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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산행기

기암(旗岩)과 폭포(瀑布)가 명품인 국립공원 주왕산(周王山) 트레킹..

by 휘뚜루50 2019. 7. 16.


▒ 기암(旗岩)과 폭포(瀑布)가 명품인 국립공원 주왕산(周王山) 트레킹..

       2018/08/16(목요일)


주왕산(周王山)으로 산행하는 날이다. 지난번 설악산 울산바위 동봉과 서봉을 미로같은 안개속 산행을 한지 꼭 열흘만이다.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고..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여 아주 짧은 시간도 삼 년같이 길게 느껴진 시간들이였다.
누가 예전에 주왕산(周王山)을 말하길 "松松栢柏岩岩廻 水水山山處處奇"라~! 했거늘..직역하면 "소나무, 잣나무, 바위마다
돌아가고, 물과 물, 산과 산이 처처에 기이하도다~!"라고 하였듯이 오늘은 주왕산(周王山) 산행이 아닌 트레킹을 해 보겠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주 산행 대상지를 경북 청송군에 있는 국립공원 주왕산으로 하였다. 연속되는 폭염으로

시들어가는 일상을 또 다시 폭염산행으로 건강을 망칠수도 있다는 염려증으로 산행이 아닌 트레킹(trekking)으로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기암 괴석의 풍광에 청정계곡수가 넘처 흐르는 폭포가 여러개 있는 주왕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대중교통이지만 동서울에서 주왕산까지는 한번에 직통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있다. 소요시간은 약 4시간 30분이다.



그동안 주왕산을 대여셧번 다녀갔는데 모두 산행 위주로 다녀가는 바람에 기암괴석의 신비로운 풍광들을 제대로

감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하여 오늘은 산행은 하지 않고 느낌이 있는 트레킹(trekking)만 하려고 한다.



동서울 종합터미널에서 주왕산행 첫 차(06:30)를 타고 안동을 경유하여 진보와 청송을 지나 주왕산 종합 버스정유소에 약 11시

에 도착을 하였다. 버스에서 내릴려고 하니 갑짜기 검은 하늘에서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스처지나가는 소낙비인듯..

버스 터미널에서 산행준비를 하는 사이에 소낙비는 가늘어지고 곧 멈추었다.



한 두차례 내리고 지나간 소낙비 때문에 폭염은 사라진듯하다. 버스 터미널에서 바라본 장군봉(왼편)과 기암(오른편) 전경이다.



상가지역을 지나며 주방천 왼편으로 바라본 전경..



사진으로 많이 본 전경이다. 그동안 나는 이 바위의 모습을 장군봉으로 알고 있었는데..오늘보니 이 암봉은 기암(旗岩)이라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대전사(大典寺)를 알리는 돌비석..



돌비석을 지나 대전사 뜨락에서 바라본 대전사(大典寺)와 기암(旗巖)의 전경..

대전사(大典寺) 마당에서 보면 뫼산(山)자는 주왕산(周王山) 기암(旗巖)에서 유래된 것처럼 산(山)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다.

기암하면 기이한 바위란 뜻의 奇巖(기암)으로 알아듣는 이가 대부분인데, 한자로는 깃발바위란 뜻의 旗巖(기암)이다.



그 이유는 신라 헌덕왕 때 주왕으로 참칭하며 난을 일으킨 김헌창이 이 산으로 피신해 이 바위에 볏짚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위장했으나 화살이 튕겨져 나오는 것을 보고 거짓임을 안 정벌군이 결국 주왕을 제압하고 이 바위에 대장 깃발을 꽂았다고

하여 기암(旗岩)이라고 하였다. 기암(旗岩)을 줌으로 최대한 당겨보니 웅장하고 장관이다.



대전사(大典寺) 뜨락에서 파노라마로 담아 보았는데..역광 상태라 검은부르스이다.



대전사(大典寺) 돌담길에 띠엄띠엄 피어 있는 상사화(相思花)꽃..



