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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산행기

무작정 떠난 해당화 피고지는 동해안 여행

by 휘뚜루50 2019. 7. 11.


▒ 무작정 떠난 해당화 피고지는 동해안 여행

       - 2018/05/12~13 -


갑짜기 당일여행으로 떠난 동해안 속초방면의 여행이 동행자들의 합의하에 1박 2일 여행이 되었다. 사실 여행이란 계획하에

진행을 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이렇게 무계획하에 진행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재미와 의미가 있다. 다만 얼마만큼 서로

소통할 수 있느냐가 여행이 즐거울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번 동행여행을 해본 사람들이라 나도 수식어 없이

동의하였다.



아침을 먹고 늦은 시간에 서울을 출발하였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울에서 속초까지 약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편리한 시대이다. 하지만 진종일 비가 내리는 날 여행은 많은 제약이 따라서 즐길수 있는게 별로 없는 편이다.



점봉산 긴 터널을 빠져 나가자 곧 속초에 도착하였다. 먼저 시장끼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인인 추천해 준 물회 전문집(봉포

머구리 물회집)으로 갔다. 유명세로 약간 기다려서 물회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내 기준으로 보아서 맛과 량, 그리고

가격으로는 추천하고 싶은 집은 아니였다. 아무튼 물회로 점심을 해결하고 속초 중앙시장의 먹거리 골목으로 가서

씨앗호떡과 닭강정, 그리고 아바이 순대와 튀김 종류의 간식거리를 준비하여 화진포(花津浦)로 갔다.



마침 내리던 이슬비도 멈추어 화진포(花津浦) 호수와 해변을 산책하였다.



화진포(花津浦) 호수에 피어 있는 해당화꽃..



해당화꽃 피어 있는 화진포(花津浦) 호수..



해당화가 조금은 시들어 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화진포(花津浦) 호수..



화진포(花津浦) 호수가에 핀 아카시아꽃..



화진포(花津浦) 해변의 풍경..



화진포(花津浦) 해변에는 예전에 없던 국군복지콘도와 사랑의 열쇠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국군복지콘도는 일반인도 4일전에 예약을 하면 콘도 시설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화진포(花津浦)의 성(城), 또는 김일성 별장으로 올라가는 금강송길..



화진포(花津浦)의 성(城)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망명 건축가 베버가 건축하였으며

6,25전쟁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본래 화진포(花津浦)의 성(城)이 였던 별장은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지역으로써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1948년부터 6,25남침 이전까지는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등이 하계휴양을 했던 곳으로써

당시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의 별장이였던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964년 육군에서 훼손된 본래의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였으며, 1995년 육군 복지단에서 개.보수하여 장병

휴양시설로 운영하여 오다가 1999년 7월 육군에서 기존의 건물을 용도 변경, 개수하여 역사안보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화진포(花津浦)의 성(城)인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본 초도항과 금구도 전경..

금구도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왕릉이 있다고 하는 자료가 최근 발견되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화진포(花津浦) 해변에서 바라본 화진포(花津浦)의 성(城) 전경..아직은 숙소로 들어가기에 이른 시간이라 대진항으로 갔다.



약 십여년전에 몇번 다녀간 대진항은 많이 변하여 있다.



바닷가 항구에는 예전에 없던 관광객들을 위한 아름다운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관광객들을 위하여 바다위에 설치되어 있는 인공구조물 덕분에 색다른 바다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날씨만 좋았다면 저 밴취에 앉아서 동해안 일몰의 바다풍경을 감상해 보고 싶었다.

숙소는 자작도 해변에 있는 동행한 지인과 친분이 있는 팬션에서 묵기로 하였다.



다음날(5월13일) 혹시나 일출을 볼 수 있을까하여 미명의 시간에 자작도 팬션집에서 나와서

설악산 방향을 바라보니 운봉산은 조망되는데 설악산은 아직 짖은 안개에 뒤덥혀 있는 중이다.



방향을 조금 바꾸어 바라보니 마산봉 줄기의 죽변봉이 조망되고 있다.



해당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자작도 해변의 아침풍경..



지평선 바다위의 하늘은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같은 시간 같은 방향이라도 찍사의 각도에 따라 색감을 달리하는 풍경이다.



어쩌면 일출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사항으로 기다렸다.



빛 열림이 시작하는 지평선 위를 가르키는 옆지기..



일출을 보여 줄듯..아니 보여 줄듯 숨박곡질을 하고 있다.



