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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산행기

[심설산행]이 겨울 동해바다 여행으로..(2010/02/06)

by 휘뚜루50 2019. 9. 6.

[심설산행]이 겨울 동해바다 여행으로..^^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가끔씩 벌어지기 마련인가보다. 오늘은 먼산으로 간 것인데..
결과론적으로는 [겨울 동해바다 여행]이 되고 말았으니.. 이렇듯 횡재(?)에 가까운 예상치못한
일들이 가끔은 아니라 자주.. 그것도 아주 자주 나에게 일어 났으면 좋겠다..^(^ 큼큼~
 

 
오늘은(2/6) 남한의 [백두대간]의 시발점이요 종점에 해당하는 [향로봉]을 산행하기 위하여
이른 새벽(6시) 서울을 출발하여 경춘고속도로 가평휴계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였다.
 
[향로봉]은 민통선 깊숙한 곳에 있어서 사전에 그곳 부대장의 승인을 받고 군인들의 안내하에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라, 함께 하시는 S님 자제분이 군고위장교로 있어서 사전에 허락을 받아 주어서
오늘 산행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산행이라 모두들 들뜬 기분이였다.
 

 
언제 어느때 아무나 갈 수 없는 산이기에.. 그리고 남한에서 가장 깊숙한 휴전선속에 있는 눈덥힌 겨울의
먼산이기에.. 오랫만에 [심설산행]을 제대로 맛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인지 [향로봉]이 가까워지자
모두 수십년 산행을 하신 님들이지만 가벼운 흥분을 느끼는 것 같았다.
 

 
용대리 삼거리에서 진부령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자 좌측 암벽에 인공으로 설치한 빙벽에는
빙벽 크라이머들의 활기차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였다. 나도 한때 빙벽에 매료되어
겨울철이면 몇 년을 전국의 빙벽을 찾아 헤메이던 시절이 있었지..^(^ 큼큼~
 

 
군부대와 약속한 시간에 진부령에 도착하였다.
진부령(陳富-嶺)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 사이의 백두대간을 넘는 험준한 고개로
해발 높이는 520m이다. 그리고 칠절봉(七節峰:1,172m)과 마산(馬山:1,052m) 사이의
안부(鞍部)에 있으며, 오래전부터 관동지방과 영서지방의 중요한 교통로가 되고 있다.
 
남쪽의 대관령, 북쪽의 추가령과 함께 3대 영(嶺)으로 불리며 고개길이는 약 60㎞이다.
이곳에 나 있는 도로는 1981년 국도로 승격되고,1984년 10월에 2차선으로 확장 및 포장공사가
완료되었다. 고갯길 구비구비에서 바라다보이는 동해의 모습이 장관이며, 봄 여름에는 안개가
감돌아 봉우리를 덮게 되면 대자연의 장엄한 모습이 연출되고, 가을철은 단풍이 아름답고
겨울에는 적설량이 매우 많아서 또 다른 설국을 감상하기 매우 좋은 곳이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용인즉.. 오늘 아침에 이곳 부대에 긴급상황이
발령되어 오늘은 산행안내를 할 수 없다고하는 통보였다. 하여 우리들은 [꿩 대신 닭]으로
홀리마을에서 마산(馬山:1,052m)을 산행할 수 있는 알프스 스키장으로 향하였다. 현재 알프스
스키장은 몇년전부터 경영문제로 운영되지 않아 흘리마을 전체가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썰렁하였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시작하여 지리산 천황봉까지의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하고,
그 산줄기가 휴전선 때문에 남한에서는 이곳 [진부령]에서 시작하는 기념비이다.
그런데 함께 한 세사람은 [향로봉] 산행이 취소된 것이 못내 서운한가 보다.
 
그도 그럴것이 나야 이십년전 처음으로 [백두대간]을 개척하느라 작고하신 이우영씨와
김장호씨하고 [향로봉]을 서너번 다녀왔지만, 오늘 함께 한 세 사람들은 모두 처음이라
그 실망감(?)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같은 산꾼으로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여.. [꿩 대신 닭]으로 마산(馬山:1,052m) 산행의 들머리인 흘리마을로 가니
뜻밖에도 군인들이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역시 [긴급상황 발령]으로 오늘은 입산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도 했는데.. 그럼 [닭 대신..?]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산신령님이 두번씩이나 입산을 거부하는데 계속 억지를 부리면 아니 될 것
같고, 지척이 동해바다인데 모른척 그냥가면 분명 용왕님이 꼬장을 부릴 것 같으니
[겨울 동해바다 여행]이나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만장일치의 박수소리와 함께 우리들은 동해바다로 향하였다.
우선 진부령 고개를 넘어 건봉사에 들리기로 했다. 이곳 역시 민통선 깊숙히 있는 관계로
이십여년전까지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던 사찰이다. 그래서인지 사찰로 가는
길은 군시설물들이 간혹 눈에 띌 뿐 허잡스러운 모습들은 보이지 않았다.
 