다시 상가지역을 지나며 마주친 배롱나무꽃.. 목백일홍 또는 자미화(紫微花)라고 부른다. 한송이 꽃이 백일동안 피어

있는 게 아니고 수 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백련암을 거처 장군봉으로 가는 등산로 길..이 코스로는 등산를 해 보지 않았으니 다음에는 이 코스로 등산을 해 보아야 겠다.



다시 주방천에서 전망이 열리는 곳에서 바라본 기암..이곳에서는 3개의 암봉만 보인다. 실제로는 7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다.



기암교 삼거리..좌측으로 가면 용추협곡(龍湫峽谷)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가면 주왕산(周王山)으로 가는 산행 길이다.



오늘은 산행은 포기하였으므로 용추협곡(龍湫峽谷) 쪽으로 갔다.



아들바위라고 한다. 뒤돌아 구부려서 돌맹이를 던져서 바위 위에 올라가면 득남을 한다고 한다.



민초들의 소망이 담겨 있는 모습..



용추협곡(龍湫峽谷)으로 가는 길은 국립공원답게 잘 관리되어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다릴수 있는 길이다.



주왕굴(周王窟)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주왕암(周王庵)과 주왕굴(周王窟)로 가는 길에 바라본 연화봉(蓮花峯) 전경..

연화봉(蓮花峯)은 90도에 가까운 단애의 암봉으로 높이 30m, 폭 100m 정도이다.



주왕암(周王庵)이다. 주왕산(周王山) 대전사(大典寺) 동쪽으로 올라가는 계곡에 있는 주왕암(周王庵)의 주요 건물로는

나한전, 요사채, 칠성각, 산신각 있으며 나한전 후불탱화는 경북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 은거하였던 주왕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름 지어진 주왕암(周王庵) 암자에서 30m 떨어진 곳에 주왕굴이 있다.

주왕암(周王庵) 건물 뒤편 계곡에 있는 동굴로 협곡 사이 암벽에 자리한 자연동굴로 주왕이 피신했다.



애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동굴로 가는 좁은 협곡..



지금이야 철제테크길이 있어 쉽게 접근 할 수 있지만.. 그 옛날에는 어떻게 올라 갔을까..?



주왕굴(周王窟) 속에서 바라본 낙화수..



바위들이 미로처럼 엉키고 얽힌 주왕굴(周王窟) 위에 높게 솟아 있는 촛대봉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주왕굴(周王窟) 기도처.. 이곳이 주왕이 피신했다는 바로 그 주왕굴(周王窟)이다.



주왕굴(周王窟) 속에서 바라본 오른쪽의 폭포수..누구는 주왕폭포라고 하는데..맞는지 모르겠다.

암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때문인지 주왕굴은 엄청 시원하였다.



다시 왔던 철제테크계단을 따라 내려 갔다. 옛날 사람들은 나무계단을 만들어 다녔을까..?

주왕암(周王庵)을 지나 망월대(望月臺) 전망대로 갈 때는 다시 한줄기 소낙비가 내렸다.



주왕굴(周王窟)에서 망월대(望月臺)로 가는 힐링하기 좋은 오솔길..



망월대(望月臺) 전망대에서 바라본 연화봉(蓮花峯) 전경.. 아쉽게도 흐린 하늘에 역광이라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망월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병풍바위와 급수대..주왕산 국립공원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 중의 하나이며

특히 주왕계곡은 기암괴석과 다양한 식생이 분포되어 있어 봄에는 신록이, 가을에는 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영남 제1의 명산이다.


급수대(汲水臺)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주왕산 급수대(周王山 汲水臺)는 신라 37대 왕인 선덕왕(宣德王)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29대왕)의 6대 손(孫)인 김주원(金周元)을 38대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때마침 그가 왕도(王道)인 경주에서 20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閼川)이 범람하여 건너올 수 없게 돠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상대등(上大等)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리하여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는데, 당시 산위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이곳을 급수대라 이름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월대에서 담아 본 연화봉과 병풍바위, 그리고 급수대의 파노라마 전경..



