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수용 밴드들 누른,
토종 정품 펑크 밴드 GUMX(검엑스)
에어컨에 선풍기까지 풀 가동된 세 평 남짓 지하 합주실 방 안은 냉장고와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 3인조 펑크 키드 검엑스는 윗통까지 벗어 젖힌 채 연습에 한창이다.
연주가 꽤 듣기 좋다. 이번 기습은 성공이구나 싶다.
이들 이(李)씨 트리오는 마침 24살 동갑내기들이다. 팔자 눈썹이 매력 포인트라는
비틀즈 마니아 이용원이 리드 보컬 겸 기타리스트다. 도어즈에 필 꽂힌 초 스피드
드러머 이응균과는 1996년부터 스쿨 밴드 검(GUM) 일원으로 호흡을 맞춰왔다.
''어디 한 번 맘대로 씹어보라''고 지은 팀 이름이었다. 기왕 하는거 제대로 해보고
싶어 첫 EP [Bogus Punk Circle]을 발표했으나, 별 반응은 얻어내지 못했다.
대신 앨범 타이틀에는 어설픈 짝퉁(fake)이 되느니 사이비(bogus)로 남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는 이들의 음악이 단순하게 펑크라고 한정 짓기 힘들
플러스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창단 4년 만인 2000년, 펑크 밴드 벤젠(Bengene) 출신의 그린 데이 열혈 팬 이근영이
전임 베이시스트의 빈 자리를 메웠다. 멜로디 파트를 강력하게 뒷받침할 코러스
보컬도 그의 몫이다.
클럽 활동에 주력하는 가운데, 자신들이 직접 만든 오리지널 곡을 확보하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이젠 씹지만 말고 음악도 좀 들어보라.''는 의미에서 이름 끝에
''X''자를 붙였다. 인디 레이블 [skunk]을 통해 또 다른 EP
[You Are So Beautiful](2001년)을 출시했다.
희귀한 수입 CD가 많아 자주 들른 [드림 온]레코드의 오프라인 매장에도 앨범을
선물했다. 국내 밴드까지 손댈 생각은 없었지만 음반을 통해 확인된 이들의 자질이나
음악 하는 자세는 호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결국 이 묘한 인연이 이들은 잇는 끈이 되었다.
하지만 성급하게 음반 작업에 착수하는 것에는, 양측 모두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담금질이 먼저였다.멤버 각자의 음악 취향이 저마다 조금씩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사, 작곡 파트를 주도하는 리더 이용원에 대한 동료들의 신뢰가 탄탄하고,
항시 열린 마인드로 아이디어를 교류하니 분란이 생길리 만무하다. 그리고 결국 마음
속에서는 미국 멜로딕 펑크의 대부 NOFX가 끊임없이 울부짖고 있으니 그만하면 된 거였다.
"우리만의 특색? 할 말 없어요. 그냥 펑크니까. 그래도 캐물으면?
시끄럽다고 소리질러 줘야지." (이용원)
"멜로디보다 가사 쪽에 좀 더 비중을 실었다고 할까요?" (이응균)하지만 죄다 영어
가사라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차리리 한글로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나중에 미국까지 갈 겁니다. [우드스톡]에 나가려고요." (이근영)
꿈이 야무지다. 대체 음악 하는 목적은 무얼까? 정말로 ''뽀대'' 때문에?
"전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애들, 진짜 싫어해요.
돈도 벌고 뜨고도 싶고 그런 게 사람 마음 아닌가요?" (이근영)
"그럴 바에는 차라리 방구석에 틀어박혀 혼자 연주하지?" (이응균)
작년 6월 내한 공연을 가진 일본 대표 언더 펑크 밴드 코코뱃(Cocobat)과 같은
무대에 선 일은 이들의 염원인 [우드스톡] 진출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그들의 무대에 반한 코코뱃의 리더 타케시(Take-Shit)가 직접 일본 진출을 주선하기에
이른 것이다. 역시 일본 멜로-코어계 슈퍼스타 하이-스탠더드(Hi-Standard)를 데뷔시키던
때와 비슷한 케이스로, 검엑스 멤버들이 녹음 작업 간간이 끄적거린 낙서를 바탕으로
직접 [What''s Been Up?] 앨범의 재킷 디자인을 제작해 주기까지 했다.

