

 

이 병풍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신라 법흥왕(514년)때 인도승 마라하미(摩羅何彌)가 이 산을 오르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바위와 맞딱뜨렸는데 바위가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지 정신이 헛갈리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할

지경이였다. 허나 이것도 부처님의 뜻이라 여겨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으나 자꾸만 미끄러졌다.

마치 바위가 오르지 말라고 내치는 듯했다. 결국 마라하미(摩羅何彌)는 바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행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좀처럼 거칠것 같지 않던 운무가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나도 바로 미룩바위 옆으로

난 바위길로 올라갔다. 다행스럽게도 운악산 산신령님께서 나를 거부하지 않고 어여삐 봐

주어서 안전하고 쉽게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철심구간이다. 인도승 마라하미(摩羅何彌)가 올라가지 못한 구간을 나는

철심에 의지하여 안전하고 쉽게, 그러나 조금은 힘들고 위험한 구간을 즐기면서 올라갔다.

더군다나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몽환적인 운무에 휩쌓인 미륵바위와 병풍바위를 나는 넋을

놓고 바라 보았다. 그 어떤 형용사나 수식어를 필요로하지 않는 몽환(夢幻)적이다.

 

잠시 안부에서 숨을 고르고..

 

벌써 가을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단풍나무 사이로 난 철심구간을

두 발과 두 손을 동시에 사용하며 올라야 하는 구간이다.

 

그래서 이 코스는 상당한 위험한 구간들이 여러곳 산재해 있으므로

가능하면 겨울철에는 삼가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오른쪽으로 수직절벽으로 형성되어 있어 바라 보는 것 만으로도

간담을 써늘하게 하는 구간이다.

 

그렇게 간과 담을 쫄아들게 한 다음에는 그 보상의 답으로 운악산 최고의 명품 풍광을

아낌없이 보여 주는 미룩바위이다.

 

보고 또 보아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광이다.

 

지금까지 간과 담을 써늘하게 했다면

이제부터는 아예 감과 담을 동결시키는 코스가 시작된다.

 

외솔백이 명품소나무가 서 있는 수십길 절벽을 쇠줄 한가닥을 잡고 돌아 갈 때는

발 아래를 처다 보지 않아야 한다.

 

예전에(73년도) 설치되어 있던 철사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오금이 저리 오도가도 못하던 광경이 스처지나간다.

 

이제는 이렇게 안전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쉽게 오르고 내려갈 수 있지만,

주변의 아찔한 공포심은 변함이 없는 곳이다.

 

연속으로 설치되어 있는 철계단을 오르면..

 

운악산의 백호능선과 아기봉능선이 조망되고 있다.

 

망경대로 올라가는 오른쪽 절벽지대에 힘들게 자리잡고 있는 명품소나무 한 그루..

 

망경대로 올라가는 마지막 철심구간이다.

 

망경대로 올라가는 철심구간의 오른쪽은 이렇듯 수직 절벽으로 다시 운무에 휩쌓이고 있었다.

 

운악산 최고의 전망대인 망경대(望景臺)이다. 

아쉽게도 망경대 주변은 갑짜기 운무에 가려 전망은 제로 상태이다.

 

망경대에서 안전발판까지 설치되어 있는 철심구간을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 가면

운악산 정상(동봉)이다.

 

가평군에서 설치한 운악산 동봉의 정상 표시석이다. 그런데 왠 비로봉이얌~?

 

이 표시석은 포천군에서 설치한 동봉의 정상석이다.

 

동봉에서 바라 본 서봉이다.

서봉을 거처 포천, 일동쪽으로 하산할까 하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 원활하지 않아 포기했다.

 

정상에서 잠시 쉬고 있었더니 오전 산행길에서 만났던 젊은 친구들이 올라왔다. 한 친구는

산메니아이고 두 친구는 그냥 따라왔는데, 잘 한 것 같다고 한다. 다음에도 산행을 해야

겠다고 한다. 정상기념 인증샷도 찍어주었다.

 

정상에서 하산코스는 절고개 방향으로 하였다.

 

절고개 가기전에 있는 남근바위이다. 주변의 숲이 무성하여 남근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전설에 의하면 남근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원하는 아들을 점지해 준다고 한다.

 

절고개이다.

 

코끼리바위이다.

 

절고개폭포이다. 대체로 이 폭포는 마른 폭포인데,

몇일동안 내린 비로 수량이 제법 흐르고 있어 폭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럭저럭 현등사에 도착하였다. 현등사(懸燈寺)의 이름은 폐허인 절터의 석등에서 빛이 발하고

있어 지어졌다고 한다. 신라 법흥왕 떼에 인도의 승려 마라하미(摩羅何彌)를 위하여 창건하였

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 도선이 중창하고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재건하여 현등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등산로에서 절집으로 들어 가는 초입에는 함허당득통탑(涵虛堂得通塔)과 석등(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99호) 있다. 1411년(태조11) 현등사를 중창했던 함허조사(1376~1433)의

사리탑(높이 2.6m)으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이다.


경내의 서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1433년 문경 봉암사에서 입멸한뒤 세종대왕의 명을 받고

내려온 효령대군이 사리를 수습해 탑을 조성했다. 3단의 팔각형 기단 위에 옥주형 탑신을 배치

했다. '함허당득통'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고 옥개석은8각 지붕으로 물매가 급하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 보륜과 보주를 두었으며 조선 초기 부도의 양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부도 앞에는 세종의 왕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석등(높이1.2m)을 배치했고 양주 화암사의 3대

조사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문경 봉암사, 황해도 연봉사, 강화도 정수사에도

함허당의 부도가 있는데 그 중 현등사의 부도탑이 으뜸의 품격을 갖추었다.

 

현등사의 모습은 예전 60~70년대 내가 보았던 천년고찰이 아니다.

이제는 괭장히 웅장한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낮설다.

 

그나마 조금은 남아 있는 현등사 삼층 지진탑(懸燈寺三層地鎭塔)과

주변의 오래 된 나무들이 옛 기억을 도와주고 있다.

 

중생의 108번뇌를 생각하며 108계단을 내려갔다.

 

아직도 중창을 한창 진행하고 있는 절집을 나와서 나홀로 산길을 내려가는 오른편에는 계곡

물길과 함께 계속 내려간다. 가파른 계곡이라 연이은 폭포에서 울려 퍼지는 물소리는 삼라의

모든 잠념을 털어버리게 한다. 적당한 곳에서 오늘 흘린 땀을 씻어내고 준비해 간 옷으로

갈아 입고 운악산 산신령 흉내를 내며 집으로 돌아왔다..^^

 

 

2014/09/05 - 휘뚜루 -

Guido Negraszus의 뉴에이지 전자음악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