만월대에서 용추협곡으로 가는 협곡에는 골바람이 불어 오는 풍혈이 있다. 골바람은 산기슭이나 골짜기로부터 산꼭대기 쪽으로 부는 바람을 말하는 것으로 낮 동안에 내리쬐는 햇빛에 의해 산의 비탈면과 골짜기는 다른 곳에 비하여 가열되면서 지면 부근의 공기가 따뜻해 지느데, 이 데워진 공기는 밀도 차에 의해 부양력이 생기므로 산의 비탈면이나 골짜기를 따라 상승하게 된다.


이 때 밀도차가 클수록 강한 바람이 불어 올라 가는게, 여름에 산에 올라갔을 때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골짜기 바람이 산의 비탈면을 따라 불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짜기에서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바람을 곡풍(谷風)이라고도 한다.



용추협곡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한 사람이 서있는 뒤로 철계단이 만월대와 주왕암으로 가는 길이다.



용추협곡 입구에 해당하는 삼거리..



용추협곡 입구에 있는 아치교..



아치교에서 바라본 시루봉..좌측에서 바라보면 사람 얼굴을 닮았다.



아치교에서 바라본 용추협곡 입구 전경..



아치교를 지나 뒤돌아 바라본 학소대..



용추협곡은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침식협곡이다.그리고 용추협곡에 있는 용추폭포는 용꼬리에 해당하는 폭포라는 뜻이며,
총 3단 폭포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과 2단 폭포 아래 돌개구멍은 각각 선녀탕, 구롱소라고 불린다. 폭포 주변의 응회암
절벽에서는 피아메라고 불리는 렌즈모양으로 납작하게 눌려진 암석조각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청학동이라 불리며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입구의 협곡을 들어서면 마치 신선세계에
발을 딛는듯한 착각마저 들게한다. 응회암에 발달하는 틈들을 따라 침식이 일어나면서 첩첩산중의 보배를 만들게 되었다.



돌개구멍과 폭호는 어떤관계인가..?
돌개구멍은 암석에 생긴 원통형의 구멍을 말하는데 암석의 깨어진 틈을 따라 자갈과 모래가 갇혀 물과 함께 소용돌이 치면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폭호는 폭포 아래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만들어진 웅덩이이다. 즉, 물이 흐르면서 생긴것이 돌개구멍,
물이 떨어져 만들어진 것이 폭호이다.



주왕산(周王山)의 '주왕(周王)'은 과연 누구인가..? 문득 주왕에 대하여 설왕설래하기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어느 역사학자의 소개글이 있기에 과감없이 여기 옮긴다.


국립공원인 태백산맥의 남단 주왕산(周王山 721m)은 기암절벽이 많고 여러 곳에 아기자기한 폭포도 있어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소나무 군락을 비롯 망개나무 복장나무 자작나무 난티나무 등 희귀식물들이 많은 숲길도 13㎞나 이어진다. 원래 이름은 석병산(石屛山) 또는 주방산(周房山)이었다는데 언제부터 주왕산으로 고쳐 부르게 됐는지, 왜 주왕산이 된 것인지에 관해선 명확한

기록이 없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에서 구할 수 있는 팸플릿 등에는 중국의 주왕 운운하는데 고대 중국에 주왕으로

불린 사람은 기원전 중원대륙을 지배한 하(夏) 상(商) 주(周) 3대 왕조중 상나라의 마지막 왕 뿐이다. 그는 달기(?己)라는

애첩을 사랑해 나중엔 왕비로 삼았는데 방탕하고 사치스럽기 그지없어 술로 연못을 채우고 고기를 숲처럼 매달아 놓고

즐겨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성어(成語)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주왕은 실정(失政)을 간하는 어진 신하들의 말은 콧등으로 듣고 달기의 말만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주왕과 달기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올려놓고 죄인들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해 미끄러져 타 죽게 하는 포락(?烙)

형이나, 죄수들을 독사와 전갈이 우글거리는 구덩이에 집어넣는 돈분(?盆)형 같은 무시무시한 형벌을 만들어 놓고 죄수들이

괴로워하며 죽는 것을 즐기기 까지 했다 한다.


