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때 나의 각종 무허가 보물농장이였던 고령산(高靈山:622m) 산행
- 2018/01/25 -
‘대한(大寒)이가 소한(小寒)이네 집에 놀러 갔다 얼어 죽었다'는 속설을 무색하게하는 겨울 난동이 몇일째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계속 방콕만 하면서 날씨 풀리기를 기다리는 것은 내 습성(習性)에 맞지 아니하여 배낭을 챙겨서 집을 나셨다.
금년들어 최고의 강추위답게 영하 16도라고 한다. 산 아래가 영하 16도이니 산위는 영하 20도 이하일 것이다.
오늘 산행은 고양시 고양동과 파주시 광탄면 경계에 위치한 고령산에 오르려 한다. 근자에 한번도 다녀가지 않은 산이지만,
한 때는 나의 제 1의 무허가 각종 산나물 농장이였던 곳이다. 산더덕과 산두릅에다가 각종 산나물들과 영지버섯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던 곳이 고령산이였다.
고령산은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근의 북한산과는 달리 완전히 흙으로 되어 있는 기름진 육산이다. 그러므로 고령산에는
깊은 먼산에만 살고 있는 참나물과 곰취도 한 때는 상당히 많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때 세상을 한 바탕 떠들썩하게 하였던
'1.21사태'로 약 30년 이상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1990년대 초반에 출입금지를 해제하였을 때는 온 산이
각종 산나물과 약초들의 보물창고였다.
전철 구파발역 4번 출구에서 롯데몰 쇼핑쎈터 환승장에서 보광사를 경유해 금촌으로 향하는 333번 버스(약 1시간에 한대)를
타고 고양동(高陽洞)을 지나, 왼편 우암산 산비탈에 수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용미리 서울시립공원묘지의 1구역인 벽제시립공원묘지이다.
이 묘역에는 서울구치소에서 수감 중 사망하거나 사형수 중 무연고자들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는 1970년대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실미도 사건’의 주인공들도 함께 잠들어 있다. 이들은 1968년에 일어난 1.21사태에 대한 보복을
위해 훈련 중이던 특수부대 요원들로 24명이 훈련지 실미도를 탈출하여 서울 노량진 유한양행 앞에서 교전 중에 21명이
사망하고 3명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부귀도 영화도 다 버리고 이곳 공원 묘역에 누워 있는 사람..누구 하나 사연이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 만은 이들 24명 영혼들은
아픈 역사의 주인공들 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묘역을 뒤로하고 달려가는 버스는 구불구불 됫박고개를
넘어 간다. 이 고개는 고령산에서 우암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넘어가는 고개로 고양시와 파주시의 경계 지점이다.
S자형을 그리며 넘어가는 가파르고 험한 '됫박고개' 그 이름이 특이하였다. 이 고개는 고령산 북쪽자락 광탄면 영장리에 자리한
영조임금의 생모 묘소인‘소령원’을 찾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한다. 그래서 이 고개 이름에는 영조임금과 관련한 전설들이
전해온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던 영조임금은 틈만 나면 어머니의 묘소 소령원을 찾아 성묘하였다.
그리하여 행차 때 마다 임금을 태운 가마가 가파르고 험한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영조임금은 가마꾼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마치 이 고개가 쌀을 수북하게 담아 놓은 됫박처럼 생겼으니 쌀 됫박을 깎듯이 고개 마루를
깎아 내도록 하여라~!’명하여 '됫박고개' 또는‘더 파기고개’라 불렀으며 이것이‘더팍고개’→‘되팍고개’→‘됫박고개’로
음운이 변화된 것이라 한다.
굽이굽이 [됫박고개]를 넘어 4~5분 정도 내려서 벽제천 보광교를 건너서자마자 오른쪽으로 解脫門(해탈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우뚝 서있다. 예전에는 高靈山普光寺(고령산보광사)란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언제 무슨 사연으로 인하여 인지 일주문의 현판은 해탈문(解脫門)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넓고 찬란한 빛의 보광(普光)이란 이름을 가진 사찰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으나 창건연대로 볼 때 고령산 보광사가
가장 오래된 절이라 한다. 보광사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894년) 왕명에 따라 도선국사가 비보사찰로 창건하였다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하였으며, 지금의 모습은 6.25 사변 후 수차례에 걸쳐 복원된 것이다.
