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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산행기

대중교통(기차)으로 구미 금오산(金烏山:977m)을 다녀오다.

by 휘뚜루50 2019. 7. 18.


▒ 대중교통(기차)으로 구미 금오산(金烏山:977m)을 다녀오다.

        -2018/12/06 -


금오산(金烏山:977m)은 경북 구미시, 칠곡군, 김천시의 경계에 위치하며 수려한 경관과 유적 대부분은 구미시에 있다.
금오산(金烏山) 정상은 해발 977m의 현월봉(懸月峯)이다. 그리고 금오산의 지질은 시생대와 원생대에 속하는 화강
편마암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석이 노출된 화강암 부분이 많으며, 화강편마암이 약간 산재해 있다. 다음은
금오산(金烏山) 홈피에서 소개한 금오산의 여섯가지의 금오산(金烏山) 별칭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함께 일독해 보자~!



별칭01. 남숭산(南嵩山) - 중국의 오악(五嶽)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고려시대에는 남숭산(南嵩山)이라 하였다. 그 유래는 중국의 황하강 유역
하남성(河南省)에 중국 오악(五嶽) 중의 하나로 유명한 숭산(嵩山)과 생김새가 흡사하여 남숭산이라 명명하였고, 남쪽에
있다 해서 남숭산이라 부른 것이다. 특히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두어 남북으로 대칭(對稱)케 되었다.



고려시대 문종(文宗)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남숭산에서 수도(修道)하게 하였는데, 그 왕자는 훗날 대각국사(大覺國師)로
봉해져 호국불교의 포교와 국정 자문에 임하였으니 남숭산의 품격과 위상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금오산은 1,000m
를 넘지 않는 산이지만 굳이 숭자(嵩字)를 붙여 중국의 유명한 숭산에 비겨 말하는 것은 이처럼 그 위용(偉容)과 품격이
비범한 데서 기인되었다고 여겨진다.



별칭02. 소금강(小金剛)과 수양산(首陽山)
금오산은 암석으로 골짜기마다 남성적인 기상이 넘치는 기암괴석(奇岩怪石)으로 힘과 기백(氣魄)이 서려 있고, 빼어난 경관을
갖추고 있어 옛 선현(先賢)들은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렀다. 또한 중국의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은 백이숙제
(伯夷叔齊)이야기와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의 충절을 기려 수양산(首陽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칠곡군 숭산리의 순국
의사(殉國義士) 만송(晩松) 유병헌(劉秉憲)선생의 문집에 따르면 "선비들이 다 사모하는 수양산 기슭에다 내 시신을 묻어다오"
라고 유언(遺言)을 할 정도로 선비들 사이에서는 수양산으로도 통용(通用)되어 왔다고 전한다.



별칭03. 필봉(筆峯)
선산 방면에서 보면 상봉(上峯)이 흡사 붓끝 같다고 해서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그로 인해서인지 선산지방에는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문인(文人), 달사(達士), 명필(名筆)이 대(代)를 끊이지 않았다. 조선조 성종(成宗)때의 문신 성현(成俔)은 그의 저서
용재총화에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朝鮮人材 半在 嶺南이요 嶺南人材 半在 善山)"라 하였고,
그 후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서도 그와 같이 언급되었으니 이는 모두 금오산 정기(精氣)의 영험(靈驗)이라는 평가도 있다.



별칭04. 귀봉(貴峯) 거인산(巨人山)
구미시 인동 방면에서 보면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와불산(臥佛山)이라고하여 귀인과 대작(大爵)이 많이 배출
되었다고 한다. 귀인이 관(冠)을 쓰고 있는 모습 같다 해서 귀봉(貴峯)이라 칭하기도 하였고, 또한 마치 거인이 누워 있는
모습같다고 해서 거인산(巨人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별칭05. 노적봉(露積峯)
김천방면에서 보면 부잣집 노적가리 같다고 해서 노적봉(露積峯)이라 하였는데

실제로 옛부터 이 지방에는 큰 부자(富者)가 많았다.