둘레 800m 규모로 지었다는 초호화궁전 녹대(鹿臺)이다.
그에 관해 주절댄 것일까.. 한 가지 걸리는(?)게 있다. 주왕산 근처에 주왕의 비인 '달기'와 이름이 같은 달기약수터가 10여
곳이나 있지 않은가. 달계약수라고도 한다지만 그 동네 이름조차 조선시대 말까진 청송군 부내면 달기동이었다고 한다.
주왕에 달기약수라,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나라 주왕은 제후들이 연합해 공격해오자 자신이 지은
궁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서 타 죽었다고 하니 그는 제외해도 될 것 같다. 그가 불타죽은 곳은 7년에 걸쳐 높이 180m,
둘레 800m 규모로 지었다는 초호화궁전 녹대(鹿臺)이다.



그 다음에 관심을 끄는 인물은 서기 265년 사마염(司馬炎)이 위나라 원제를 몰아내고 세웠다는 진(晉)나라 후예 주도(周鍍)
라는 사람이다. 그는 당나라 덕종 시절인 799년에 진나라를 재건하겠다며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칭하는 등 반역을 도모하다
곽자의(郭子儀)장군에게 패해 군사 1천여 명을 이끌고 요동으로 도망쳤다. 그 뒤 그의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전설은 그
때 주도가 신라로 도망쳐 와 주왕산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주도가 반란을 일으켰고 신라로 도망쳐왔다는 799년은
통일신라 39대 소성왕 2년이다.


소성왕은 38대 원성왕(元聖王)의 손자다. 태자였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할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또 통일신라
북쪽에 있던 발해의 경우 6대왕인 강왕(康王)이 즉위한지 7년째 되던 해였다. 전설은 주도가 신라로 도망친 것을 안 당나라가
신라군에 주도의 잔당을 척살해줄 것을 요청하자 신라는 마일성(馬一聲) 장군 5형제를 주왕산으로 보내 주도를 살해했다고 한다.
이때 주도는 마일성 형제가 이끄는 신라군을 막기 위해 대전사(大典寺)에서 나한봉까지 12km에 걸쳐 돌을 날라다 자하성(紫霞城
주방산성으로도 불린다)을 쌓았으며, 주도는 신라군의 공격을 피해 나중에 주왕굴(周王窟)로 명명된 동굴에 숨어 있다가
마 장군이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주도에 얽힌 전설은 여기저기 남아있다. 주왕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기암은 주왕이 마 장군 형제와 치열한
전투를 벌일 때 이 바위에 이엉을 두르고 쌀뜨물을 계곡에 흘려보내 군사들이 많은 것처럼 위장한 곳이었다고 한다. 또 주왕산에
있는 대전사와 백련암은 주도의 대전(大典)이라는 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의 이름을 딴 것이고, 망월대(望月臺)도 이들
남매가 달구경을 했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주도가 1천여 군사를 이끌고 신라까지 피신해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요동 동쪽과 남쪽으로
뻗어있는 발해에도 숨기 좋은 험준한 산이 많은데 굳이 그 먼 신라 땅을 찾아 숨어들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당나라가 신라에 대해 주도의 척살을 요청했다면 그때까지 두 나라가 긴밀한 관계였다는 얘긴데 옛 고구려나 백제
땅으로 숨었다면 모를까 하필이면 당나라와 긴밀한 신라 땅으로 숨어들었을 리는 없지 않았겠는가.


또 있다. 주도의 난을 평정했다는 곽자의 장군은 781년 84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 주도를 물리쳤다는 곽자의
장군은 주도가 난을 일으키기 18년 전에 이미 죽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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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관심을 끄는 인물은 당나라와 나당연합군을 구성,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金周元)이다. 무열왕의 셋째아들인 문왕(文王)의 5대손인 유정(惟靖)의 아들로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시중(侍中)을 지낸 사람이다. 김주원은 785년 선덕왕(宣德王)이 후사가 없이 죽자 군신들에 의해 제38대왕으로 추대되었다.


