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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산행기

마애석불(磨崖石佛)이 두 곳에 있는 홍성의 용봉산(龍鳳山) 산행

by 휘뚜루50 2022.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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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석불(磨崖石佛)이 두 곳에 있는 홍성의 용봉산(龍鳳山) 산행

      2022/02/17 - 목요일 -


용봉산(龍鳳山)은 높이 381m로 큰 산은 아니며 험하지도 않으나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
로 이루어져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다. 정상까지 산행하는 동안 수백장의 한국화를
보듯이 시각각으로 풍경이 바뀌는 것이 용봉산의 특징이다. 

 

이 산의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듯한 형상인데서 유래했다. 남방향 중턱과 서편
산록에 완만한 경사가 길게 펼쳐져 있고 요소요소에 소나무 군락이 자연발생적으로 있으며, 
장군바위 등 절경과 백제 때 고찰인 용봉사와 마애석불(보물)을 비롯한 문화재가 곳곳마다 
산재한다.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예산의 덕숭산(수덕사), 서산의 가야산, 예당 평야의 
시원한 경치도 일품이다.

 

용봉산에는 마애석불(磨崖石佛)이 두 곳에 있다. 대한민국 보물 제355호로 지정된 홍성 신성리
마애여래입상(洪城 新耕里 磨崖如來立像)이 있고..용봉사 절 앞에 있는 충남 유형 문화재 제118
호 용봉사 마애불(龍鳳寺 磨崖佛)이 있다. 두 마애불상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홍성 신경리 마애여래입상(洪城 新耕里 磨崖如來立像)은 충청남도 홍성군 용봉산의 바위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마애불 입상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355호 홍성 신경리
마애석불(洪城新耕里磨崖石佛)로 지정 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충청남도 홍성군 용봉산에 있는 불상으로 돌출된 바위면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돋을새김으로 높이 4m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
이 큼직하다. 얼굴은 몸에 비해 크고 풍만하며, 잔잔한 미소가 흘러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목 밑에서는 굵직한 몇가닥의 선으로 표현되었지만 아래쪽은 가느
다란 선으로 도식화되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파낸 바위면을 
이용해 희미한 음각선으로 윤곽만을 나타냈다.

 

전체적으로 얼굴 윗부분은 입체감이 있고 원만한데 비해 아래로 내려갈수록 양감이 약해져 
균형이 깨지고 있는 작품으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용봉사 마애불(龍鳳寺 磨崖佛)은 용봉사 앞에 병풍처럼 펼처진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입상이다. 불상의 오른쪽 어깨에 정원 15년이란 글이 있어 799년(신라 소성왕 원년)에 

제작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애불(磨崖佛) 중 제작시기와 관련된 인물 정보가 남아 있는 매우 드문 사례로 통일신라

말기 불상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8호이다.

 

머리와 얼굴 부분이 뚜렸하게 돌출되었으며, 몸과 옷 주름은 얕게 조각되어 있다.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고, 귀는 어깨에 닿을 만큼 길다. 비교적 큰 얼굴과 

가는 눈, 움푹 들어간 볼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홍성에 있는 용봉산(龍鳳山)으로 가기로 하고 버스로 갈까..?기차로 갈까..? 저울질하다 교통편의로는

기차가 여러모로 편리하기에 06시 22분에 익산까지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하여 용산역으로 갔다.

 

용산역에서 탄 무궁화호는 천안과 예산를 경유하여 홍성역에 08시35분에 도착하였다. 홍성의 

옛 이름은 홍주인데 조선말까지도 홍주부로 스물 두 개의 군을 관할했다. 더 거슬러 올라 고려 

공민왕 때에는 당시 왕사였던 태고 보우의 고향이라 하여 홍주목으로 승격되어 지금의 
서천군과 평택시에 이르는 다섯 개의 군과 열네 개의 현을 거느렸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결성군과 합쳐져 홍성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충청남도에서도 
작은 편에 드는 군이 되었다. 하지만 홍성 사람들에게는 뿌리 깊은 자부심이 있었으니, ‘인물’
이었다. 최영, 보우, 신돈, 성삼문이 홍성에서 태어났고, 근세의 인물로는 한용운과 김좌진이 
이곳 출신이다. 홍성역에서는 용봉산 들머리 매표소까지는 택시를 이용하였다.

 

큼지막한 용봉산 자연휴양림 표시석이 반겨주고 있다.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의 용봉사 일주문을 지나고..

