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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산행기

삼막사(三幕寺)의 남녀근석(男女根石)으로 유명한 삼성산(三聖山:481m) 산행 (2018/02/24)

by 휘뚜루50 2019. 6. 22.

                                                                                                                                             ↑ 2005년 촬영한 사진

삼막사(三幕寺)의 남녀근석(男女根石)으로 유명한 삼성산(三聖山:481m) 산행

-2018/02/24 -

 

삼성산(三聖山:481m) 삼막사(三幕寺)에는 남녀근석(男女根石)이 나란히 있다.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녀근석은 아이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2개의 자연 암석으로 된 남녀근석은 그 모양이 마치
남녀의 성기 모양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바위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자식번성과 무병장수의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특히 임신한 부녀자가 여근석을 만지면
순산한다고 한다. 소원성취를 매년 4월 초파일과 7월 칠석날에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제물을 차려놓고 정성을

드린다. 이러한 성기숭배 풍속은 사냥으로 살아가던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무속, 풍수, 동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성석에는 재미난 전설이 있다. 어느 마을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자식이 없었다. “씨받이라도 들이자”며 시어머니는

난리였다. 날로 수척해지는 며느리에게 어느 날 꿈에 할머니가 나타났다. “삼막사에가 성석을 문지르면서 소원을 빌어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음날부터 부부는 바위를 찾아가 움막을 짓고 치성을 드렸다. 그 후 신통하게도 부인은 아들을 낳았고 자손도 번창했다.
그로부터 삼막사 성석은 자식 낳기를 바라는 기원처로 알려졌다. 성석에 대한 민속신앙을 살피고 싶다면 안양 삼막사에
가보자. 남근석도 그렇지만 여근은 영락없는 여성성기 모양이다. 음부 중앙에는 구멍이 오목하게 파여 있으며 그곳에는
늘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는데, 오늘은 조금밖에 없다..^^

 

 

아직은 발목과 무릎이 시원치 않은 옆지기를 생각해서 삼성산(三聖山:481m) 들머리를 서울대학교 정문으로 하였다.

 

 

사실 삼성산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산이라 걷기 좋은 계곡산행보다 암릉산행을 하면 좋은데..발목과 무릎의 상태도 불건강

하지만 암릉에 대한 고소공포증이 심한 옆지기라 암릉산행은 포기하고 유순한 계곡따라 삼성산 깃대봉과 삼막사까지만

힐링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난해 이맘때쯤 삼막사에서 우연찮게 얻어 먹은 막국수가 생각나서 점심 공양시간에 맞추어 산행을 하였다.

그런데 일요일만 점심공양을 하는 줄 모르고 갔더니 오늘은 토요일이라 점심공양을 하지 않는 날이였다.

만약에 예비로 준비해간 먹거리가 없었더라면 허기진 산행을 할뻔 하였다.

 

 

깔딱고개이다. 예상외로 이쪽 코스는 주말인데도 산행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장군봉능선 깔딱고개 부근에 있는 전망 좋은 쉼터..

 

 

점심공양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기에 바위길을 싫어하는 옆지기를 살살꼬시기하여 깃대봉으로 갔다.

 

 

삼성산 깃대 국기봉에 도착하였다. 관악산과 삼성산에는 국기봉이 총 11개 있다. 그래서 산꾼들이 국기봉 순례하는 코스이다.

 

 

깃대 국기봉에서 바라본 관악산 전경..흔히 봄철이면 나타나는 기온상승 현상으로 연무와 안개로 가시거리가 없는 날씨이다.

 

 

서울대 관악 캠퍼스 방향..

 

 

장군봉 방향..

 

 

호암산 방향..

 

 

삼성산 방향..

 

 

깃대봉 암릉을 어렵게 올라 온 옆지기 왈~ 힘들게 올라 온 보람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한다.

 

 

깃대봉 주변에 있는 명품송 한 그루..사실 삼성산에도 명품송들이 즐비한데 암릉산행을 하지 않으니 만나보기 힘들다.

 

 

깃대봉에서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반월암이다.