별칭06. 적봉(賊峯) 등 그 외의 별칭
김천시 개령면 방면에서 보면 큰 도둑이 무엇을 훔치려고 숨어서 노려보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적봉(賊峯)이라 하였으며..
성주군 방면에서 보면 여인네가 산발한 모습 같다고 해서 음봉(淫峯)이라 하였다. 이런 많은 별칭들은 금오산의 위용(威容)과
준엄(峻嚴)한 자태에 대한 선인(先人)들의 애정이 담겨진 것으로 해석된다.
큼큼~ 금오산에 이렇게 많은 별칭과 사연이 있는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대중교통(기차)를 이용하여 구미에 있는 금오산(金烏山) 산행을 하고 당일 다녀오기 위하여 서울역에서 첫 차(06:38)를 탓다.

 

 

약 3시간 12분 걸려서 무궁화호 열차는 구미역에 도착하였다. 구미역전에서 곧 바로 택시로 금오산 들머리까지 갔다.



금오산성 대혜문(大惠門)이다.



오늘 날씨는 상당히 수상한 날씨이다. 기상청 예보로는 대체로 맑음이라 했는데..현재 이곳은 '는개비'가 내리나 보다.
'는개비'는 북한어로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를 '는개비'라고 하니 오늘 금오산 날씨가 그러하다.
나무가지에 매달린 영롱한 물방울이 무언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기에 정성껏 담아 보았다.



해운사(海雲寺)에 도착하였다. 해운사(海雲寺)는 근세(1925년 4월 20일)에 창건된 절로써 대혜폭포 북서쪽의 언덕받이에 위치

하고 있으며 관음보살 좌상에 칠성탱화 등이 유존하고 있고, 입구에는 석조 나한상도 있다. 해운사절 안내문에 의하면 신라말

고승 도선이 대현사라는 절을 창건(서기 827?898)하였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철화스님이 현재의 해운사를 복원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유금조산록', '일선지'등에 따르면 대혈사는 금오산의 북쪽에 있었다고하나 유적을

찾을 수 없고, 문헌으로도 입증할 수 없어 안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위쪽에 도선굴(道詵窟)이 보인다.



해운사(海雲寺) 절 마당에서 줌으로 당겨본 도선굴(道詵窟)이다.



해운사(海雲寺) 종루에 시레기가 걸여 있다.



대혜폭포와 도선굴(道詵窟)로 가는 길.. 먼저 도선굴(道詵窟)로 가기로 하였다.



도선굴(道詵窟)로 가는 돌계단길..



잠시 지나온 들머리를 바라 보았다.



짧은 거리지만 직각의 벼랑 바위길 쇠줄을 잡고 올라가야하는 길은 글자 그대로 공포스러운 길이다.



도선굴(道詵窟)로 가는 길..



도선굴(道詵窟)로 가는 길..



도선굴(道詵窟) 또는 대혈이다. 대혜폭포(大惠瀑布)에서 병풍처럼 펼쳐있는 벼랑을 끼고 북으로 따라 가노라면 쇠사슬로 만든

난간을 손잡이로 하여 간신히 발붙일 수 있도록 약간은 다듬은 듯한 흔적이 있는 천길 벼랑 중간을 불어 오르다 보면 해운사가
발아래 가물거리고 다듬은 길이라 하나 몇 번이고 숨을 가다듬어야 한발 한발 내디딛을 수 있으니 오뉴월 삼복더위 때도
소름이 끼치니 납량에는 다시 없는 곳이기도 하다.


구미공단과 낙동강하며 멀리 해평의 냉산등도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이라, 그것이 바로 극치의 풍경이라 하겠다. 수억만 년의
기나긴 세월에 풍마우세로 시달리다 못해 움푹 패인 천연동굴로 이따금씩 박쥐나 새들이 쉬어 가는 곳을 신라 말 도선이라는
고승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들어 참선하여 도를 깨우쳐 우리나라 최초의 풍수지리설의 창시자가 되었다한다.



그 후 언제부터 도선굴(道詵窟)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인재 선생의 일선지에 의하면 넓이가 16척, 높이가 15척,

안으로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구옥(얽어만든집)이 두칸이었다 하여 내부가 30평은 됨직하고 임진왜란 때는 인동,

개령의 수령과 향민 5~600 명이 파난했으며 왜군은 빤히 보고도 범접을 못했다 하며..



