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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산행기

덕산(德山) 또는 망산(望山)으로 불리고 있는 덕산(德山)과 국수산(國壽山)산행

by 휘뚜루50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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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德山) 또는 망산(望山)으로 불리고 있는 덕산(德山)과 국수산(國壽山)산행

    2022/02/14 - 월요일 -


덕산(德山) 정상에는 망산봉수(望山烽燧)라는 안내판이 있다. 유독 남해안과 서해안 바닷가에 
망산이란 지명이 많은데..글자 그대로 옛날에 왜적의 망을 보았던 산들이여서 망산이란 

지명이 많이 있는 것이다.

 

봉수(烽燧)는 근대적인 통신이 만들어지기 전에 외적의 침입과 같은 국가적 위급 사태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횃불을 올려 인근 봉수대(烽燧臺)를 거처 

중앙으로 소식을 알렸다.

 

강화 망산봉수(望山烽燧)와 관련하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으로 
진강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 서쪽으로 교동의 화개산 봉수로 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망산봉수 유적은 2000년 육군박물관을 통해서 실시한 지표조사를 통해 위치가 확인되었다. 
한편, 2012년에는 강화군에서 실시한 봉수 유적발굴조사를 통해 망산봉수가 정방형 기단에 
원형 연대를 갖추고 있었던 것을 파악하였다.

국수산(國壽山)은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와 황청리 경계에 있는 높이 193m의 야산으로 외포항 
북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은 돌로 담장을 쌓아 돌참호 형태를 만들어 놓았으며 표시
없는 삼각점, 사각형 모양의 벤취, 무너진 대피소가 있다.

 

그리고 국수산(國壽山)의 지명 유래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국수산 정상은 산은 낮지만 일급
조망처로 알려진 곳이다. 최근에 개통한 석모대교와 상주산, 그리고 망월평야 너머로 별립산과 
교동대교의 풍광은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190m급 낮은 산에서 볼 수 있는 산이다.

 

강화도에 있는 산 중에 내가 아직 한번도 다녀오지 않은 산이 덕산(또는 망산)과 국수산이다. 

기실 해발고도가 낮아서 관심밖의 산이였는데..최근 인터넷을 서핑하다보니 많은 산꾼들도

찾는 산이라 나도 한번 산행해 보기로 하였다.

 

외포리 버스 정유소에서 내려 마을길을 따라 산쪽으로 올라가니 강화둘레길과 만나게 된다.

재개발사업에 묶인것인지 마을은 온통 폐허수준이다. 오래된 고목나무를 지나면..

 

친절한 강화나들이길 이정목이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

강화 나들이길 이정목을 따라 산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집들을 철거한 공터를 지나게 된다.

 

공터에서 뒤돌아 바라본 외포리마을 전경..그 뒤로 진강산과 마니산이 조망되고 있다.

 

마니산 방향..

 

석모도의 대섬과 해명산 방향..

 

시누이대밭을 지나고..

 

가야할 덕산(망산)이 보인다.

 

국수산도 살짝 보이고 있다.

 

다시 뒤돌아 바라본 해명산과 석포리선착장 전경..

 

외포리 상수도물을 저장하는 탱크시설 전경..

 

전망 좋은 언덕위에 도착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성산 당집이다.

 

강화 외포리(江華 外浦里) 곶창굿(古創祭儀) 당집은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화도 덕산 줄기인 성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강화 외포리 곶창굿의 원류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어업에 종사하는 정포(井浦)
마을과 농업에 종사하는 대정(大井)마을의 주민들이 곶창굿의 주산인 득제장군을 모시고 풍농
풍어(豊䢉豊漁)와 함께 마을의 태평과 번영을 기원하는 도당굿의 형태로 전해져 내려오고있다.

 

194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매년 실시하여 왔으나 현재는 격년 또는 3년 걸이로 음력 2월에 행해
지고 있으며 사흘간 계속된다. 다른 굿과는 달리 매일 오후 4시에 굿을 중단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밤을 지새우는 것이 특징인데, 전통적인 향토축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어 소중한 지역 
유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곳에서 강화둘레길과 작별하고 길도 없는 벌거숭이가 된 능선으로 올라갔다.

 

벌목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온통 작은 아까시아밭 형태이다.

 

또한 자라공풀과 함께 자란 아까시아 가시밭을 통과하기에는 난형난제이다.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진퇴양난에서 잠시 뒤돌아 외포리항을 바라보았다.

 

석모대교가 완공되기전의 화려했던 날들은 사라지고 서서히 퇴락하는 어촌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진강산 방향..

 

벌목지대의 아까시아 가시밭을 어렵게 통과하여 숲속에 도착하니 사람도 다니지 않는 안부에 

국가조난 신고번호 표시만이 설치되어 있다. 이 능선으로 사람들이 나처럼 다니는 하나보다.

