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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로 가는 나홀로 수락산(水落山) 산행

by 휘뚜루50 2021. 8. 9.

▒ 너에게로 가는 나홀로 수락산(水落山) 산행

태자 싯달타의 출가 - 2017/01/07 - (클릭하여 듣기)

 

오늘 산행은, 스스로 시대적 본류에 뒤섞여 흐르기를 거부하고 독창적인 삶과 문학을 창출했던

매월당(梅月當) 김시습(金時習)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수락산(水落山:계곡의 맑은 물이

떨어지는 곳)으로 갔다.

 

들머리를 교통이 편리한 석림사쪽으로 하고 7호선 장암역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장암역에 도착하기전 전동차에서 바라 본 도봉산 전경이다.

미세먼지는 없는 날이지만 연무현상이 심한 날이다.

장암역에서 길을 건너 석림사로 가다보면 먼저 좌측으로 눈에 띄는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고택이 눈에 들어 온다. 서계 박세당(1629-1703)은 17세기 후반 조선을 대표하는 사상가의

한 사람이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정계를 움직이던 양반사대부들은 숭명배청, 복수설치를

내세우며 주자학으로 중무장하여 다른 사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청풍정유지(淸風亭遺址)..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선생이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을 추모배형

(追慕配亨) 하기 위하여 충렬사를 짓고 그 앞에 정자를 지어 유생들과 함께 학문을 강론(講論)

하던 곳으로 청풍정이 있던 자리 추춧돌 옆에는 박세당의 처남 남구만이 썼다고 하는

수락동천(水落洞天) 이라는 초서 글씨가 암각되어 있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쓴 수락동천(水落洞天).. 누구는 서계 박세당의 손아래 처남 남구만(南九萬)이

쓴 것이라 하고..누구는 매월당(梅月當) 김시습(金時習)의 필체라 하고 한다. 어느것이 정설일까..? 

 

서계 박세당 고택을 지나 한적한 계곡을 따라 석림사로 가다 보니

등산용품을 판매하는 길거리 장사가 문을 열고 있다.

노강서원(鷺江書院)이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정재 박태보(定齋 朴泰輔,1654∼168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숙종 3년(1677)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호남 암행어사, 파주 목사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고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가는 도중 죽었다.

학문에도 깊고 성품도 강직한 분으로 알려졌으며 죽은 뒤에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숙종 21년(1695)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27년(1701)에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노강(鷺江)’

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원래는 서울 노량진에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1968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노강서원을 지나 석림사 일주문을 통과하면..길이 끝나는 곳에 석림사(石林寺)가 있다. 

석림사(石林寺)의 옛 이름인 석림암은 원래 반남 박씨의 재궁절이어서 석림사라고 하면 잘 모르고

박씨네 재궁절이라고 해야 통했다고 한다.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서계 박세당 선생의 문집

서계집, 석림암기에 의하면 1671년(현종 21년) 서계 선생의 시주금으로 석현화상과 치흠화상이

두세 칸 띳집으로 창건하였으며 서계 선생이 석림암이라 명명 하였다고 한다. 

현재 불려지는 석림사라는 이름은 1745년(영조 21년) 을측년 7월에 대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익명의 스님이 복원한 뒤 개칭한 것이라 한다.그 후 6,25 한국전쟁 당시 또 다시 전소된 것을

창건주인 비구니 상인스님이 1958년 상좌 보각과 함께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비구니 사찰이다.

석림사에서 오른쪽 철문을 지나면 계곡으로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한다.

이곳에도 등산용 소품을 판매하는 간이 매점이 각종 소품들을 진열하고 있다.

계곡은 몇 일 따스한 날씨 덕분에 졸졸 물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마치 봄날의 해동할 때의 그 봄 소식처럼..

기차바위(좌)와 주봉(직진)으로 가는 삼거리..

기차바위는 좌측 계곡으로 따라가면 되고 주봉은 능선으로 올라가면 된다.

 

수량이 없어서 매마른 수락폭포..

수락폭포에서 바라 본 도봉산 전경..

 수락폭포 위를 돌아가는 철망지대..

이곳에서 좌측 계곡으로 가면 주봉으로 가고 우측 계곡으로 가면 깔딱고개로 간다.