통로가 개설되기 전이라 바위틈에 가느다란 쇠못을 박고 칡이나 등칡 넝쿨을 휘어잡고 올라갔다 하며, 일선지에도 도선굴
이라 했으니 조선조 초부터 이름이 불려졌으리라 추측된다. 고려 때는 아마 대혈, 즉 큰 구멍이란 뜻으로 불렀던 것이
굴 아래 대혈사라는 절이 있었다. 했으니 여기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현재의 공원주차장이나 백운재 또는 경파정이 있는 곳을 대혜 혹은 다혈이라 하니 다혈은 대혈의 변음이라

추측되고도 남는다. 현재의 통로와 쇠사슬 난간은 일제초의 구미면장 김승동씨에 의해 개통되었다 한다.



도선굴(道詵窟) 속에서 나도 작은 소망 하나를 기원하고..



도선굴에서 바라본 들머리길과 구미시내 전경..



도선굴(道詵窟)에서 내려다 본 해운사(海雲寺) 전경..



도선굴(道詵窟)에서 인증샷을 마치고 쇠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도선굴(道詵窟)에서 다시 대혜폭포(大惠瀑布)로 가며 바라본 전경..



대혜폭포(大惠瀑布)에서 할딱고개로 올라가는 테크계단길..



대혜폭포(大惠瀑布)이다. 대혜폭포는 대혜골의 중간지점 해발 400여m 지점에 위치하는 폭포로 높이가 28m인 이 폭포는 수직
으로 떨어지는 물의 위력은 금오산을 진동시키고도 남는다. 금오산을 소금강이라 하는 것도 폭포 주변의 경관이 크게 한 몫을
차지했으리라. 주변의 기암괴석의 천애 벼랑이 병풍처럼 에워싼 유곡에 짚동같이 쏟아지는 물소리며, 물보라에 7색 무지개가
하늘높이 솟아 오르곤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여기가 바로 신선계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곳이다.



1935년인가 경상북도 도지사인 일본사람이 이 곳을 찾아 주변 경관과 물소리에 그만 매료되어 한참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
얼마만일까 옷 속에 스미는 한기에 정신이 간신히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눈앞이 막막하여 사물은 보이지 않고 그저 쾅쾅 울리는
소리만 있어 “하하 금오산을 울리는 소리” 라고 탄복을 하고 자기의 시상 같은 것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석수를 불러 명금(鳴金)
폭포이라 새기고는 신비의 극치인 이 곳 대자연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가노라고 기쁜 마음으로 취기에 흥얼거리며 하산을
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한 사람 한 사람 그 글자를 보고 읽어 내려 온 것이 오늘날 예사로 본 이름인 냥 부르고 있다. 또한 삼복더위 때 폭포 물을
맞으면 땀띠가 싹 가신다고 하고 견비통이나 요통이 있으면 물을 맞아 치유했으니 요사이 성행하는 물리요법의 극치이다, 그래서
30~40년 전에는 부녀자들의 물리치료장이 되어 남정네는 감히 범접을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겨우내 대혜골에서 흐르
던 물이 절벽에 얼어붙어 고드름이 되는데 초봄까지 병풍 같은 벼랑에는 옥색 수정 발을 친 듯 신비롭고 웅장한 천상 궁궐을 연상
케 하는 또 하나의 신비의 극치를 이룬다. 웅장한 신비의 대자연 속에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연과 일체되어 그저 조물주의 조화
에 감탄하게 된다.



욕담(浴潭)이다. 대혜폭포의 이슬 같은 물보라에 하늘에서 7색 무지개가 곱게 내려 욕담에 드리우나니, 욕담은 억만 겁의 세월에
대혜폭포물이 파고 깎아 만든 웅덩이를 일컬음이니, 벼랑 끝에서 40~50평은 됨직한 이 담은 웅덩이가 보다는 연못이라 함이
적절하리라. 그 옛날 아주 옛날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시중을 드는 옥녀인 선녀들은 하는 일들이 별로 없어 하늘나라에서
신비로운 대자연.. 즉 비경만을 찾아 나들이를 하는데 선녀가 즐겨 찾는 비경을 선경이라 하니..