한편 근래의 보광사는 94년 조계종의 개혁을 주도한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근본도량으로 젊고 의식있는 스님들에 의해
현대에 맞는 불교로 거듭나기 위해 이른바‘실천불교운동’의 중심사찰이다. 일주문을 들어서 잘 포장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노라니 왼쪽 산자락 겨울 나목 사이로 낙엽속에 반쯤 묻힌 하얀 화강암 돌비석들이 유난히 눈에 뜨인다.
‘벗을 그리는 돌’이란 의미의 戀友之石이라 刻石된 이 돌비석은 실천불교운동을 전개한 종태스님의 뜻을 기리어
세워 놓은 것이라 한다. 실천불교 전국 승가회 회원들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 회원들과 함께 사찰
경내에‘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 연화공원’이란 비전향 장기수 묘역을 조성하고, 1년에 한 번씩 천도 추모제도
지낸다고 한다.
연우지석(戀友之石)이란..? 벗을 그리워하는 비석이랄 수도 있고.. 사랑하는 벗을 위한 비석이랄 수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세워진 비석이다. 청화스님은 연고가 없는 장기수와 빨치산 선생님들을 이곳에 묻으면서
"호르록 날아간 산새여"라는 노래를 불렀다. 저 연우지석 비석 밑돌에 새겨져 있다.
호르록 날아간 산새여 / 청화
남쪽 향로에 반쯤 타던 향 홀연히 쓰러져 꺼진 날
북쪽 빈 법당 가득히 남은 향내음을 어찌 하리
아침이슬에게도 저녁바람에게도 이제는 물을 수 없는
일홀불견의 안타깝고 안타까운 오오 그대의 행방
어디갔느뇨 오월 신록이 목 놓아 부르도록
한 점 지리산을 깃처럼 떨구고 호르록 날아간 산새여
오늘 목탁소리 뿌리까지 울려 단풍이 드는 나무
그 아래 한가인의 여섯 줄 끊어진 현금을 또 어찌 하리
포장길 언덕을 5~6분 정도 걸어올라 보광사 경내 본전 뜰 악에 도착하였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넓지 않은 절집 마당에는
사찰 전각들과 요사체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마주하며 자리하고 있다. 그 중 사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大雄寶殿(대웅보전)
과 마주한 만세루(萬歲樓)의 자태는 400여 년의 세월을 증언하듯 고색창연하다.
보광사는 영조대왕의 효심이 어린 고찰이다. 영조는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소를 고령산 북쪽 자락 광탄면 영장리에 조성하여
소령원(昭寧園)이라 이름하고 인근에 위치한 보광사를 기복(祈福)을 위한 원찰(願刹)로 삼아 자주 들렸다 한다. 속설에 의하면
소령원이 풍수상 길지(吉地)에 자리하여 영조임금이 조선 역대 왕 중에 가장 장수(82세)하였고 오래도록 왕위(57년간)를
이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영조는 보광사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을 중창하고 친히 어필로 대웅보전(大雄寶殿)이란 현판을 賜額하였다.
대웅전은 흙이 아닌 나무판재로 벽을 치고 그 위에다 해학적인 민화풍의 벽화를 그려 놓은 것이 특이 하였다.
만세루 추녀에 매달린 목어(木魚) 한 마리가 눈길을 끈다. 불교에서 목어(木魚)의 유래는 옛날 행실이 고약했던 승려가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되어 등에 나무 모양의 뿔이 박힌 물고기의 형상으로 환생하게 되었다 한다. 사찰에서 수륙제를 올릴때 이 목어를
두드리며 물에 사는 물고기들이 해탈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다. 만세루에 매달린 목어의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 모양이지만
둥근 눈과 눈썹, 튀어나온 코, 여의주를 문 입과 이빨, 사슴뿔이 달린 머리 등은 영락없는 용의 형상이다. 이는‘도화 꽃이
필 때면 중국 황하의 잉어들이 상류 협곡 龍門을 통과하여 龍이 된다’는 불교 설화를 형상화 한 것이라 한다.