어떤 자료엔 선덕여왕으로 나와 있으나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선덕여왕은 27대왕이고 선덕왕은 37대 왕이다. 자신이 왕으로

추대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왕도인 경주로부터 2백리 밖에 있었던 김주원은 부랴부랴 경주로 향했을 것이다. 그때 김주원을

가로 막는 장애가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듯 마구 쏟아져 내리는 폭우와 그 폭우로 범람한 알천(閼川)이었다. 경주 시내
북쪽을 흐르는 하천으로 지금은 북천으로 불리는 알천은 물살이 급하고 자주 범람했다. 에밀레종으로도 일컬어지는
성덕대왕신종을 걸었던 봉덕사도 알천 근처에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또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의 비 알영부인(閼英夫人)이 처음엔 입이 닭의 부리처럼 튀어나와 있었으나 알천에서

멱을 감고나자 부리가 사라졌다는 설화도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 온다. 그 알천을 건너야 경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당시엔

왕도 물이 다 빠지기 전엔 알천을 건널 수 없었다. 여러 날이 지나도록 김주원이 알천을 건너지 못하고 왕도 밖에서 서성대자

대신들은 '이건 하늘이 김주원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판단, 17대 내물왕의 12세손인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을 추대해

왕위에 오르게 하니 그가 바로 원성왕이다. 일설엔 왕위를 놓고 김주원과 김경신이 경쟁하다 김주원이 밀렸다고도 한다.


어쨌든 김주원은 자신이 이찬으로 있을 때 그 아래 각간을 지냈던 김경신이 새로운 왕으로 추대됐다는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그리곤 그 길로 주왕산 급수대(汲水臺) 근처(사진)에 궐을 짓고 살았다 한다. 그때 산 위엔 물이 없어 커다란 바위에

의지, 두레박으로 계곡의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썼다고 해서 그 바위를 급수대라고 부르게 됐다고..



또 다른 이야기는 왕위경쟁에서 패퇴한 김주원이 원성왕이 즉위한 이듬해 선대 때부터 인연이 있던 명주(溟州 지금의 강릉)로

가 살자 원성왕이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통천에서 울진, 평해에 이르는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주었다고도 한다.


1789년에 청송부사를 역임하고 나중에 공조판서를 지낸 홍의호(洪義浩)가 쓴 주왕산 삼암기에도 <풍모가 걸출한 신라
왕자가 명주에 은거해 살다가 죽어 '주원왕'으로 불리었는데 왕자 때는 지금의 주왕산에 은거해 살았다>고 돼 있다.
그러니까 김주원이 젊은 시절엔 주왕산에 살다가 나중엔 강릉으로 이주해 살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 후 명주군왕 김주원은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됐으며 그의 사당과 능묘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다. 군신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고도 옥좌엔 앉아보지도 못한 김주원의 비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의 후손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헌덕왕 14년(822년) 웅천주(熊川州 지금의 공주) 도독(都督)이던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었고, 이 난이 실패하자 산속으로 숨어들었던 김헌창의 아들, 그러니까 김주원의 손자인 김범문 (金梵文)도 3년
뒤 일부 농민군들과 합세해 다시 난을 일으켰다가 토벌군에게 붙잡혀 죽었다.



이상의 구전이나 기록 등으로 미루어 주왕산의 주왕은 후주천왕을 꿈꾸던 당나라의 주도가 아니라 신라의 왕으로 추대되고도
왕위에 오르진 못했으나 지지자들과 함께 주왕산에 은거했다는 김주원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그가 '주원왕'으로
불렸다니까 '원'자를 빼고 주왕산으로 불리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주원왕산'보다는 '주왕산'이 더 발음하기가 편하니까.