이 곳 대혜폭포 주변이 바로 선경 선계라. 곱게 무지개가 서는 날이면 미풍에 천의자락을 나부끼면서 사뿐 사뿐 내려 바위 위에다
천의를 서름 서름 벗어두고 옥 같이 맑은 물속에서 목욕을 즐겼으니 상상만 하여도 황홀한 하늘나라를 연상케 한다. 세월이 흘러
사바세계에는 인간들이 늘고 차츰 대자연의 비경을 찾아 즐기는 풍속이 생겨 글하는 선비 네들이 산수경관 좋은 곳을 찾아다니
면서 시상에 취하기도 하고, 사회를 갖는 등 야외에서 모임을 자주 가졌다.



하늘나라 선녀는 인간의 채취가 욕담의 옥 같은 물에 배이자 그만 “머물 곳이 못된다.”하고는 이곳을 떠났다 한다. 이 고장 “거유
여헌 장현광”선생의 부지암정사에는 많은 문하생이 있어 봄, 여름, 가을로 연중 여러번 이 곳을 찾아 사회도 갖기도 하고 머리를
식힐 겸 연회를 벌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목욕을 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시상에 취했다 한다. 그 때 근처에서 움막집을 짓고
글공부 하던 김홍도 같은 여헌문하의 유생으로 같이 참여하여 즐기기도 하고 바위벼랑에다 “욕담”이라 예서체로 손수 써서
새기고 스스로 아호로 했다한다.



대혜폭포에서 할딱고개로 올라가는 프라스틱 태크계단길..할딱고개를 올라가디 뒤돌아 바라본 해운사와 케이블카 건물..



할딱고개 전망대..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선굴 전경..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바라본 들머리길과 구미시내 전경..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오산 전수지와 들머리길..



할딱고개 전망대에 있는 명품송 한 그루..



할딱고개를 지나면서부터는 대체로 완만한 등로사면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우리들의 산길을 풍요롭게 해 주는 둘국화 두 송이꽃..^^



소나무에 살포시 내려 앉은 눈송이가 마치 꽃송이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고도를 높이니까 지난밤에 내린 눈이 살짝 깔려 있다.



오형돌탑이 아직 한참 올려다 보인다.



석벽에 기대있는 거대한 바위 풍경.. 산위에서는 바람소리가 거칠게 들려 온다.



유순한 등로가 급경사 돌밭길로 변하였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올라야 하고, 인내심을 시험하는 구간이다.

금오산이 결코 호락호락한 구간이 아님을 보여주는 구간이다. 마지막 너덜구간에서 긴 숨을 몰아쉬기 하였다.



마애석불로 가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마애석불로 가는 길은 금오산 최고의 전망코스이다.



잠시 구미시가지를 바라보고..멀리 냉산이 살짝 보인다.



너덜길을 지나..



너덜길을 지나면 전망 좋은 오형돌탑(烏亨石塔) 농장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영하의 날씨와 만나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인듯하다.



금오산 곳곳에 있는 오형돌탑은 어느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애뜻한 사랑이 돌탑마다 한올한올 숨어 있다고 한다.

먼저 오형돌탑의 사연에 대하여 인터넷 어느 블로그을 통하여 알아 보았다.



김할아버지의 손주 형석군은 태어나면서 뇌병변 장애를 앓앗다. 말은 물론 걸을 수도 없는 손주를 위해 할아버지는 자식을 대신
하여 병간호를 시작하였고 형석이가 10살이 되던 어느날 갑자기 합병증인 폐혈증이 찾아와 형석군은 할아버지 곁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한줌의 재로 변한 손주를 안고 낙동강에서 손주를 보내야했다. 태여나면서 걷지도 말을 하지도 못한 손주가 바람과
강물을 타고 마음것 흘러 갈 수 있도록 말이다.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향한 마음이 너무 커 손주가 있을 낙동강이 잘 보이는
금오산에 올라와 하나 둘 돌을 올려 탑을 쌓았다.



