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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산행기

가장 한국적 산사(山寺)풍경이 있는 청량산 청량사(淸凉寺)을 다녀오다.

by 휘뚜루50 2019. 7. 16.



▒ 가장 한국적 산사(山寺)풍경이 있는 청량산 청량사(淸凉寺)을 다녀오다.

       -2018/07/17 -


낙동강 기슭에 우뚝솟은 청량산(淸凉山 : 870m)은 자연경관이 수려해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렀다. 택리지를 쓴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백두대간의 8개 명산 외에 대간을 벗어난 4대 명산의 하나로 청량산을 꼽았다. 그런 청량산을 지극히

사랑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세대 대학자 퇴계 이황 선생이시다.


퇴계는 청량산을 '우리집안의 산'이라는 뜻에서 오가산(吾家山)이라 불렀고, 백암사를 지어 머물며 독서를 즐겼다. 청량산

봉우리를 중국의 무이산에 빗대 '육육봉'이라 명한 이도 퇴계이다. 청량산에는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오산당)외 통일산라시대 서예가 김생이 글씨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진 김생굴,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

그리고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쌓았다는 산성 등이 있다.



조선후기 학자인 해은 강필효는 봉화군 명호면에서 안동시 도산면에 이르는 아홉구비 물길을 대명산구곡이라 이름짓고 퇴계를

그리는 마음에서 청량산을 5곡으로 삼기도 했다.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에

청량사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공원 일부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23호에 이름을 올렸다.



청량산은 편의상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을 외청량산, 왼쪽을 내청량산이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청량산이라고 말하는 곳은 내청량산이다. 청량산 '육육봉' 가운데 최고봉인 장인봉을 포함해 탁립봉, 선학봉, 경일봉, 금탑봉, 자란봉, 자소봉,

연적봉, 연화봉, 탁필봉, 향로봉, 등의 열한 개 봉우리를 내청량산이 품었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도 내청량산 연화봉

아래에 있다. 열두 봉우리 가운데 축융봉(845m)만 외청량산에 외따로 솟아 있다.



청량산은 5개 코스를 통해 오를 수 있다. 외청량산을 아우르는 12,7km의 종주코스에서 청량사까지만 다녀오는 2km 내외의

약식코스까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알찬 코스는 입석에서 장인봉을 거처 안내소로 내려가는 2코스, 6,5km의 짧지 않은

거리지만 축융봉과 탁립봉, 경일봉을 뺀 나머지 봉우리를 두루 만날 수 있다. 청량산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을 조망하며 산행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등산로에는 샛길이 많아 산행중 코스 수정도 수월하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봉화 청량산을 산행하고 당일로 다녀오는 것은 무리이다. 기차와 군내버스, 또는 고속버스와 군내

버스로 연계하는 시간표가 맞지 않아서 일박이일 산행을 하거나 기차와 택시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단은 청량리역

에서 06시 40분에 출발하는 안동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약 3시간 20분 동안 차창밖으로 흐르는 중앙선 풍경을 감상하며..^^



안동역에 내리니 냉방시설이 잘 된 기차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한 무더운 열기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글자 그대로 폭염의

날씨이다. 역전에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청량산으로 갔다. 안동땜과 도산서원을 지나 약 40분만에 청량산 산행

들머리인 입석(立石)에 도착하였다.



입석(立石)에는 담쟁이넝쿨이 뒤덥혀 있어서 입석(立石)이 바위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리 쬐는 태양이 과히 살인적이다. 헉~헉~



응진전(應眞殿)으로 가는 나무계단길.. 최근에 이 길을 원효대사의 수도의 길이라고 명명한 것 같다.



연일 찜통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응진전(應眞殿)으로 가는 숲속 오솔길 그늘속에 들어서니 한결 시원한 느낌이다.



가파른 길이 아닌데도 금새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 내린다.

이런 날 산행은 최대한 저속운행으로 하고 수분보충과 영양보충을 게을리하면 아니 된다.