좌측 계곡길은 상당히 가파른 너덜길이다.

안부에 있는 이정목..

안부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 본 도봉산과 사패산 전경이다.

심오한 연무현상으로 북한산 전경은 핸폰에 잡히지 않는다.

 

의정부 신곡동 동막골 방향..

의정부 신곡동 동막골 방향에 있는 도정봉..

기차바위(일명 홈통바위)

주봉 서쪽 능선에 있는 이름모르는 암봉..

건너편 매월정(梅月亭)도 조망되고 있다.

명품송 한 그루..

주 능선으로 가는 마지막 나무테크 계단길..

 주 능선에 올라 뒤돌아 본 전경..

주 능선에서 주봉이 있는 정상으로 가지않고 반대편으로 갔다.예전 군인들이 사용하던 군 벙커이다.

일단 기차바위(일명:홈통바위)로 갔다.

오랫만에 기차바위를 타 보고 싶어서 각도 70도에 약 50m의 밧줄을 잡고 하강을 하였다.

 

기차바위를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우회길로 가서 기차바위를 담아 보았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밧줄의 길이가 약 50m이므로 한번에 3명 정도씩 올라야한다. 여러명이 한꺼번에 타면 위험하다.

 

다시 순서를 기다려서 위로 올라왔다. 이제는 중간에 한번 쉬었다가 올라야 했다.

예전에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중간에 있는 홈통을 잡고 어렵게 올랐었다.

기차바위에서 바라 본 해파리바위..오늘도 명당자리에는 산객이 머물고 있다.

다시 석림사와 청학리 사거리로 돌아 왔다.

수락산 주봉 직전에 바라 본 도정봉 방향..

정상 부근에 있는 명품송 한 그루..

수락산(水落山:637m) 주봉이다. 수락산은 노원구 상계동, 의정부 장암동, 남양주시 별내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서울과 의정부 간의 국도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자리잡은 북한산(北漢山 ,837m)과 도봉산

(道峰山 ,710m)을 마주보고 있다. 이 산은 북쪽의 의정부로부터 남쪽의 태릉까지 연결되며, 중간

지점인 덕릉 고개를 중심으로 북쪽은 수락산, 남쪽은 불암산(佛巖山, 508m)이다.

 

대부분이 돌산으로 화강암의 암벽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나, 산세는 그다지 험하지 않다. 수목이

울창하지는 못하나 수목은 적으나, 동쪽의 금류계곡에는 금류동(金流洞), 은선동(隱仙洞), 옥류동

(玉流洞)의 세 폭포가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어 물이 떨어진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서쪽 사면에 쌍암사(雙巖寺), 석림사(石林寺), 남쪽 사면에 계림암(鷄林庵), 흥국사(興國寺), 동쪽

사면에 내원암(內院庵) 등이 있고, 이 암자의 뒤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2m의

석조미륵입상(石造彌勒立像)이 있다. 수락산은 산이 낮고 계곡이 짧으나 조망이 좋으며, 노원, 상계,

수락, 그리고 의정부 동막과 청학동 등등 여러 방향에서 등산할  수 있는 교통이 편리한 산이다.

정상에서 바라 본 의정부시 청학리 방향..

의정부시 도정봉 방향..

 

정상 주변에서 휴식를 하는 산객들..

남사면에 있는 나무테크 계단길..

 

정상에서 남쪽 방면 암봉..

매월정(梅月亭)으로 내려가는 능선.. 

 

​정상을 출발하여 철모바위에서 뒤돌아 본 수락산 정상의 전경이다.

철모바위봉에서 바라 본 도솔봉과 불암산 방향..

철모바위 사면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노송 한 그루..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매월정으로 가는 하산길에 뒤돌아 본 수락산 정상의 전경이다.

매월정으로 가는 하산길에 만난 명품송-1

매월정으로 가는 하산길에 만난 명품송-2

매월정으로 가는 하산길에 바라 본 도솔봉과 불암산 전경..

매월정으로 가는 하산길에 만난 명품송-3

연무현상만 아니라면 건너편 북한산과 도봉산의 그림같은 전경을 즐감할 수 있는데..