 

해송들이 즐비한 산길..

 

능선길에서 만난 썩은 영지버섯..

 

해송과 금강송이 석여 공생하고 있는 지대..

 

왠 돌담..? 나중에 위쪽으로 올라가서보니 무덤의 바람막이 돌담이였다.

 

덕산산림욕장과 외포고개에서 올라오는 등산길과 만나다.

 

지난 태풍에 허리가 두동강나서 생을 마감한 금강송(또는 적송) 한 그루..

 

생강나무가 움트기를 준비하고 있다. 큼큼~촛점을 맞추지 못했다.

 

진달래꽃망울도 움트기를 준비하고 있다.

 

능선 위에서 부터는 조망이 부분적으로 열리기 시작하였다.

 

내가저수지와 고려산과 혈구산 방향..

 

혈구산과 진강산 방향..

 

혈구산을 줌으로 당겨보고..

 

고려산과 혈구산 전경..

 

덕산(망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망월평야와 별립산을 줌으로 당겨보다.

 

외포리 방향만 보이는 외포리 전망대..

 

외포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강산 방향..

 

외포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니산과 석모도 대섬 방향..

 

외포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석모도의 석포리 나루터와 해명산 전경..

 

외포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선장 기능을 잃어버린 외포리 나루터..

 

외포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선장 기능을 잃어버린 석포리 나루터..

 

외포리 전망대 전경..

 

지근거리에 있는 덕산(망산)으로 가는 길..

 

길목에 있는 이정목..

 

덕산(망산) 봉수대 풍경들..

 

덕산(망산) 봉수대 풍경들..

 

덕산(망산) 정상에 있는 덕산정자..

 

조망은 없고 쉼터로만 활용되는 덕산정자이다.

 

예전에는 망산봉수(望山烽燧)로 활용되어 망산(望山)으로 불리었던 봉수대(烽燧臺) 정상..

 

그러나 봉수대(烽燧臺)로 사용하지 않으면서부터 덕산(德山)으로 불리고 있는 정상이다.

 

그리고 덕산(망산)의 높이도 인터넷 산행기에 보면 들쑥날쑥하게 여러 높이로 표기하고 있는데..

 

국립지리원의 덕산(망산)의 높이는 해발 240m로 되어 있다.

 

덕산(德山) 또는 망산(望山)에서 조망은 동서남북 시원하개 열려 있다.

 

석모도 상주산과 교동의 화개산 방향..오후가 되면서 점점 날씨가 흐려지고 있다.

 

망월평야와 별립산 방향..

 

봉천산 방향..

 

상주산과 별립산 방향..교동대교는 흐린 날씨로 보이지 않는다.

 

상주산과 화개산을 줌으로..

 

별립산을 줌으로..창후리는 교동대교가 개통되기전 교동으로 가는 도선선착장이였다.

 

파노라마로 담아본 상주산과 별립산 전경..

 

진강산과 마니산 방향..

 

석모도 방향..

 

진강산과 마이산과 석모도 방향..

 

외포리 나루터를 줌으로..

 

가야할 국수산과 석모도의 낙가산과 상봉산 전경..

 

덕산(德山) 또는 망산(望山)에서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국수산으로 향하였다. 길은 다소 가파르게 내려가다 완만하게 능선을 따르게 되어 있다.

 

어느 님이 바위에 써 놓은 산이주는 교훈..이곳에서 조금 더 내려서면 길은 국수산 정면으로

가지않고 왼편으로 90도꺽어저 내려간다. 외통수길이라 믿고 따라가 보았다.

 

이곳에서 국수산으로 가는 길은 오른편으로 다시 꺽어져 안내하고 있다.

 

안부에 있는 이정목..

 

덕산(망산)과 국수산을 가고 오는 길 중에 헷갈릴 수 있는 길이지만 이정목이 가라는 대로 가면 된다.

 

해송 숲길..

 

다시 강화둘레길과 만나고..

 

안부 사거리에서 국수산으로 가는 등산로..

 

잠시 뒤돌아 바라본 덕산(만산) 전경..

 

또 다시 해송숲길..

 

국수산 정상 직전에 있는 전망대..

 

석모도 방향..

 

석모대교 방향을 줌으로..

 

국수산(國壽山) 정상이다. 정상테크마당에 준비해간 컵우동으로 나혼자만의 만찬을 하였다.

인스탄트 컵우동과 김치만으로 먹는 만찬이지만 산아래에서 먹는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좋다.

 

강화군의 제정이 어려운지 덕산(망산)이나 국수산의 정상 표시석을 만들지 않으니까

등산인들이 자연석에 표식을 해 놓았다.