 

용봉사 절집 입구 좌측에 있는 용봉사 마애불(龍鳳寺 磨崖佛) 전경..

 

오늘의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용봉사(龍鳳寺) 전경..

 

용봉산 산행 들머리..

 

산으로 가는 길.. 용봉사에서 병풍바위로 가는 길은 잘 관리되어 있었다.

 

용봉사(龍鳳寺)는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유물을 볼 때

백제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추종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용봉사(龍鳳寺)에는 보물 제1262호의 쾌불영산화상도, 옛 터에 있는 보물 제 355호 마애석불,

또 하나의 마애석불은 충남 지방문화재 제118호, 정방형 석조와 절구, 맷돌 등 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예전 평양조씨 가문에서 묘지터를 조성하기 위해 구 용봉사를 폐사시킨 것을

훗날 주민들과 신도들이 현재의 위치에다 이전해서 새로 지은 절이라고 한다.

 

병풍바위로 가는 길..

 

병풍바위는 통바위가 아니고 조각난 바위들로 구성된 좀 특이한 병풍바위이다.

 

병풍바위를 휘돌아 가다보면 처음으로 조망이 열리는 곳이 있었다.

 

오늘 가야할 용봉산(龍鳳山)의 봉우리들이 한 눈에 조망되고 있다.

 

병풍바위를 우회하여 돌아가면 구룡대 능선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이정목을 만난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이 지난 09시 30분이지만 기온은 영하 5도의 추운 날씨이다.

 

능선길에 올라서니 매서운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0도에 육박하는듯 하다.

돌밭 계단길을 걸어 병풍바위 위로 올라가니 내포방면의 신도시가 시원하게 조망되었다.

 

명품송 한 그루 뒤로 십여년전에 이전한 충청남도 도청소재지 내포지구와 봉수산이 조망되고 있다.

 

병풍바위 위에서 바라본 용봉산의 산봉우리들..용봉사와 홍성 신경리 마애석불도 보이고 있다.

 

병풍바위 위의 풍경..

 

병풍바위의 명물인 의자바위에서..

 

병풍바위의 명물인 의자바위에서..

 

병풍바위에서 다시 한번 가야할 용봉산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다.

 

파노라마로 담아본 용봉산 전경..용봉사와 홍성 신경리 마애석불이 조망되고 있다.

 

용바위로 가는 길에 있는 명품송 한 그루..

 

기암과 명품송 한 그루..

 

기암들로 구성되어 있는 바위길..

 

용봉산은 서울 근교의 산들과 많이 닮아 있다.

 

특히나 관악산의 바위의 형질과 소나무와 노간주나무들은 동류항들이다.

또한 북한산과 도봉산에 익숙한 나에게는 익숙한 길처럼 느껴진다.

 

이곳 부근에서 불실한 아침보충으로 고구마와 과일과 쥬스를 맛나게 먹었다.

 

용바위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용바위 삼거리에 있는 이정목..

 

용봉산은 산의 형상이 용의 몸집에다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이 바위를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봉황의 머리라고 하는데..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용바위에서 바라본 용의 몸통을 닮은 산줄기들..

 

용바위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전망대로 갔다.

 

전망대는 넓은 테크로 조성되어 있었다.

 

지난 해 가을에 다녀온 가야산의 산봉우리들이 조망되고 있다. 옥양봉, 석문봉, 가야산, 원효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암봉 방향..

 

전망대에서 바라본 내포신도시 전경..

 

줌으로 당겨본 내포신도시에 있는 충남도청 전경..

 

전망대에서 조망을 끝내고 용바위를 지나 임간휴계소 삼거리 안부로 내려갔다.

 

임간휴계소 삼거리 안부..주변에는 쉬어 갈 밴취들이 수두룩하였다. 산림휴양원이 들어서기전에는

절고개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임간휴계소 삼거리로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용봉사로 약 100여m

내려가서 보물 제355호로 지정된 홍성 신성리마애여래입상(洪城 新耕里 磨崖如來立像)을

20분간 알현하고 되돌아 올라 왔다.

 

악귀봉으로 가는 길..

 

뒤돌아 바라본 지나온 산봉우리들..

 

능선 숲속에 있는 쉼터 정자..용봉산 능선길에는 다른 산들에 비교하여 쉼터들이 많다.

 

악귀봉으로 가는 완만한 능선길..이곳은 간밤에 내린 눈이 조금 쌓여 있다.