지장전 앞에 있는 무영탑..
범종(梵鐘)은 소령원(昭寧園)의 원찰(願刹)인 보광사(普光寺)에 1634년(인조 12년) 승려 천보와 상륜, 경립 등에 의하여
조성되었으며 조선후기 작품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58호에 지정되어 있다.
지장전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이 혹한의 날씨임을 증명하고 있다.
명징(明澄)한 하늘 아래 매달린 풍경소리가 겨울 산사를 고즈넋하게 하고 있다.
절 뒤쪽 언덕 위에는 1981년에 세웠다는 높이 12.5m의 석불입상(호국대불)이 우뚝 서서 언덕아래 사찰경내를 굽어보고있다.
석불전 오르는 돌계단 위에서 보광사 경내를 바라본 후 도솔암으로 오르는 산행로를 이용해 앵무봉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였다.
도솔암으로 가는 길은 절집에서 눈을 깨끗하게 치워 놓았다. 뽀드득하는 명징(明澄)한 소리를 들으며 걸고 싶었는데..
눈에 익은 나무 한 그루.. 이곳에도 몇 그루의 나무가 살고 있었다. 나무가지 끝에는 아직도 열매들이 매달려 있다.
가파른 길을 약 30여분 헉헉거리며 도착한 도솔암이다.
보광사 도솔암에는 일제에 항거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었던 용성스님이 한 때 기거했던 암자라고 한다.
최근 그 사실이 학계에 초견성지로 알려지면서 재평가되어 지금 불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도솔암 뜨락에 있는 장독대..
도솔암에서 바라본 박달산 전경..
도솔암에서 바라본 뒷박고개와 우암산 전경..
도솔암에서 어느 중년의 신자분과 짧은 담소를 나누고 고령산으로 출발하였다.
고령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보광사에서 출발하여 도솔암을 경유해 앵무봉으로 치고 오르는 1.1km
코스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산행로 이다. 거리는 짧지만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코스이다.
가파른 비탈길에서 숨을 헐떡이니 겨울 추위는 오간데 없고 온몸에는 열기로 가득하여 땀이 난다.
곳곳에 안전을 위한 로프들이 설치되 있어 오늘같은 엄동설한에는 등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 없던 헬기장이 새로마련되어 있다.
지근거리에 오래전부터 군인들이 사용하는 헬기장이 있는데..무엇 때문에 또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명징(明澄)한 하늘 아래 고령산 정상에 있는 명품송 한 그루가 고목이 되어 가고 있나보다.
몇년만에 왔더니 명품송은 몰라볼 정도로 많이 굻어져 있다.
앵무봉 정상에 자리한 사각정자..마침 어느 단체 산객들이 비닐하우스를 뒤집어 쓰고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예전에 거대한 미사일 레이더 시설물이 있던 장소..
높고 신령스러운 산이란 高靈山은 또 달리 高嶺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령산은 서울의 서북 지역에서 가장 높고 골이 깊은
산이다. 그 주봉인 앵무봉(621.8m)은 적성의 감악산(674.9m) 다음으로 높다. 앵무봉(鸚鵡峰)이란 산 이름의 유래는 봉우리
모습이 마치 머리에 쓴 고깔을 닮아 고깔봉이라 하였는바, 음운이 변화하여 꾀깔봉, 꾀꼴봉으로 불려 지게 되었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鸚峰(앵봉) 또는 鸚鵡峰(앵무봉)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앵무봉은 고령산의 연봉(連峯)으로 남쪽에 개명산, 형제봉, 동쪽에 수리봉(521m)을 곁에 두고 있다. 개명산(開明山)을 다른
이름으로 고령산(高靈山)이라 불러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가져오는데, 앵무봉 북쪽에 안고령, 서쪽에 대고령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명산의 본 이름이 고령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개명산은 일본이 처음 지도를 제작할 때
발음이 어려워 개명산으로 표기하여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육안으로는 멀리 강화도의 섬 산들인 고려산과 혈구산, 그리고 별립산까지 조망되었데..사진으로는 계양산만 겨우 보인다.