오늘은 지근거리만 즐감해야겠다.

예전에는 참 힘든 릿지길이였는데..지금은 편안하게 나무테크길이 설치되어 있어 좋다.

매월정으로 가는 하산길에 만난 명품송-4

매월정으로 가는 하산길에 만난 명품송-5

 

수락산의 명품 바위인 독수리바위..

이쪽에서 바라보면 그냥 바위형상에 불과하지만..

이 방향에서 보면 위험있는 독수리의 모습이다.

예전에 비하여 부리 부근이 상당히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었다.

독수리바위에서 뒤돌아 본 철심구간..

독수바위에서 바라 본 매월정..

도솔봉과 불암산 전경..

철심구간 중간에 있는 또 다른  최고의 전망대.. 

편안하게 오르고 내려 갈 수 있는 나무테크 구간..

두번째 철심구간..

철심구간에 있는 명품송 한 그루..

철심구간 중간에서 바라 본 매월정..그리고 도봉산과 사패산 전경..

뒤돌아 본 철심구간..

마지막 철심구간..

이렇듯 수락산은 어느 코스든지 릿지구간이 많은 산이다.

사거리 안부 좌측은 석림사로..우측은 백운동계곡이고..능선길은 매월정길이다.

 

김시습(金時習:1435~1493)을 기념하기 위하여 노원구에서 설치한 매월정(梅月亭)..
김시습(金時習)은 조선전기 학자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峯)등,

법명은 설잠(雪岑), 주요저서는 "금오신화"(金鰲新話) "매월당집"(梅月堂集)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등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유(儒). 불(佛). 선(仙) 3교의 영역을 넘나든 사상가요 당대 정치의

폐해와 민생의 현실에 주목했던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세조(世祖)의 왕위 찬탈(계유정난,1453년)이후

출세의 길을 단념한체 전국을 방랑하며 2천여 편의 시(詩)와 문(文)을 남겼고, 경주 금오산에 머물던

30대 시절에는 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

​지방을 떠돌던 김시습은 성종(成宗)이 왕위에 오르자 1471년(성종2) 37세에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

수락산 동봉(東峯)에 폭천정사를 짓고 10여년을 생활하였다. 하나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간폭정기"라는 고서에 '수락산 옥류동에 있는 옥류폭포 옆에 간폭정을 지었는데, 그 위 5리쯤에

매월당 김시습의 옛 살던 터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이 지금의 수락산 내원암

(남양주시 별내면 소재)인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월정(梅月亭)에서 바라 본 수락산과 하산한(가운대) 능선길..

오른쪽으로 도솔봉과 불암산이 조망되고 있다.

 

파노라마로..

매월정(梅月亭)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김시습(金時習)의 시조들..

매월정(梅月亭)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김시습(金時習)의 시조들.. 

매월정(梅月亭)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김시습(金時習)의 시조들..

매월정(梅月亭)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김시습(金時習)의 시조들.. 

매월정(梅月亭)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김시습(金時習)의 시조들.. 

 

매월정(梅月亭)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김시습(金時習)의 시조들.. 

매월정(梅月亭)에서 바라 본 하산길..

하산길에 본 명품송 한 그루..

하산길에 본 명품송 두 그루..

염불사로 가는 삼거리..나는 염불사로 가지 않고 주 능선을 끝까지 고수하며 백운계곡입구까지 갔다. 

산책하기 좋은 능선길..

이곳의 나무들은 리기다소나무가 주종를 이루고 있었다.

 

장암역을 오전 11시에 출발하여 대략 4시간을 소요하며 수락산 백운계곡 날머리에 도착하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일년만에 다시 수락산을 찾았다. 같은 서울에 있는 산이지만 나의 집과는

정반대에 있는 산이라 자주 찾아 오지 못한 산이다. 하지만 수락산은 매월당(梅月當) 김시습

(金時習)과 인연이 깊은 곳이라 꽃피는 봄날에 청학동 방면에서 수락산을 다시 찾아 와야겠다.

 

☞ 이 자료도 인터넷에서 찾아서 다시 복원하다.(2021/08/10)

 

2017/01/08 - 휘뚜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