 

기암과 소나무들로 구성되 있는 구간..

 

악귀봉 오름길은 완전 바위들로 되어 있다.

 

뒤돌아 바라본 내포신도시 아파트 전경..

 

악귀봉 오름길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보호망이다.

 

악귀봉 정상 부근에 있는 우리나라 전통 명견 삽살개바위라고 한다.

 

삽살개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널리 서식한 한국의 토종개. 삽사리라고도 한다. 삽살은 귀신이나 

액운(삽)을 쫓는다(살)는 뜻이다. 1992년 경북 경산시 삽살개육종연구소에서 보호육성한 ‘경산의 

삽살개’가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됐다고 한다.

 

구름다리 부근에 있는 기암..

 

악귀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구름철다리..

 

악귀봉 전경..

 

악귀봉 정상에 도착하다.

 

악귀봉 정상 부근에 있는 물개바위 전경..

 

악귀봉 정상에서 바라본 지나온 산봉우리들..

 

악귀봉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악귀봉 정상에서 바라본 돈리저수지와 가야산 방향..

 

천년고찰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과 흰 눈에 덥혀있는 가야산을 줌으로 최대한 당겨 보았다.

 

악귀봉 자락에 있는 낙조 전망대(빨간 별표)

 

악귀봉 낙조전망대(빨간 별표)에서 바라보는 서해 안면도의 낙조가 일품이라 하는데..

 

악귀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할 산봉우리들..용봉산 뒤로 홍성 백월산이 조망되고 있다.

 

악귀봉에서 낙조 전망대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병풍바위 전경..

 

용봉산 악귀봉 낙조전망대 전경..

 

이 바위 앞에 두꺼비바위 입간판이 있어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른쪽 암릉 바위군상을 차례대로 흩어보았더니 빨간 별표부분이 수상하였다.

 

줌으로 최대한 당겨 보았더니 두꺼비 한 마리가 비상중인 모습이 포착되었다.

 

낙조전망대에서 바라본 노적봉과 용봉산 전경..

 

그리고 용봉산과 백월산이 조망되고 있다.

 

다시 악귀봉으로 가는 길에..

 

낙조전망대 방향에서 바라본 악귀봉 전경..

 

악귀봉에서 장군바위로 가는 길..

 

장군바위 부근에 있는 쉬어가기 좋은 테라스..

 

위풍당당한 장군바위 전경..

 

장군바위 아래에서 바라본 장군바위..

장군바위에서 내려가는 구간은 안전망이 설치된 철심구간이다.

조심조심 또 조심하며 내려가다.

 

안부에 있는 무명 돌탑..

 

행운바위와 촛대바위 오름길에서 바라본 장군바위 전경..

 

이곳에서 우회로를 따라가면 행운바위와 촛대바위를 볼 수 없다. 그냥 직진해야 한다.

 

행운바위와 촛대바위 구간..

 

행운바위와 촛대바위 구간..

 

행운바위와 촛대바위 구간..

 

행운바위와 촛대바위 암릉릿지코스는 안전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다닐수 있다.

 

행운바위와 촛대바위에서 바라본 악귀봉과 가야산 전경..

 

악귀봉과 용바위 전경..

 

낙조전망대와 악귀봉과 장군바위 전경..

 

행운바위와 촛대바위에서 바라본 수덕사와 뒷산 방향..

 

수덕사를 줌으로 당겨보다.

 

용봉산의 보물인 암벽에서 옆으로 크는 명푼송 한 그루..

 

수령이 자그만치 100년은 된다고 하니 기특하네요..^^

 

명품송 안내문..

 

노적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용봉산 노적봉 마당바위 부근에는 간이 매점도 있나보다. 오늘은 휴업인가보다.

바람없고 햇살 좋은 노적봉 마당바위에서 간식타임을 하였다.

 

노적봉 마당바위에서 내려다본 내포신도시 전경..

 

봉수산 방향..

 

기암을 지나고..

 

안부에 내려서면 산림휴양관에서 바로 올라오는 삼거리이다.

 

용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뱀처럼 휘어진 명푼송 한 그루..뒤로 덕숭산과 가야산..

 

또 한 그루의 명품송도 지나고..

 

뒤돌아 바라본 노적봉과 악귀봉 전경..

 

능선에 있는 이정목..

용봉산 정상에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서 최영장군 활터 방향으로 하산을 해야 한다.