됫박고개 너머 우암산 자락에 누워있는 한 많은 영혼들의 묘역들이 엄숙하게 바라 보인다.
박달산아래 오른쪽으로는 1970~80년대 서울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놀이시설을 제공한 유일레저이다.
파노라마로 담아본 고양시와 파주시 전경..
아쉽게도 고령산 정상 주변에는 나무들이 많이 자라서 주변 조망이 신통하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불곡산과 도락산이 조망되고 그 너머의 왕방산과 국사봉이 보인다.
나무가지 사이로 바라본 도봉산과 북한산 전경..
북한산을 줌으로 당겨 보았더니 실루엣으로 조망되고 있다.
하산코스를 돌고개 방향으로 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걸었다.
왼편 산 아래 안고령 마을과 건너편 팔일봉이 나무가지 사이로 조망되고 있다. 안고령은 한 때 모텔들이 20여개 성업을 하던
곳이였는데..지금은 몇 개나 운영을 하고 있는지..큼큼~
헬기장으로 가는 길은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은 눈길이다. 짧은 거리지만 러셀을하며 가려니 어느 곳은 함정도 있다.
헬기장에 도착했다. 지금은 계명산으로 부르고 있는 앞쪽은 공군군사시설 부대이다. 이곳에서 형제봉으로 바로 가는길은 없다.
그러니까 다른곳처럼 철조망 옆으로 붙어서 가는 길은 없고, 최근에 파주시에서 개발해 준 김신조 루트인 대원정사 방향으로
완전 우회하여 가는 길만 있다. 그러므로 섣불리 바로 가려고 철조망으로 붙어서 헛고생 하지 말기 바란다.
헬기장에서 뒤돌아 본 고령산 정상..
헬기장에서 말고개 방향으로 조금 가다보면 이런 이정목이 있는 곳이 대원정사 방향으로 가는 김신조 루트 길이다.
김신조 루트길은 최근에 만들어 진 길이라 다소 불분명한 곳이 있으므로 형제봉을 겨냥하여 산허리을 돌아 다시 올라 가야한다.
오늘은 극강의 추위가 몰아치는 날씨라 김신조 루트를 생략하고 고령산 최고의 전망대인 명품송들이 있는 전망대로 갔다.
내가 60년대부터 들락거리며 바라본 명품송..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자란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이 암봉에서 바라보는 도봉산과 북한산의 조망은 일망무제 무아지경(一望無際 無我地境)이다.
챌봉과 사패산 방향..
산 아래 돌고개 유원지와 도봉산과 북한산 전경..
도봉산과 북한산 전경.. 앞쪽의 일영봉과 노고산이 함께 조망되고 있다.
북한산 전경..
챌봉에서 북한산 문수봉까지 파노라마 전경..
이 암봉 전망대에서 뒤돌아 바라본 팔일봉과 북노고산 전경..
명징(明澄)한 하늘이 칼끝같은 추위를 계속 몰고 다닌다.
돌고개로 하산하며 바라본 형제봉과 계명산 전경..
산길이 끝나고 돌고개 유원지가 시작되는 곳이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보았다. 주변은 팬션부지로 한창 개발되고 있었다.
일영봉과 북한산과 작별하고..
장흥 돌고개 유원지에서 버스 정유소까지 걸었다. 마침 광적에서 지축역까지 운행하는 15-1번 버스를 타고 귀경하였다.
금년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지만 철저하게 준비를 한 덕분에 별 어려움없이..큰 고생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2018/01/26 - 휘뚜루 -
애고, 도솔천아 / 정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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