돌탑이 완성될 때 마다 할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돌탑은 어느새 손주 형석이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형석이가 태어나 학교를 딱
하루 간 것이 항상 마음이 아팟다. 또 하나의 돌탑을 만들었다. 돌탑의 이름은 오형학당이다. 형석이가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하늘나라에서 오형학당으로 등교하여 할아버지가 만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것 같다.



한국인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의 우주선도 새워져 있다. 할아버지가 만든 우주선을 타고 형석이가 마음 것 하늘나라를
여행하고 금오산의 오형돌탑으로 와서 할아버지가 만든 오형학당에서 공무하며 마음껏 뛰어 놀 것 같으다.



할아버지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오형돌탑 밑에 거북이도 있다. 작은 돌을 하나하나 올려 거북이를 완성하는데
일찍 할아버지 곁을 떠난 손주가 다음생에서는 거북이 처럼 장수하는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이 하트에 다 모여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형석군의 얼굴이 할아버지가 만든 하트 속에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다. 그 바위 아래에는 수많은 형석군이 작은 돌이되어 밝게 웃는 모습으로 놓여 있다.



금오산은 악산으로 알려져 있다. 오르내림이 심해 산행을 자주하는 사람들도 힘들어 하는 산이다. 작은 돌이다보니
주위의 돌을 찾는것도 여간 힘들지 않을 것 같고 매주 2~3일씩 올라 돌탑을 쌓고 내려 가는 그 정성도 대단하다.



오형돌탑
큰돌 작은 돌 잘생긴 돌 못생긴 돌 차곡차곡 등에 업고 돌탑으로 태여나서
떨어질까 무너질까 잘 맞추고 받처주며 비바람을 이불삼아 산님들을 친구삼아
깨어지고 부서져서 모래알이 될 때까지 잘가라 띄워보낸 낙동강을 굽어보며
못다한 너를 위해 세월을 묻고싶다. 석아~!



어느 할아버지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오형돌탑농장을 지나며 나도 마음속으로 소망 하나 기원해 보았다.



오형돌탑공원 위쪽(중봉)에 있는 또 다른 오형돌탑..



오형돌탑공원에서 건너다본 칼다봉능선..



오형돌탑공원에서 마애보살입상으로 가는 길 몫에서 바라본 구미시가지와 낙동강, 그리고 냉산이 조망되고 있다.



금오산 정상으로 가는 길의 중봉(해발 800미터)지점에 이르러 동남쪽으로 꺾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600미터 정도
돌아가면 약사암(藥師庵)이 바라보이는 곳에 제법 넓직한 터가 있다. 이곳은 주위에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 '보봉사(普峰寺)가 보봉아래 있어 동쪽으로 수백리의 통망(通望)이 좋다'는 기록대로 보봉사의 옛 터가
분명한 것 같은데.. 그 뒷편 각을이룬 삼각 암벽에 남향으로 조각된 마애보살입상이 있다.



동체의 중심이 모서리에 오게하고 양쪽은 좌우벽에 높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은 깎아지른 듯한 화강암
자연암벽에 바위를 이용하여 조각한 특이한 구도로 광배(光背:불상의 등 뒤쪽에 光明을 나타내는 장식)와 좌대(座臺)를 갖추고
있으며,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삼면에 보석으로 꾸민관)이 있는 듯 하지만 마모되어 확실한 것은 찾을 수 없고 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한 인상인데다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윤곽은 매우 수려한 모습이며 목은 짧아 우리 나라 일반적인 석불의
모습과 같이 턱이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직립(直立)된 입상이면서도 바위의 생김새에 맞춰서 그런지 좌측으로 약간 기운 듯 하나 팔, 가슴, 하체는 예리하게 처리하지 않고
굴곡을 되도록이면 둔화한 듯 하고 특히 몸 전체에 비해 팔이 긴 편이며 외장(外掌)한 자세로 천의(天衣)의 자락을 잡은 듯하다.
왼쪽 어깨에서 내려진 천의는 묵직하면서도 선이 잘 표현되어 있고 광배(光背)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인데 머리 신광(身光)은
이중으로 되어 있고 신광(身光)은 보주형(寶珠形)을 이루고 있다. 대좌(臺座)는 입상을 중심으로 반월형으로 조성되었으며 측면
에는 11판의 복련단판연화문(伏蓮單辦蓮華紋)이 표현 되어 있으며 각판내에는 화문(花紋)이 장식되어 있다.