 

 

삼막사(三幕寺)에 도착하였다. 삼성산(三聖山)에 위치한 전통사찰 제9호인 삼막사는 신라시대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후, 조선 초기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중수하였고, 서산대사 (西山大師)등이 수도한 곳이라고 전해져 온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으로부터 1300 여년 전인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스님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바로 그 위치에 삼막사가 지어졌다고 하며, 삼성산(三聖山)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불상을 모셔 관음사(觀音寺)로 부렀다,

 


사찰이 융성해지면서 도량의 짜임이 중국 소주(昭州)의 삼막사(三邈寺)를 닮아 삼막사로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삼막
(三幕)으로 바뀌었다. 근대에는 지운영(池雲英)이 이곳에 백련암(白蓮庵)을 지어 은거하였고 현재 조선후기 건축양식인
망해루(望海樓)와 명왕전(冥王殿)(경기도 유형문화재 자료 제60호)이 있으며 고려시대 삼층석탑(三層石塔)인 일명
살례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과 사적비(事蹟碑)(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25호), 삼막사 남녀근석(男女根石)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 삼막사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외에도 삼귀자(三龜字),
감로정(甘露井) 등 다수의 비지정 문화재가 있어 삼막사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삼층석탑이다. 삼막사는 신라시대에 승려 원효가 건립한 뒤 조선 초기의 승려 무학이 중수하였고 승려 서산 등이
수도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 고종 17년에는 명부전도 건립하였다. 삼막사는 역사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삼막사 경내에 들어서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층석탑이 눈앞에 보인다.
이것은 삼막사 승도인 김윤후가 몽고군의 원수인 살이타이를 살해, 싸움에서 이긴 승적을 기념한 탑이다.

 

 

마애삼존불은 자연암벽에 감실(龕室)을 만들고, 거기에 부조(浮彫)한 치성광삼존불(熾盛光三尊佛)로 조선후기
(朝鮮後期)를 대표할만한 걸작이며, 석굴사원 (石窟寺院) 유구(遺構)로 전해 오는 중요한 자료이다.주존(主尊)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의 머리는 소발(素髮)에 반달형 계주가 보이며, 얼굴은 사각형이지만 눈과 입, 볼 등을
율동감 있게 묘사하여 미소짓게 함으로써 중후하고 자비스러운 인상을 풍기게 한다.

 


좌우(左右) 협시보살은 일광(日光)과 월광보살(月光菩薩)로 연화대 위에 합장한 모습인데, 머리에는 소박한 삼산관
(三山冠)을 쓰고 있으며 환한 미소 때문에 활력이 넘쳐 보인다. 이 삼존불은 얼굴이나 상체의 활달한 부조(浮彫)로서
생동감이 넘쳐나며 조선시대 불상(佛像)에서는 파격적인 수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몸의 표현이 평판적이고 경직된 상체와 하부로 내려갈수록 얕은 기법등은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불상아래에는 건륭(乾隆) 28년(영조(英祖)39년, 1763)이라는 명문(銘文)이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연구(佛敎彫刻史硏究)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또한 칠성신앙(七星信仰)과 다산신앙(多産信仰)이 결합한 불교(佛敎)와 민간신앙(民間信仰)의

결합형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삼귀자(三龜字) 음각이다. 삼막사에 들어서면 바위면을 다듬어 음각으로 새겨 넣은 세 가지 형태의 거북 귀(龜) 자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글자는 조선말기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1982~1935)이 새겨 넣은 것이다. 지운영은 재주

가 많은 사람으로 서화가이자 정치가, 사진가였다. 일본에서 사진 기술을 배워와 서울에 사진관을 개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 정부의 극비지령을 받고 개화파의 일원인 김옥균과 박영효를 암살하기 위해 일본에 특파되었다가 암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유배 생활이 끝난 후 그는 삼막사 위에 백련암을 짓고 은거에 들어갔고 당시 ‘삼귀자’를

새겼다. 전서체로, 우측 각자머리에 ‘관음몽수장수 영자’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꿈에서 관음보살을 본 후에 글자를

새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막사 절집을 한바귀 돌아보고 점심공양시간이라 식당으로 가 보니 일요일만 일반인들에게 점심을 공양한다고 한다.

 

 

혹시나해서 지하철 서울대역 부근에서 약간의 빵을 구입해 온 것으로 점심 대신으로 요기를 하였다.

 

 

하산길은 시멘트 길을 따라 관악역쪽으로 가다가 장군능선쪽으로 우회전하여 제 2의 깔딱고개 방향으로 향하였다.

 

 

관악역에서 집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멀고 여러번 갈아타기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서울대학교 방향으로 수정하였다.

 

 

장군봉능선의 제2깔딱고개를 힘들게 올라서서 쉼을 하고 있으려니 한무리의 단체산행객들이 요란벅적지걸하게 지나간다.

 

 

대략 4시간의 여유로운 산행으로 삼성산 깃대봉과 삼막사를 다녀왔다. 내 스타일이 아닌 오로지 옆지기의 스타일로 유유자적

하며 산행을 하니 평소 산행에서 보지못한 것들이나 느낌들이 새롭게 보이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니 자연의 조화로움과 신비로움이 비로서 보이고 느낌으로 다가온 하루 산행이였다.

 

2018/02/25 - 휘뚜루 -

자유로운 마음 / 김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