 
산사(山寺)의 사찰답게 건봉사는 고즈넋하였다.
봉사(乾鳳寺)는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건봉산 감로봉의 동남쪽 자락에 있어 흔히 [금강산 건봉사]라 부른다.
이 지역은 휴전선 인근이라 대한민국 영역 중 최북단 지역에 위치한 셈이다.

신라 법흥왕 7년인 520년에 [아도]가 절을 짓고 원각사(圓覺寺)라 부른 것이 시초라고
전해지나, 이 지역은 당시 고구려의 영토였기 때문에 삼국 시대에 건립된
대부분의 사찰에 얽힌 창건 설화처럼 전설로 생각되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중건되고 불교 행사가 열린 기록이 있으며, 고려 초기에 고려 태조의 스승인
도선이 왕명으로 중수하고 원각사를 중수하고 절의 서쪽에 봉황 모양의 돌이 있다하여 서봉사
(西鳳寺)라 불렀다. 고려 말기 공민왕 때인 1358년에 [나옹]이 중창하고 건봉사로 개칭하였다.

조선 세조 때는 [원당]으로 지정되고 세조가 직접 행차하여 어실각을 건립하도록 한 뒤, 조선시대
내내 왕실의 원당으로 계속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는 본래 통도사에 있다가 임진왜란 중 강탈당한 바 있었다.
이를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려받아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한국 4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큰 절이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북부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31본산의 하나로 신흥사와 백담사, 낙산사 등을 관할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전소되면서 조계종에서는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당시 폭격으로 수백 칸에 이르던 전각이 모두 타버려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현대에 새로 지은 건물만 단촐하게 서 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포함된
위치 때문에 한국 전쟁 이후 오랫동안 민간인은 석가탄신일 하루만 특별히 드나들 수 있었다.
1989년에야 전면 출입이 허용되었다.

건봉사는 통일신라 때 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외워 극락에 오른다는 [만일염불회]를
개최한 이래 염불승을 많이 배출하였고, 한국의 대표적인 [염불도량]으로서 전통을 이어왔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머문 곳이라 호국불교의 본산으로도 불린다.
 

 
불이문(不二門)은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건봉사 절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불이문은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이다. 건봉사터에 남아 있는 불이문은 1920년에 세운 것이다.

불이문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얹었다. 각각의 기둥에는 금강저 문양을 새겨 놓았으며 앞면 처마 밑에는 [불이문(不二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은 조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이었던 해강 김규진이
쓴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불이문이란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고..
착함과 착함이 아닌 것이 둘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해탈의 불국정토를
상징하는 것이렸다. 어디 헛되고 헛된것들로 점철되어 있는 나의 육신과 영혼을
위하여 나는 불이문(不二門)을 엄숙히 통과하였다. (큼큼~ 결과는 나중에..^(^)
 

 
 
▒ 사랑하는 까닭은 / 만해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건봉사의 인물중 만해 한용운님은 출가 초기에 2년간 건봉사 강원에서 수학하면서
사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던 곳으로 호국불교의 위상을 재평가한곳이다.
 

 
원래 건봉사에는 대사찰답게 2백개가 넘는 부도와 탑비가 흩어져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많이 분실되어 지금의 자리로 모았다고 한다. 현재 약 50여의 부도와 탑비가 있다.
 

 
임진왜란때 건봉사에서 승병을 일으켜 호국불교의 총본산으로 이끈 사명대사(유정) 동상
 

 
약 한 시간 정도 수박 겉할기식으로 건봉사 관람을 마무리하고 인접해있는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향하였다. 화진포(花津浦)는 동해안 최대의 호수로 둘레가 약 16㎞나 되며, 백사장은 북한의
명사십리(明沙十里)에 버금가는 경치를 이루고 있는 곳이라 한다.

수천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서 이룩된 이 호수는 잉어 등 민물고기와 도미·전어와 같은
바닷물고기가 많아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는데.. 지금은 더 넓은 호수가 꽁꽁 결빙되어 있다.
넓은 백사장과 아름다운 소나무로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또한 호수 주위에 피어 있는 해당화는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어 고성군의 꽃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지금은 해당화의 찌그러진 빨간 열매가 그런대로의 모습으로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곤 한다.
 