이 불상은 각부의 조각수법으로 미루어 조성연대는 10세기 이후로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며 몸매는 감산사 석조미륵

보살입상(국보 제81호)이나 팔공산 삼존석불의 협시보살상의 몸매와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또한 이와 같이 암벽의 모서리

합각면에 불상이 조각된 예는 아직 발견, 조사된바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은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90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마애보살입상이 있는 이곳은 바람한점없는 봄날이다. 연산홍 나무다지와 잎에 앉은 눈꽃송이..



마애보살입상에서 바라본 약사암(藥師庵) 종각..



줌으로 당겨본 약사함(藥師庵) 종각..



미애보살입상에서 약사암(藥師庵)으로 가는 오름길.. 이 오름길도 만만하지 않은 오름길이라 힘에 부친다.

마지막 인내심을 시험 당라고 약사암(藥師庵)에 도착하였다.



약사암(藥師庵) 옆에 있는 석벽..



약사암(藥師庵) 종각..



약사암(藥師庵)이다. 약사봉 바로 밑에 약사암이 있으나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기록이 없어 단정키 어려우나 대사의 득도로 인해
세워진 것이라 믿는다. 최인재 선생의 일선지 불우조에 의하면 “약사봉은 천애 낭떠러지에 아래 있으며 나무판자 다리를 놓아
들어갈 수 있으나 그 아래는 아득하기만 하여 가히 굽어 볼 수 없다”하였으니.. 



그 전부터 있었음이 확실하고 고종때 영남진지에 의하면 “금오산성내의 3리에 있으며 법당이 8칸이라”되어 있으나 현재는
법당이 2칸이며 그 때의 건물이 아니니 그후 여러번 중수되었음이 확실하다. 학계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사암(藥師庵) 앞에서 보이는 종각의 모습이다.

종각으로 갈 수 있는 날은 1년에 1회 개방을 하는데, 매년 1월 1일 하루만 개방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니기에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무엇 때문에 일년에 한번만 개방을 하는 걸까..?



약사암(藥師庵)에서 바라본 현월봉 자락에 있는 또 다른 오형돌탑 전경..



줌으로 당겨보니 가운데 거북이 돌탑도 보인다.



약사암(藥師庵) 뜨락에서 조망해 본 전경-1 좌측 냉산도 구름에 가려져 있다.



약사암(藥師庵) 뜨락에서 조망해 본 전경-2 구미공단 방향..



약사암(藥師庵) 뜨락에서 조망해 본 전경-3

대구방향의 유학산과 가산이, 그리고 황악산과 백운산이 구름속에서 살짝 조망되고 있다.



약사암(藥師庵) 뜨락에서 조망해 본 전경-4 칠곡, 왜관 방향..



약사암(藥師庵) 뜨락에서 파노라마로 담아본 구미전경..



약사암(藥師庵) 일주문에 해당하는 동국제1문(東國第一門)으로 가는 테크길..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 테크 중간에서 맛있는 간식타임을 하였다.



왼쪽은 현월봉이고 오른쪽은 약사봉이다.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에서 약사암(藥師庵)으로 내려가는 테크길..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을 나서니 약사봉 위에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바람서리꽃(상고대)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줌으로 당겨본 약사봉의 바람서리꽃..



산행을 출발할 때 들머리의 기온이 영상 3~5도 정도라 바람서리꽃(상고대)이 필 것이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못하였는데.. 



산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짖은 안개구름과 거친 칼바람이 불어 약사봉 정상과 현월봉 정상 부근만 바람서리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이런 바람서리꽃이 활짝 피어나는 풍경을 산에서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행운이다. 찰나의 순간에만 만날수 있는 바람서리꽃

(상고대)의 아름다움을 오래토록 간직하기 위하여 열심히 인증샷을 하였다.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바람서리꽃의 황홀한

설레임을 가슴 가득안고 현월봉으로 갔다. 겨울산 최고의 황홀한 아름다움인 바람서리꽃(상고대)이 피어 있는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懸月峰)에 도착하였다.