 

내가 알기로는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생활체육기금에서 등산로를 만들고 하는데..

 

그 중의 일부를 활용하면 후대에 물려 줄 의연한 정상석은 만들고도 남는 줄 아는데..

자고로 공무원은 일처리의 우선순위를 잘 선정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국수산 정상 테크에서 줌으로 바라본 석모도 선착장 앞에 있는 대섬 전경..

 

해명산을 줌으로..

 

낙가산과 상봉산을 줌으로..

 

돌섬과 섬돌모루도 전경..

 

줌으로 당겨본 석모도 상봉산과 교동의 화개산 전경..

 

줌으로 당겨본 망월평야와 별립산 전경..

 

파노라마도 담아 본 상주산과 별립산 전경..

 

줌으로 담아본 황청1리 마을 전경..

 

황청저수지와 별립산 전경..

 

줌으로 담아본 황청저수지 전경..

 

파노라마로 담아본 석모도 전경..

 

석모대교 전경..

 

국수산 정상 부근에 있는 엣날굿당터..?

 

국수산 정상의 테크 전망대..

 

석모대교 방향의 급경사 하산길..

 

조망이 없는 숲속에 있는 정자..

 

어느 개인 묘지터에 도착..

 

석각돈대(石角墩臺)이다. 이곳의 주소는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 산 171번지이다.

 

석각돈대(石角墩臺)는 조선후기 강화도 수지체제의 중요한 방어시설로 외적의 해안 상륙을

저지하고 나아가 수도방위의 전초적 역할을 담당하여 외세의 침략을 사전 효율적으로
응징하고자 설치된 국방 유적으로 조선 숙종 5년(1679) 축조한 돈대 중의 하나이다.

 

석각돈대에서 바라본 강화 해누리공원과 석모대교 전경..

 

석모도 삼산면 방향..

 

강화해누리추모공원 전경..

 

해누리공원은 무분별하게 분묘가 설치되어 미관을 해치고 있던 기존의 황청리의 공설묘지를
재정비해 경관을 개선하고, 국가유공자의 오랜 숙원을 해결하기 위해 6만 6,000여m² 부지에
국비 28억원과 군비 101억 등 총사업비 129억 원을 들여 국가유공자 묘역 2,000여기와 일반
군민 묘역 2,300여기 등 총 4,300여 기를 친환경 자연장지로 조성된 곳이라 한다.

 

강화 해누리추모공원에 있는 횃불탑..

 

석모대교 전경..

 

강화 해누리 추모공원에서 핸폰으로 버스시간을 검색보니 곧 도착 버스가 없기에 느긋하게

석모대교 버스정유로소로 내려가는데..군내버스가 총알처럼 빠르게 획~지나가 버렸다.

 

아니 시골버스들은 가끔씩 운행단말기를 켜지않고 다니나 보다. 제기럴 적어도 지금시간대에서는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해서..차라리 외포리까지 걸어가기로 하였다. 그래봐야 30분 정도면 도착

할꺼니까..외포리에서 강화터미널행 버스는 수시로 있으니까..^^

 

허튼개고개를 넘어서 바라본 석포리나루터 방향 전경..

 

대정마을에서 망양돈대 중간에 있는 그 유명한 방랑식객 임지호님이 개업한 '산당'음식점이다.

방랑식객 임지호 자연요리연구가는 지난해 6월 1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로 
평소 지병도 없었다는데 심장마비로 갑짜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임지호 연구가는 40여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요리를 만들어 '방랑식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연 그대로를 담아낸 듯한 그의 요리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2006년에는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보약과 같은 음식을 선보였던 방랑식객, 자연요리 연구가 임지호 셰프는 산과 들에서 먹을 
것을 찾아 투박하게 차린 밥상은 보기에는 볼품없고 맛의 강렬함도 덜하지만 재료 자체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그대로 우리 몸에 전달한다고 한다.

 

특히 그의 요리는 영혼을 울리는 마력을 지녔다. 그의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맛”이라고 입을 모았었다. 생전에 그와 두서너번 

산행을 함께했던 기억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처 지나간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그와의 이별이 많은 사람들을 황당하게한 못 쓸 사람이였다. 삼가 님의 명복을 빌며..

 

외포리항 입구를 지나고..

 

외포리 버스 정유소에 도착하자 곧 바로 강화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있어 승차하였다.

 

강화터미널에서 서울 신촌까지 운행하는 3000번 광역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가는데 창밖에는 

을씬년스러운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된 이별없이 황망하게 떠나간 방랑식객의

검으스레한 얼굴이 스처지나간다. 30년전 구목령 곰취 무허가 농장에서 햐얀 이를 들어내며

웃던 얼굴이다. 이제 편히 영면(永眠) 하시길.....

 

2022/02/19 - 휘뚜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