한편 [Toy''s Factory]의 산하 레이블 [Carnage] 창립 20주년 기념 앨범 [Hungry For
Carnage]에도 하이-스탠더드, 코코뱃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 리메이크 넘버 ''Hymn
To Love''(유명한 샹송 ''사랑의 찬가''가 원곡)를 실었다.
현지 라디오 방송국들이 앞 다투어 ''이달의 좋은 노래''로선정했고, 아울러 [TBS]의
스포츠 프로그램 [Super Soccer] 테마 송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6월 13일을
기해 우리나라에 정식 소개될 앨범에는 빠졌지만, 홈페이지(http://www.gumx.net)를
통해 동영상과 더불어 감상 가능한 트랙이다.
유난히 습하고 길었던 2002년 여름을 온전히 여의도 [KBS] 소재 [폴리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보냈고, 완성된 음원은 즉각 일본의 [Onkio Haus]로 공수되었다.
정상급 마스터링 엔지니어 나카자토 마사오의 최종 손질이 끝난 것은 마침 헬로윈 데이
(10월 31일)였다. 올해 3월, 일본 최고의 하드코어 & 펑크 레이블 [Toy''s Factory]를
통해 해외에 먼저 소개된 데뷔 앨범 [What''s Been Up?]은 발매 3개월만에 5천장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난다 긴다 하던 밴드들조차 거두지 못한 성적입니다. 한국 가수로는 보아(BoA)
바로 다음 가는 음반 판매고 아닙니까." (보아 광 팬으로 소문난 [드림 온] 관계자)
몇 년 전부터 물밑 스카우트 교섭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소문난 실력을 갖추었지만,
정작 일본 음악 신에서 어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래 이렇게 냉장고 뺨치는
합주실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밤 늦도록 연습에 몰두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미 1,000회가 넘는 공연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입지도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실실거리며 농담이나 해대는 모습이 정말 ''펑크 키드'' 답지만,
이들이라고 상처나 아픔이 없었을까?
[이나중 탁구부]의 만화가 미노루 후루야가 그린 [크레이지 군단]을 권해 주었다.
딱 자기들 이야기라면서, ''형''도 한 번 꼭 보시란다.(결국 다 읽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들 3총사 역시 이 만화의 내용과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펑크는 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싶다.
"엄마에게 앨범 보여주면서, 내 이름 여기 있다고 자랑하려고요.
반대 정말 많이 하셔서 가출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용원)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가짜 펑크 밴드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기도 한 스피드 만점
펑크 넘버 ''Turn Off'', 홍대 펑크 신 특유의 유치찬란한 러브 스토리를 고수한
''You Are So Beautiful'', 위트 만점의 LA 메탈 풍 넘버 ''Texas Song'' 그리고
''Last Life'', 그린 데이 찬가 ''Billy''s Day'', 일본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은
''I Love Tramp'', 미드 템포 발라드 ''Pain'', ''More Than Words'' 뺨치는
깜짝 어쿠스틱 발라드 ''Mountain'' 외에 국내 반에만 담긴 ''Nineteen Girl''
등이 저마다 자기가 최고라며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다.
올 여름 국내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음악 축제 외에,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 참여
가능성도 타진 중이며, 캘리포니아 출신 스카 펑크 밴드 수어사이드 머신(Suicide
Machine)과의 일본 투어도 거의 성사단계에 이른 상태다.
"진짜 음악은 삼십대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하고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자식을 무릎에 앉혀놓고 함께 들어도 부끄럽지 않을 음악을 하고 싶네요."(이용원)
글 / oimusic 2003년 05월호 양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