예전에 있던 현월봉(懸月峰) 정상석이다. 본 표주석은 금오산 정상 반환전인 2014년 9월 이전까지 있었던 옛 정상석으로, 실제

정상은 해발 10m 위에 위치하고 있었고, 또 새로운 정상석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지금은 현월봉에 정상석이 두 개이다.



성안과 칼다봉능선은 순식간에 짖은 안개구름에 점령당하고 있다. 초속 10m 이상의 거친 바람과 영하 7도 이하의 기온과

물끼를 가득 머금은 안개 구름이 만나서 합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겨울산의 찰나의 바람서리꽃(상고대)을 열심히 인증샷하였다.



몇 해 전 오대산 산행길에서 만난 바람서리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오늘 산행으로는 대만족이다.

엄청난 칼바람과 맹추위가 인정사정없이 휘몰아치지만, 바람서리꽃(상고대) 하나만으로 모두 견딜만하다.

인생이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만 있어도 살아 갈 힘과 용기을 얻듯이..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삶의 방법을 산에서 배우고 있다.



예전 정상석보다 10m 위에 있는 새로만든 또 하나의 실제 정상석이다. 현월봉(懸月峰)이란 이름은 달이 걸려있는 봉으로서

선인들의 낭만적인 시상이 떠오르는 이름으로 초저녁에 툇마루에 걸터 앉아 초생달이 걸려있는 모습을 보고 불인 이름인것 같다



현월봉(懸月峰)에서 바라본 약사봉 너머 구미시가지와 냉산방향..



현월봉(懸月峰) 정상에서 바라본 구미공단과 낙동강 물줄기..



현월봉(懸月峰) 정상에서 바라본 구미공단과 유학산과 가산 방향..조금전까지 유학산과 가산이 조망되었는데..



현월봉(懸月峰) 정상에서 바라본 칠곡,왜관, 그리고 비슬산 방향..



파노라마로 담아본 구미전경..



대구 팔공산과 비슬산을 담아 보려고 했는데..구름에 가려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현월봉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거친 바람이

불었는데..갑짜기 바람이 사라져 포근함마져 느끼는 날씨가 되어 망중한의 시간을 보냈다.



현월봉(懸月峰)에서 내려다본 약사암 전경..



구미시내 전경..



구미공단 전경..



현월봉(懸月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또 하나의 오형돌탑공원..



오형돌탑공원을 줌으로 당겨 보았다. 다시 거친 칼바람과 안개구름이 적군처럼 밀려 온다.



현월봉(懸月峰) 정상 부근에 핀 바람서리꽃(상고대)-1



현월봉(懸月峰) 정상 부근에 핀 바람서리꽃(상고대)-2



현월봉(懸月峰) 정상 부근에 핀 바람서리꽃(상고대)-3



현월봉(懸月峰) 정상에서 망중한 시간을 끝내고 하산을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안개구름에 점령 당한 약사봉과 동국제일문 전경..



성안과 폭포로 갈라지는 삼거리..



허물어진 금오산성 성벽을 지나고..



폭포로 가는 정규 등산로길..



폭포로 내려가는 협곡에서 바라본 구미시내 전경..



이곳에서 부터는 올라왔던 코스로 하산을 하였다.



모처럼 경부선 기차를 타고 구미에 있는 금오산을 편안하게 더불어님들과 함께 다녀왔다. 금오산은 생각보다 조금은 까탈스러운 산이지만 볼거리와 느낌이 많은 산이다. 특히 오형돌탑의 사연을 알고나면 왠지 가슴이 저려온다. 그리고 금오산 산신령님이

특별히 선물해 준 바람서리꽃(상고대)으로 오늘도 행복한 하루 산행이였다.


2018/12/10 -휘뚜루 -

Girl From Key Biscayne

Jean Philippe Audin & Diego Mod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