응진전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제 1전망대..신작로길 오른편은 내청량산이고, 축융봉이 있는 왼편은 외청량산으로 구분하고 있다.



미약하나마 스처지나가는 바람결이 더 없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동안 수십차례 청량산을 다녀 갔지만, 가장 최근에 다녀간 것은 대략 8년전인듯..



입석 들머리에서 200m 남짓 걸으면 청량사와 응진전(應眞殿)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닿는다.

어느 쪽으로 길을 잡아도 장인봉으로 오를 수 있지만, 기왕이면 응진전(應眞殿) 방향을 택해 오르는 게 낫다.



최치원이 독서를 즐겼다는 풍혈대와 서성(書聖)으로 불린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이 글씨 공부를 했다는 김생굴, 그리고

자소봉과 탁필봉 등이 모두 이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연화봉, 향로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연적봉을 놓치기는 정말 아깝다. 청량산의 최고 뷰 포인트를 꼽으라면 연적봉(硯滴峯)이 단연 으뜸이다



청량사를 발아래 두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면 그 끝에 응진전이 있다. 금탑봉 아래 다소곳이 자리한 응진전은 청량사의 부속

암자로 법당에는 삼존불, 나한상과 함께 공민뢍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상을 모셨다. 축융봉아래 공민왕당이 마주보이는 자리다.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몽진한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기리는 백중제는 6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응진전(應眞殿) 전경..



응진전을 돌아 나오면 풍혈대 아래에서 아담한 약수터를 만난다. 이름하여 '총명수' 좁은 바위틈에서 솟는 이 물은 최치원이

마시고 총명해졌다는, 그래서 예로부터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들이나 청량산에 유람 온 이들이 반드시 들러 마시곤 했다는

물이다. 시원한 총명수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조금 지나면 최치원 암자터이다.

총명수 바로 옆은 최치원의 이름을 딴 치원암(致遠庵) 터가 있던 곳이다.



어풍대(御風臺)이다. 금탑봉(金塔峰)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어풍대는 내(內) 청량과 외(外)청량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청량지(淸凉誌)'의 기록에 따르면 열어구(列御寇:고대 중국의 인물)가 바람을 타고 보름동안 놀다가 돌아 갔다고 하여

어풍대(御風臺)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금탑봉(金塔峯) 중층에는 어풍대(御風臺)와 함께 치원대(致遠臺), 풍혈대(豊穴臺), 요초대(瑤草臺), 경유대(景遊臺) 등이

나열되어 있으며 이들 대(臺)에서는 기암절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의 연꽃같은 봉우리와 연꽃 꽃술에 자리한 듯한

청량사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어풍대(御風臺)에서 줌으로 당겨 본 청량사 전경..



어풍대(御風臺)에서 바라 본 청량사 전경..



어풍대(御風臺)에서 바라 본 연화봉과 뒷실고개, 그리고 청량사..



어풍대(御風臺)에서 연화봉(蓮花峯)을 줌으로 당겨 보았다.



어풍대(御風臺)에서 바라 본 청량사와 주변의 산들.. 1번은 연적봉이고.. 2번은 탁필봉이며.. 3번은 자소봉(일명:보살봉)이다.



어풍대(御風臺)에서 바라 본 청량사와 연적, 탁필봉 전경..



어풍대(御風臺)에서 바라 본 청량정사(산꾼의 집)와 청량사(淸凉寺) 전경..청량정사(淸凉精舍) 또는 오산당(吾山堂)이라 부르는

이곳은 퇴계선생이 어려서 공부하던 곳이고..'산꾼의 집'은 퇴계 문중 사람인 이대실(달마도 화가)씨가 빌려서 사용하는 중이다.



지나가는 산객에게 부탁하여 인증샷 한 장을 남기고..



김생굴 바로 옆에 있는 김생폭포에서 빗방울같은 낙수물이 떨어지고 있다.