 

용봉산(龍鳳山·381m)은 산 전체를 뒤덥고 있는 기암괴석이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소금강이라 

불렀다. 지금의 용봉산은 고려시대에는 북산(北山), 조선시대에는 팔봉산(八峰山)이라 불렀다. 

 

일제시대 때 홍성군 지역에 있는 산줄기는 용봉산으로, 예산군 지역에 있는 산줄기는 수암산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용봉사와 수암사라는 절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하고 한다.

 

용봉산은 골짜기마다 문화재와 보물이 산재해 있으며, 다양한 전설들이 곳곳에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땅에서 사는 온갖 짐승과 새의 무리는 봉황이 지배하였고, 산 아래로는 물고기를 
비롯한 물속의 모든 것들은 용의 지배를 받으며 평화로운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 후로 하늘의 부름을 받아 승천하면서 산의 형상이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하여 
용봉산(龍鳳山)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년고찰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과 가야산 전경..

 

홍동산과 삼준산과 연암산 전경..

 

백월산과 지기산 방향..

 

계봉산 방향..

 

용봉산 정상 이정봉에는 퇴고봉이라 표시하고 있다.

용봉산 정상에서 간단한 인증샷만 하고 인근에 있는 전망테크로 갔다.

 

정상 전망테크에서 바라본 최영장군 활터와 봉수산 전경..

 

내포신도시 전경..

 

최영장군 활터와 봉수산 전경..

 

최영장군 활터봉 자락에 있는 촉대봉..?

 

백월산 전경..

 

최영 장군 활터 소개..
최 영 장군이 소년 시절에 애마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내기를 했다고 한다. 화살을 쏘아서 
말이 빨리 가면 큰 상을 내리고, 화살이 빠르면 말 너의 목을 치겠다는 내기였다. 말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소년 최 영은 말을 타고 건너편 남동쪽 5킬로미터 지점의 홍성읍에 있는 은행정 방향으로 화살
을 쏘았다. 동시에 말과 함께 바람처럼 달렸다. 최 영이 말과 함께 단숨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화살은 보이지 않았다. 최 영은 약속대로 사랑하는 애마의 목을 칼로 내리치는 순간 화살이 
피융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최 영은 자신의 경거망동을 크게 후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고자 약속했던 애마를 그 자리에 묻어주었다. 지금도 홍성읍 국도변 은행정 옆에 [금마총] 
이라고 부르는 말 무덤이 있다.

 

최영장군 활터에 있는 이정목..

 

이 부근 양지바른 곳에서 준비해 간 먹거리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였다.

 

최영장군 활터에서 바라본 오서산 방향의 산봉우리들..

 

봉수산 방향..

 

내초신도시 방향..

 

암릉 하산길..

 

아주 오랜 옛적에 바위에 인위적 구멍을 만들어 주술행위를 했던 흔적..

 

이곳 역시 험난한 암릉 릿지코스이지만 안전철망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쉬월하게 내려서다.

 

하산 암릉 릿지코스에는 심심찮게 명품송들이 있다.

 

암릉 릿지코스에서 바라본 용봉산휴양림 전경..

 

거시기를 닮은 바위..?

조심조심 또 조심하며 내려가는 암릉 길..

 

이름하여 흔들바위라고 한다..

 

제멋대로 생긴 바위군들..

 

관악산 장군바위능선과 미소능선을 많이 닮았다.

 

줌으로 당겨보니 흡사하다.

 

거북바위일까..? 자라바위일까..? 마지막 암릉을 내려서고..

 

이곳 이정목 삼거리에서 미륵불 방향으로 10여분 진행하다 미륵불 쪽에서는 아무래도

대중교통이 불편할 것 같아 원위치하여 용봉산 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였다.

 

현재 용봉산 자연휴양림은 충남지역 코로나-19 접촉자 격리시설이라고 한다.

 

주차장과 상가지역을 통과하여 대로변 정유소에서 20분 기다려 군내버스를 타고 홍성역으로 갔다.

 

홍성역에서는 미리 예약한 15시 36분에 용산역으로 출발하는 새마을호를 탓다. 하루종일 영하권

(영하 5~10도)에서 오르락하는 날씨지만 아래녘의 낮은 산인 용봉산에 왔더니 큰 불편없이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또한 화창한 날씨가 도와줘서 용봉산의 진면목을 잘 감상한 하루산행이였다.

 

2022/02/23 - 휘뚜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