전체적 아침바다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곧 일출을 보여 줄것만 같은데..



기다려도 기가려도 오지않는 님처럼 일출은 보여주지 않는다.



잠시 삼포해변쪽를 바라보았다. 삼포해변에 유일한 오션투유리조트(흰건물)가 조망되고 있다.



기다리던 햇님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자작도 위로 빛내림 현상만 연출해 주고 있다.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검은 바다에 붉은 빛내림을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천지창조의 풍경인듯하다.



눈부심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찰나(刹那)의 풍경이다.



도시의 일상에서 만나볼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풍경앞에서 살아 있음의 고마움을 느겼다.



어느듯 바다위에 뒤덥혀 있는 저 편의 구름은 사라지고 있다.



이 생(生)에서 이루지 못 한 어느 젊은 영혼들의 결혼식이다.



그 사이 옆지기와 나는 자작도해변쪽으로 자리이동을 하였다.



자작도해변에서 바라본 풍경..



자작도 해변에서 바라본 풍경..



자작도 해변에서 바라본 풍경..



자작도 해변에서 바라본 풍경..



자작도 해변에서 인증샷..



자작도 해변의 풍경.. 뒤로는 설악산 울산바위와 대청봉이 조망되는데 아직 안개구름에 뒤덥혀 있다.

팬션에서 준비한 아침식사를 맛나게 하고 다시 북쪽 방향으로 가기로 하였다.



사전에 계획된 여행이 아니기에 발길 닫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가 보기로 하였다.



자작도와 지천에 있는 삼포해수욕장이다. 내 기억으로는 80~90년대 젊은 청춘들이 주로 찾던 삼포해수욕장이다.



주머니 사정이 각박했던 젊은 대학생들이 야전텐트와 먹거리를 가져와서 노숙수준의 야영하던 삼포해수욕장이다.



지금은 오션투유리조트와 자동차 캠핑장으로 주인있는 해수욕장이 되어있다.

참고로 황석영의 소설 "삼포로 가는 길"과 무관한 곳이다.



오호항이다. 죽왕면 오호리에 있는 조그마한 어촌인데, 외지인들에게는 송지호 부근의 어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오호항 등대와 서낭바위로 가는 산책로..



예전에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수호신을 모시는 당집으로 가는 들머리길이였다.

2010년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있다가 해제되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서낭바위로 가는 길이다.



오호항 등대..



서낭바위 산책로에서 바라본 설악산 울산바위와 대청봉 전경..



산책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지호 해변 앞에 있는 죽도..누구는 고래모양이라 하고 누구는 쥐모양이라고 하더라~!



산책로 전망대 테크에서 왼편 바닷가로 내려서면 당집과 서낭바위와 붙임바위가 있다.



서낭바위이다. 바위의 생김새도 독특하지만 그 바위 위에서 살아가는 명품송 한 그루가 바라 볼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서낭바위는 송지호 해변의 암석 해안에 위치한 바위로 암석속으로 마그마가 뚫고 들어가 만들어진 독특한 경관을 볼 수 있다.



화강암으로 구성된 서낭바위의 틈을 뚫고 들어간 규장암질의 마그마는 그대로 굳어 규장암이 되었다.



기존의 암석인 화강암과 새롭게 형성된 규장암은 서로 다른 색과 구조를 지녔기 때문에 서낭바위 일대에서는
두 암석의 차이가 만든 특이한 경관을 관찰할 수 있다.



서낭바위 옆에는 또 다른 형태의 바위에 명품송 한 그루가 있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서낭바위 옆에는 지난밤에 어느 무당이 차려 놓은 귀신밥상이 있다. 무엇을 소망하고 기원했을까..? 큼큼~



국토부에서 서낭당 일대를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가지질공원(大韓民國國家地質公園)은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역으로서 이를 보전하고 교육, 관광 사업에 활용하기 위하여 환경부장관이 인증한 공원이다. 현재 이곳을 비롯하여 전국에 총 11곳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서낭바위 해변에서 바라본 죽도 전경..이곳에서 바라본 모습은 고래모습같다.



서낭바위 주변에 무수히 자라고 있는 해국..

송지호 해변 서낭바위 관람을 마치고 바로 화진포로 향하였다.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게되는 화진포 호수 전경..



눈으로 힐링하고..



마음으로 힐링하고..




바닷가의 꽃 해당화로 힐링하고..