얼마나 무더운 날씨인지 이런 낙수물도 시원하게 느껴 진다.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였던 김생은 절벽 아래 새집처럼 움푹 패인 이곳에서 10년 동안 글씨 공부를 했다고 전한다.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김생필법'은 그렇게 태어났다. 퇴계는 김생을 일러 '천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솟아난 이 몸일세'라고 극찬했다.



9년동안 글씨 공부를 하고 하산하려던 김생이 길쌈 매는 청량봉녀와 실력을 겨룬 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1년 더 공부를

했다는 김생과 청량봉녀 설화는 한석봉과 그 어머니 일화와 많이 닮았다. 김생굴을 지나면 길은 본격적인 협곡을 오르게 된다.



잘 정비되어 있는 계단길을 올라서면 청량산의 오작교(烏鵲橋)가 있다.



문득 허날설헌의 '규원가'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천산(天上)의 젼우직녀(牽牛織女) 은하수 막혀서도, 일년일도(一年一度) 실기(失期)치 아니거든,
우리 님 가신 후는 무슨 약수(弱水)가렸기에, 오거나 가거나 소식(消息)조차 없는고.............



오작교(烏鵲橋)에서 바라 본 자란봉 자락의 연화봉과 향로봉 전경..



오작교(烏鵲橋)에서 바라본 청량사 5층 석탑과 연화, 향로봉 전경..



오작교(烏鵲橋)를 지나면서 본격적이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오르는 마지막 깔딱 고개이다. 가파른 계곡 오름길을 지나면

다소 여유로운 능선길로 접어 들자 수령이 수백년 이상된 금강송 군락지이다. 그런데 나무 밑둥이에는 모두 엄청난 흉터를

가지고 있다. 노송의 흉터엔, 이런 슬픈 역사가 있다. 일제시대 때 일본이 비행기, 선박, 자동차의 기름으로 사용하려고

강제로 우리 국민들을 동원하여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큼큼~ 슬픈 오욕의 역사이다.



자소봉(紫霄峯)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예전에는 철계단이였는데..지금은 스텐레스로 교체되어 있다.

베낭을 아래에 벗어 놓고 자소봉(紫霄峯)으로 가볍게 올라 갔다.



자소봉(紫霄峯) 계단길에서 바라본 연화봉 전경..



건너편 외청량산의 축융봉(祝融峰) 능선이 조망되고 있다. 축융봉(祝融峰)은 외청량산에 유일한 봉우리로 '축융'이란 말은

'남방의 불을 담당하는 화신(火神)을 의미하며, 주세봉이 중국 남악(南嶽)의 이름을 본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자소봉(紫霄峯) 정상.. 일명 보살봉이라고도 하는데..



자소봉(紫霄峯)에서 바라 본 탁립봉과 경일봉 전경..날씨가 맑으면 일월산까지 조망이 되는데..



자소봉(紫霄峯)에서 만난 산객에게 부탁하여 인증샷을 남기고..



자소봉(紫霄峯)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문명산 전경.. 이 방향 역시 날씨가 맑으면 각호산과 태백산이 조망되는데..



자소봉(紫霄峯)에서 바라 본 문명산과 풍락산 방향.. 역시 맑은 날이면 문수산과 소백산이 조망되는데..



어느 누구의 말처럼 다시 한번 더 오라고 먼산의 조망은 오늘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오는 날은 단풍이 곱게 물드는 청명한 가을날에 오기로 하였다.



자소봉(紫霄峯)에서 철계단을 내려서며 바라 본 연화봉과 향로봉 전경..



탁필봉(卓筆峰)은 올라 갈 수 없고 우회하여 돌아 간다.



길목에 설치되어 있는 탁필봉(卓筆峰) 정상석..



연적봉(硯滴峯 846,2m) 정상이다. 청량산에서 장인봉 다음으로 높은 연적봉은 퇴계 이황이 '육육봉'이라 명한 청량산 열두

봉우리 중 무려 여덟 봉우리, 아니 발을 딛고 선 연적봉까지 포함하면 아홉 봉우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연적봉(硯滴峯)에서 바라 본 탁필, 탁립, 경일봉 전경..