청송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도 '주왕'은 중국인이 아닌 신라의 왕족 김주원이거나 신라 말 혼란기에 왕권다툼 과정에서
난을 일으킨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을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들 부자가 어떤 형태로든 주왕산에 은둔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냥 전설인데 이렇게 쓰면 어떻고 저렇게 쓰면 어떠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청송군이 제작한 안내판이나
소개책자 등이 주왕산의 주왕은 중국의 주도인 듯 표기한 것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전설들을 소개하면서 그 중의
하나로 덧붙이는 것은 무방하지만 그 경우에도 '소개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며 확인된 사실을 아니다'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자료출처 : '현곡의 역사산책' 블로그에서..



용추협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뒤돌아 보았다.



용추협곡이 끝나고 구비구비 아름답게 휘어져 흐르는 주방천 계곡을 따라 힐링길은 계속된다.



주방천 힐링계곡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은 팔월의 무더위도 저 만큼 물러 가고 있다.



나무 이름을 알수없는 붉은 열매가 아름답다. 입에 넣고 씹어보니 처음에는 달달한 맛이였는데..나중에는 쓴맛이 감돈다.



절구폭포(제2폭포)와 용연폭포(제3폭포)는 내려 올 때 들리기로 하고 우선 내원마을로 향하였다.



내원마을 가는길에 바라본 주방천 상류모습..물빛이 오염되어 검게 보이는게 아니고 가뭄으로 바닥이 침전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금년은 장마다운 비가 한번도 내리지 않아서 청정계곡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 내원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모시던 곳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살지 않으므로 산객들이 산신제단이라 부르고 있다.




경사도가 있는 계곡은 청정옥수가 힘찬 물소리와 함께 흐르고 있다.



내원마을 분교터에 도착하였다. 분교 건물은 철거되어 사라져 없고 온통 잡초만 무성하다.

잡초속에는 돌배보다는 조금 큰 "깨깨오리배"인 조막배가 소탐스럽게 익어 가고 있다.



내원분교 안내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내원마을은 임진왜란(1592년~1598년) 당시 산아래 마을 주민들이 계곡 상류쪽으로 피난해 오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목탄 생산자들의 주거지였고, 이후 주민들이 밭을 일구며 살아 왔으며 1970년대에는
약 80여가구 500여명이거주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농현상 등으로 주민들이 빠져나가 2005년에는 9가구만이 명맥을 유지하였다. 내원마을이라는 이름이 불리게 된
이유는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안 내(內)를 붙여 내원마을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조선시대에 상의리 윗부락에 내원사라는 사찰이 있어 내원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내원마을은 1980년대 등산객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내원마을은 "전기없는 오지(奧地)마을"로 널리 알려졌고 탐방객들이
찾아오면서 많은 탐방객들의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2007년 환경처해시설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철거되어 마을의
자취만 느껴지고 있다.



내원마을터를 알리는 입간판..



옛 내원(內院)마을의 건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하다.


그리고 아래의 사진들은 그동안 내가 대여섯차례 주왕산(周王山) 내원(內院)마을을 다녀가며 기록한 사진들인데..

대체로 1988년도에서 2005년도 사이의 내원(內院)마을의 옛 사진들이다.



내원(內院)마을 들머리이다. 아마도 이 사진은 2005년도 쯤인 것 같다.



마을초입의 민가.. 당시 내원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1973년 주왕산 학소대 다리공사를 하러 왔다가 내원동 경치가 좋아서 눌러 앉은 80세의 김억만 할아버지.. 이 동네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자칭 내원동 군수 김희걸씨.. 한 달만 수양하고 나가자며 들어

왔다가 30년째 터를 잡은 예천 할매 최복련씨.. 내리 8대째 살아오고 있는 토박이 최영기할머니.. 등등이 살았다.



1980년 3월 1일자로 폐교된 내원(內院)마을 분교..



폐교된 내원분교를 인수하여 한 때 내원산방이라는 찻집과 민박을 운영했던 이상해, 김희숙부부는 자칭 분교장이라고 하였다.