그리고 꽃과 호수와 산과 구름으로 힐링하다.



잠시 풀잎배를 만들어 먼 기억 저편의 동심의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시절들이 흑백영화의 필름처럼 소리없이 돌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만으로 남아 있는 개구장이들의 얼굴들이 스처지나간다.



살아 있는 자(者)보다 생을 마감한 자(者)들이 더 많은 것을 보면 나도 많은 세월을 살았나 보다.



문득 살아 있음이 오월의 푸르름 때문인지 행복한 아름다움으로 연결되어 온다.



해당화 피고지는 화진포 호수를 지나 마차진 해변에 도착하였다. 한 때 금강산 가는 광광객들이 묵었던 고성금강산콘도..



금강산콘도 앞에 있는 무송대(茂松臺)이다. 무송대(茂松臺)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바닷가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있으니 전에는 송도(松島)라고 하였으며 송림이 무성하고 모래길(沙路)로 육지와 이어지고 바닷물이 불으면 섬에

들어갈 수 없으며 파도가 치면 모래가 스치는 소리가 난다(沙鳴). 무송부원군 윤자운(茂松府院君 尹子雲)이 관동지방(關東

地方)을 순시 할때 이 섬에 머물러 갔다고 하여서 그 후 무송대(茂松臺)라고 이름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섬

주위의 바위에 자시(子時)에 자연적으로 움직여갈라진다는 자마석(子磨石)이 있다. 평시에 무송정(茂松亭) 또는 무선정

(舞仙亭)이라고도 부르는데 뱀이 없다고 하며 주위에는 잡어, 해조류와 방게가 풍부하게 서식하고있다고 한다.



마차진 해변에서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송지호(오호리)에 있는 내가 알고 있는 만성횟집(물회전문)으로 가서 모듬물회를 맛보았다. 이집의 물회는 오호항에서 그때그때 잡히는 잡어들로만 물회를 만드는 오리지날 강원도식 물회전문집이다. 때문에 육질은 살아있고 양념은 절대로 강하지 않은 편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수 있고, 량 또한 푸짐하다. 송지호 부근을 여행하시는 분들에게 물회집으로 적극 추천한다.

만성홧집 전화번호 ☞ (010-3916-3863 / 033-631-3863)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물회다운 물회로 배를 채우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금강산 말사인 건봉사를 들렸다 가기로 했다.



1920년에 건립된 건봉사 경내 출입문으로, 사찰의 건물 중 한국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일주문인 불이문(不二門)이다



건봉사(乾鳳寺)는 전국 4대사찰의 하나로 신라 법흥왕 7년(서기520년)에 아도화상이 원각사를 창건하였고, 그 이후 도선국사가
증수한 뒤 서봉사라 하였으며, 고려 말엽 나옹화상이 증수하고 건봉사(乾鳳寺)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건봉사(乾鳳寺)는 임진왜란 때에 사명대사가 의승병을 기병한 호국도량이었으며, 당시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왜병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사명대사가 사행(使行)하였다가 다시 찾아와서 이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부터님 진신치아사리를 모셔 놓은 적멸보궁에 있는 사리탑..



건봉사(乾鳳寺) 현판에는 金剛山乾鳳寺(금강산건봉사)라고 적혀있다.



건봉사(乾鳳寺)의 1920년대 전경..

그리고 아래의 사진들은 건봉사 경내에 있는 금강산에 있는 사찰들의 사진과 설명들이다.



신계사(神溪寺) 전경이다. 신계사는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문칠봉 아래 있으며, 고구려 안장왕 때(서기 519년) 창건되었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편찬한 신계사지에 의하면 본래 신계사는 귀신 신(神)자와 닭 계(鷄)자로 쎴다고 되어 있다. 한 스님이 새벽마다 정성스레 목욕을 하고 불공을 드렸는데, 이에 감동한 부처님이 새벽이면 절의 남쪽 암벽에서 닭의 울음소리를 내어

시간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이 이곳에서 불도를 닦았다는 전설도 있다. 금강산 4대사찰 중 하나로서

15개 전각이 있었으나 6,25한국전쟁 때 삼층석탑만 남기고 전소되었다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남측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마하연(摩訶衍) 사찰이다. 마하연은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 촛대봉 아래 해발 864m 지점에 있는 암자이다. 신라 문무왕 때

(서기 661년) 의상대사가 새웠다고 전해진다. 마하연(摩訶衍)은 산스크리트어 mahayana를 음차한 불교용어로서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뜻하는 "대승(大乘)"과 같은 말이다. 옛날부터 고승들의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6,25한국전쟁 때

전소되어 현재는 주춧돌과 기단 일부, 그리고 조선 순조 때 세운 중건사적비 등이 남아 있다.