 
호수와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주차장에 6,000원(주차료 2,000원 일인당 입장료 1,000원)을 지불하고
[화진포의 성(城)]으로 가기 위하여 작은 모래 언덕위로 올라가자 에메랄드 초록빛의 일망무제의
푸른 동해바다가 확~ 펼처져 있었다.
 

 
어느 것이 하늘빛이고 어느 것이 물빛인지 구분할 수 없는 해변에서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이를
[우는 모래, 명사(鳴沙)]라 했고, 여기서 명사십리(明沙十里)란 말이 나왔다는 그 백사장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분명 모래가 울고 있었다. 파도에 의해서..^^ 하지만 진짜 감동적인 것은 물빛이다.
짙은 에메랄드빛, 물에 푼 잉크빛 등이 어우러진 모습은 이곳이 우리나라인가 싶을 만큼 빼어나다.
 

 
화진포 해수욕장 남쪽에 위치한 [화진포의 성(城)]에서 바라보는 화진포의 전경은 가히 명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바다 한가운데 작은 섬 [금구도(金龜島)]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거북이 모양으로 광개
토대왕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데.. 아직 정확한 고증이 덜 된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 별장을 차례대로 관람하고 인근에 있는 등대가 예쁜 거진항으로 갔다.
 

 
겨울속에 봄날씨같은 따사로움이 내리쬐는 거진항에는 파시라서 인지
사람들의 그림자도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한가로운 풍경이였다.
 

 
이곳저곳을 끼웃거리다 따사로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명태와 가자미를 만났다.
이것들조차 만나지 못하고 그냥 거진항을 떠났더라면 내 기억속에 거진항은 참 쓸쓸하였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딱 한 곳에서 난전으로 명태(코다리)와 가자미를 한 아주머니가 팔고 있었다. 나는 원래의
내 스타일대로 흥정없이 명태와 코다리를 샀다. 아주머니는 내가 멋스럽다며 덤으로 몇마리씩 보태여
포장해 주었다. 아~ 아직도 우리네 바다 사람들은 이런 인심을 배풀고 있었다.
 

 
거진항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헤여지고 우리들은 곧 바로 송지호로 갔다.
겨울 철새(고니) 도래지로 유명한 송지호는 완벽하게 결빙되어 있어서인지..
아니면 철새들이 머무는 시기가 아니여서인지 철새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송지호(松池湖)는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의 오호리·인정리·오봉리에 걸쳐 있는 석호로 호수둘레 6.5㎞
이며,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약 1,500년 전에는 송지호 자리가 어느 구두쇠 영감의 문전옥답
(門前沃畓)이었는데, 어느날 노승이 시주를 청했으나 응하지 않자 화가 난 노승이 토지 중앙부에 쇠로
된 절구를 던지고 사라졌으며, 이 절구에서 물이 솟아 송지호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송지호눈 맑은 호수와 주위의 울창한 해송림이 어울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중 끊이지
않으며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 도미·전어 같은 바닷물고기와 잉어 같은 민물고기가 함께 서식하며
백조(천연기념물 제201호)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송지호 맞은편 일대는 송지호해수욕장인데.. 고운 백사장이 죽왕면 공현진리에서 오호리,
송암리까지 약 4㎞에 걸쳐 있으며 해수욕장 바로 앞바다에 죽도가 있어 죽도해수욕장
이라고도 하고 죽도에는 성터가 있고, 울창한 대[竹]숲으로 유명하다.

송지호해수욕장은 속초에서 북쪽으로 13㎞ 정도 떨어져 있으며, 속초, 고성을 잇는 국도가
해안선을 따라 나 있어 여름철에는 동해안에서 인기 해수욕장중의 한 곳이라 한다.
 
끝없이 펼쳐저 있는 넓은 백사장과 에메랄드 쪽빛 바다 물빛은 지친 도시의 영혼들을 해독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도시의 사람들은 가끔씩 동해바다를 무조건 찾는가 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년전에 개통한 미시령 터널을 이용하여 지나다 보니 설악산 울산바위 부근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기에 잠시 주차를 하고 몇장의 기념사진도 찍었다. 오른쪽은
신선봉이고 좌측은 황철봉으로 가는 백두대간 능선이다.
 

 
미시령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선바위가 무사히 귀가하라고 손짖하고 있었다. 그래서 멀지 않은 날
설악산 산행을 위하여 다시 한번 오겠다고 선바위와 무언의 약속을 하며 미시령을 지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경춘고속도로 위에서 행복했던 하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에메랄드 쪽빛 푸른 동해바다의 물결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
큼큼~
 
 

 
2010/02/06 - 휘뚜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