내원(內院)마을에서 도자기를 구우면서 낙엽에 시를 써서 관광객에게 팔기도 하고 천궁, 당귀등 약재로 만든 차를 오가는

등산객에게 무료로 나눠 주기도 하는 주왕산 가이드로 유명한 사슴할아버지 권영도씨이다.



내원(內院)마을 전경..이 사진은 2003년도 전경이다. 저기 보이는 집도 주막과 민박을 겸했던 집이다.



내원(內院)마을의 주막집 입구



내원(內院)마을의 주막집..



내원(內院)마을 마지막 너와집과 도라지밭.. 이 사진은 1993년 여름사진일 것이다. 큰골과 가메골 삼거리 지점에 있던 집이다.



1995년도 내원(內院)마을의 겨울 풍경..

버리고 떠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것을 다시 삶의 공간으로 되살려 놓는 사람들이 있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문명에 소외된 채 주어진 그대로 적응 해가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육지속의 섬이라 불릴 만큼 외진

고장 청송, 택리지(이중환)에 "모두 돌로써 골짜기와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 예찬한 주왕산의

깊은 산속 골짜기에 현대문명에 소외된 채 3~4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한 동네가 주왕산

내원(內院)마을의 사라진 풍경들이였다. 시간은 흐르고.............내게 남겨진 시간은 흐르고..........................



잡초만 무성한 공터에 익모초(益母草)가 꽃을 피우고 있다.



처음보는 열매이다.무슨꽃 열메일까..?

내원마을 빈터에는 야생화꽃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 기실 야생화를 좋아하는 나로서 주왕산을 오면서 주왕산 깃대종이며

한국 특산종으로 멸종위기 2급식물인 둥근잎꿩비름을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은 만나지 못하였다.



다행히 기린초는 내원마을 오가는 길목에서 만났다. 기린초는 동물이름 때문에 기린 형태를 닮아서 붙어진줄 알았는데,

기린초가 붙어진 이유는 영특하고 뛰어난 아이를 기린아 라고 불렀는데, 약초로 이용되는 식물중 기능이 우수하여

기린초라고 불렸다고 한다.


내원마을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되돌아가는 바위언덕에서 기린초를 만난 곳에서 준비해 간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스처지나가는 시원한 바람과 청량하고 상큼한 공기 덕분인지 먹는 음식의 맛도 일상에서 느낄수 없는 꿀맛이다.



꿀맛의 점심식사를 하고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금은괭이 삼거리로 돌아왔다.

금은광이라는 뜻은 내원동 마을에서 보면 아침엔 은빛, 저녁엔 금빛의 환상적인 광체가 난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라고..



용연폭포 삼거리로 돌아 왔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2단의 용연폭포 중 상단 폭포 전경이다.

주왕산 폭포중 가장 웅장한 용연폭포 상단 전경이다. 깊이를 알수없는 물속이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상단 폭포에는 양쪽 벽면에 각각 3개씩의 하식동굴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하식동굴이 뻥 뚫려 있는게 신기하고 멋스러워 보였다



용연폭포 상단에서 내려다 본 전경..잘 만들어진 나무테크계단길을 따라 용연폭포 하단으로 내려갔다.

다행스럽게 오늘 주왕산 탐방하는 동안 사람들이 없어서 여유롭게 관람하고 인증샷도 할 수 있었다.



계단을 모두 내려와 바라본 2단의 용연폭포 전경이다.


용연폭포는 주왕산의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이다.

두 줄기의 낙수 현상으로 인해 쌍용추폭포라고 하기도 하고 제 3폭포라고도 한다.



용연폭포(제3폭포)를 관람하고 절구폭포(제2폭포)로 향하였다.



절구폭포는 기본 탐방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놓치기 쉰다. 또한 입구가 험악한 협곡 분위기이다.



협곡의 험악스러운 곳을 지나면 힐링하기 좋은 오솔길 옆으로 사창골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오늘 두번째 만나는 두꺼비이다. 두꺼비가 사는 곳은 생태계가 가장 건강한 곳이라 한다.