유점사(楡岾寺)이다. 강원도 고성군 서면 백천교리에 있는 유점사는 4세기경 신라 남해왕 때 53불상이 인도 월지국을
경유하여 절터에 도착하여 화엄도량을 이뤘다는 희유한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사찰이다.


금강산 4대사찰중에서도 가장 크고 웅장한 절이며, 일제 때는 31본산의 하나로서 금강산 60여개의

사찰을 말사로 두었던 대찰이다. 경내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많아서 유점사(楡岾寺)라고 하였다.



6,25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사찰 전체가 소실되어 그 터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북측 휴전선 군사지역에 속하여 현재 모습은 알 수가 없다.



보덕암(普德庵)이다.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 만폭동 계곡 표훈사에 딸린 보덕암은 고구려 안원왕 때 보덕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금강산의 많은 암자들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이 건물은 절벽에 의지하여 지은 희귀하고도 신비한 건물이다.



자연동굴인 보덕굴 앞을 막아 지은 본전과 함께 벼랑 위 평지에 지은 작은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본전굴로 내려가는 계단만

남아있다. 보덕굴은 옛날에 마음씨 착한 보덕각시가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곳이라고 한다. 보덕암은 심한 바람이 불거나

여러 사람들이 마루를 걸으면 흔들거리지만, 1511년 조선 중종 때 설치한 구리기둥에 의지하여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기울어지지 않고 있다.



표훈사(表訓寺)이다.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에 있는 표훈사는 신라 문무왕 때(서기 670년) 표훈대사 등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사찰주위엔 울창한 숲이있고 만폭동에서 흘러내리는 시내가 아름답다. 한 때 만해 한용운 스님이 이곳 강원에서 강사로 있기도

하였다.



금강산의 고찰들이 한국전쟁 때 대부분 폭격 등으로 파괴되었으나 표훈사는 현재 금강산 4대사찰 중 유일하게 옛 건물들이

남아있다. 내금강 깊은 곳에 자리한 관계로 원래 20여 채의 전각 중에 반야보전 등 7개의 전각과 7층석탑이 보존될 수 있었다.



장안사(長安寺)이다.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 장경봉 아래있는 장안사는 고구려 양원왕 때(서기551년) 신라에 귀화한 혜랑대사

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금강산의 4대사찰이며 고려 때부터 왕실수호 사찰로 알려져 있다. 장안사는 6전, 7각, 2루, 2문에 10

여채의 요사로 구성된 300여 칸의 대찰을 자랑했으나, 6,25한국전쟁 때 전소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19세기말 이곳을

방문한 영국의여류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장안사에 머물며 남긴 글이 서양에 소개되어 일제강점기 때 해외에서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상 위의 사진과 글은  건봉사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을 옮겨 놓은 것이다.



동행인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백두대간 진부령을 넘으며 바로 서울로 가기에는 이른 시간대이라 양구 펀치볼에 있는 을지전망대를 들렸다 가기로 하였다.



백두대간 진부령을 넘을 때는 일기불순한 하늘에서 국지성 소나기가 한 줄기 내렸다.



원통에서 서화를 거처 해안(일명:펀치볼)에서 출입신고를 하고 을지전망대로 올라갔다. 해발 일천미터가 넘는 을지전망대에서

안보강사의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사진은 안보상 휴전선 방향은 불가하고 펀치볼 방향만 허용되었다.



을지전망대에서 바라본 펀치볼(해안) 마을 전경..



파노라마로 담아본 해안(펀치볼) 전경..멀리 용늪이 있는 대암산과 도솔봉이 조망되고 있다.



무작정 다녀온 1박 2일의 강원도 여행..사전 계획이 없어서 아쉽고 부족한 점들이 있었지만..반면에 부담없는 자유로움이 있어서 좋았다. 기실 여행의 본질은 자유로움이니까 가끔은 이렇게 무작정..아니면 훌적 떠나 자유로움을 만끽해 보아야 겠다. 새처럼..^^


2018/05/18 - 휘뚜루 -

달빛항해(몽금포타령) /이상은 & 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