연적봉(硯滴峯)을 인증샷을 하고..



연적봉(硯滴峯)에서 바라 본 자란봉과 선학봉과 장인봉이 차례대로 조망되고 있다.



줌으로 당겨 보니 하늘다리도 보인다. 연적봉(硯滴峯) 정상에서 맛있는 간식 타임을 하고 자란봉으로 출발하였다.



뒷실고개로 내려가는 철계단..



자란봉(紫鸞峰)은 아무런 표시가 없어서 그냥 지나치고 곧 바로 하늘다리에 도착하였다. 하늘다리는 봉화군에서 2008년 5월에

해발 800m의 자란봉과 선학봉 사이에 놓여져 있는 현수교로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곳(길이 90m, 바닥높이 70m, 넓이 1,2m)에 위치해 있는 하늘다리이다.



스릴만점의 하늘다리에 올라서면 기암절벽으로 이어진 청량산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으며, 사방으로 시야가 확보되어 태백,

소백이 펼처놓은 양백의 지맥과 용트임치며 흘러가는 낙동강 중상류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데..아쉽게도 오늘은

아니다.



하늘다리에서 바라 본 선학봉(仙鶴峰) 자락의 기암과 명품송들..시간만 넉넉하다면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다.



하늘다리에서 바라 본 외청량산의 축융봉(祝融峰) 전경..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청명한 날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봐야겠다.



하늘다리에서 바라 본 산 아래 두둘마을 전경..



하늘다리에서 바라 본 윗뒤실마을과 문명산 전경..문명산 정상에는 공민왕과 그 부인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산이고, 윗뒤실마을은 청량산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하여진 산간마을이다.



선학봉(仙鶴峰)쪽에서 바라본 하늘다리 전경..



하늘다리에서 바라 본 자란봉(紫鸞峰) 자락의 명품송 한 그루..



선학봉(仙鶴峰)쪽에서 바라 본 하늘다리와 연적봉과 탁필봉 전경..



하늘다리 중간 지점에서 바라 본 선학봉(仙鶴峰) 자락의 기암들과 명품송들..



선학봉(仙鶴峰)에서 다시 장인봉(丈人峯)으로 가는 협곡 나무계단길..



선학봉(仙鶴峰)에서 장인봉(丈人峯) 사이에 있는 협곡..



협곡은 삼거리 안부에 있는 이정목..



장인봉(丈人峯)으로 가는 마지막 철계단..이곳 역시 손잡이는 스텐레스로 바뀌어져 있다.



장인봉(丈人峯 : 870m) 에 도착하였다. 장인봉(丈人峯)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1601년 11월 3일, 청량산 유람중

이던 김중청 일행은 청량산 산봉우리들을 둘러 보았다. 무릇 청량산 봉우리 가운데는 장인(丈人)이라 부르는 것이 있는데,

이는 사람에 빗대어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로(香爐), 연적(硯滴), 탁필(卓筆), 금탑(金塔)이라 한 것들은

장인이 좌우에 늘 두는 물건이고, 자란(紫鸞), 선학(仙鶴), 연화(蓮花)라 한 것들은 장인에게 사랑받는 물건이다.



축융(祝融)은 곧 장인의 손님이요, 자소(紫霄)는 곧 장인의 하늘이며, 경일(擎日)은 곧 장인이 가진 뜻을 말한 것이고 혹은

장인이 하는 일을 말한 것이다. 나누어 이름을 붙인 것이 열두 가지 다른 이름이 있다 해도, 통틀어 그 중심이 되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장인이 있을 뿐이다.