즉 농약이나 화학농업을 하지 않는 곳이라야 두꺼비가 살 수 있다고 한다. 



누구인가 개울가에 만들어 놓은 수준급의 무명탑들이다.

절구폭포로 가는 길은 아기자기한 오솔길과 협곡으로 되어 있어 재미있는 길이다.



절구폭포에 도착하였다. 마침 절구폭포에는 한 가족이 휴식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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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폭포의 물은 사창골 훈련목에서 흘러 내려온 계곡물로 쳐마처럼 생긴 바위에서 떨어져 절구처럼생긴 바위에 담겼다가

다시 흘러 내린다. 절구폭포 주변은 협곡으로 되어 있지만 넓은 항아리 모양이라 아늗한 분위기이다.



하산시간이 넉넉하여 이곳에서 등산화를 벗고 시원한 족탕도 하였다. 그리고 나의 돌탑도 하나 만들어 보았다.

꿈은 이루어 진다는 소망을 담아서..그리고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주왕산 국립공원의 깃대종 '둥근잎꿩의비름'이다. '둥근잎꿩의비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식물은 이름이 정말 독특하다.
'둥근잎꿩의비름'은 한국특산식물로 경상북도 주왕산 계곡의 바위틈에 붙어 자란다. (사진은 주왕산 국립공원 홈피에서 차용함)




관상용과 약재용으로 마구 채취하는 바람에 자생지가 많이 훼손되어 자생지 복원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반그늘을 좋아하고 내건성이나 내서성이 강하며, 씨뿌리기 또는 꺾꽂이로도 번식이 잘 되는 편이라고 한다.
(사진은 주왕산 국립공원 홈피에서 차용함)



절구폭포를 출발하여 다시 용추협곡으로 왔다. 돌아갈 시간이 넉넉하여 용추협곡을 유유자적 즐감하며 걸었다.



용추협곡은 응회암의 발달하는 틈들을 따라 침식이 일어나면서 생긴 침식협곡이다.

그리고 주왕산 제1폭포라 용추협곡속의 용추폭포이다.



용추폭포는 용의 꼬리라는 뜻으로 용이 승천했다는 의미가 있고 총 3단폭포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과 2단 아래에는 각각 선녀탕과 구룡소라고 부르는 구혈이 있고, 3단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있다.



용추협곡에 있는 이끼류와 바위부처손..빗물을 먹음은 바위부처손이 활짝 펴져있다.



주왕산 시루봉은 그 모양새가 옛날 집에서 떡을 찌던 떡시루와 비슷하다고 해서 시루봉이라고 한다. 옛날 어느 겨울철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 하여 시루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루봉 밑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시루봉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아 오른다고 전하고 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시루봉..마치 사람의 옆 얼굴같다.



시루봉 아래에 있는 알바위에 나무와 잡초가 신기하게 살아 가고 있다.



하산길에 바라본 급수대와 학소대..



흐린 하늘이 오후가 되면서 맑아지고 있다.



햇살을 받고 있는 주왕산(周王山) 기암(旗岩) 전경..



대전사의 관음전과 보광전..



푸른 하늘과 주왕산(周王山) 기암(旗岩) 전경-1



푸른 하늘과 주왕산(周王山) 기암(旗岩) 전경-2



대전사 뜨락에서 주왕산(周王山) 기암(旗岩)을 배경으로 한 나의 주왕산 인증샷이다. 



대전사 뜨락에 핀 상사화..



 모처럼 찾아간 주왕산은 역시 국립공원답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이였다. 그리고 산행이 아닌 트레킹만 하여 여유로운

시간으로 주왕산의 비경을 놓치지 않고 두루 섭렵한 것 같다. 다음번에는 산행 위주로 주왕산을 걸어 보고 싶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에..


2018/08/21 - 휘뚜루 -

시간은 흐르고(김두수곡) / 지아


↑ 주왕산 개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