‘장(丈)’이라고 하는 것은 크다는 뜻이다. 사람이 크다는 것은 곧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지극한 경지를 말한다. 사람이 크다는

것을 이 산에 빗대어 말해보면, 이 산의 단정하고 중후하며 맑고 깨끗함이 그 부류들 가운데서 뛰어나다는 것이다. 또한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이 이 산을 사랑하는 것은, 산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빗대어서 좋아하였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이 봉우리를 의상봉이라 불렀는데..언제부터인가 장인봉으로 바뀌어 부르고 있다.



 장인봉(丈人峯)은 조망이 없다. 지근거리에 있는 낙동강이 구비처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갔다. 아쉽게도

폭염의 날씨로 개스가 발생하여 조망은 꽝이다. 다행히 전망대에서니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있어 시원하였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외청량산의 축융봉과 두리봉전경..기억을 더듬어보니 1990년대 초에 물티재에서 두리봉 산행을 하며 산더덕

캐기를 하다가 두리봉 정상에서 울부짖고 있는 염소 한 마리를 발견하여 자세히 관찰해보니 목에 무슨 뼈 같은 것이 걸려 있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빼내주었더니 몇 발자국 걸어가던 염소가 뒤돌아서서 꾸벅하고 몇번인가 절을 하고 가던 기억이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두들마을 전경..



다시 장인봉(丈人峯)으로 돌아와서 협곡으로 갔다.



하늘다리를 건너고 뒷실고개에서 청량사(淸凉寺)로 하산을 하였다.



청량사(淸凉寺)에 있는 유리보전(琉璃寶殿)이다. 청량산 도립공원 내에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로 법당은 지방유형문화재 47호인 청량사 유리보전이 보존되어 있다. 이 청량사는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이 청량사(淸凉寺)는 연꽃의 수술자리라고 한다.



이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다. 공민왕의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琉璃寶殿)과 지불이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지불은 종이로 만든 부처이나 지금은 금칠을 했다.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자소봉)이 있다. 원래 이름은 탁필봉이지만 주세붕선생이 지형을 보고 봉우리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청량사(淸凉寺)가 내청량이라면 응진전은 외청량이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곳으로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에 든다. 입석에서 등산로를 따라 30분정도 오르면 만난다. 뒤로는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아래로는 아득한 낭떠러지이다. 바위가 마치 9층으로 이뤄진 금탑모양을 하고 있고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듯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을이면 절벽 아래로 붉게 타는 단풍이 장관이다.



청량산(淸凉山)은 오르고 내리는 길의 분위기가 참 다르다. 책으로 따지면 소설과 교양서 정도의 차이랄까..한 걸음 한 걸음

꼼꼼히 짚어야하는 오름길이 교양서라면, 호탕한 풍경이 펼치는 내림길은 흥미진진한 소설을 닮아 있다.



퇴계선생이 말한 '책 읽기가 산 유람과 같고 산 유람이 책 읽기와 같다'는 말의 의미를 이 길을 걸으며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본다. 책장을 넘기듯 천천히 옮기는 걸음걸음에서.....................



선학정 삼거리에 도착하여 아침에 타고 온 택시를 다시 콜하였다. 기차시간이 촉박하여 헛제바밥을 먹기 어려웠는데..마음씨

좋은 기사님의 배려로 안동의 명물인 헛제사밥을 먹을 수 있었다. 기실 헛제사밥은 귀신이 먹는 밥이라 양념없이 담백한

맛으로 먹어야 한다. 그래서 헛제사밥을 맛으로 생각하고 먹는 사람들은 대실망을 하게된다. 

하지만 나는 맛나게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대중교통으로는 먼거리인 청량산을..그리고 가장 한국적 산사(山寺)풍경이 있는 청량사(淸凉寺)를..그것도 엄청난 폭염이 작열

하는 무더위속에서 6시간의 산행으로 마무리하고, 19시 20분 안동역을 출발하는 청량리행 기차를 타고 편안하게 귀경하였다.


2018/07/22 - 휘뚜루 -

태자 싯달타의 출가 / 정강 스님(연주곡,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