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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산행기

몸과 마음을 치유(治癒)해 주는 장성 축령산(鷲嶺山) 산행.

by 휘뚜루50 2019. 7. 18.



▒ 몸과 마음을 치유(治癒)해 주는 장성 축령산(鷲嶺山) 산행.

       - 2018/12/29 -


어린시절 매일매일 꿈을 꿨어요.
산 넘고 강 건너 먼 도시를 찾아가는 꿈을 꿨어요.
그때는 이 산그리메가 이토록 아름다운 그리움인줄 몰랐지요.



세월이 흘러 강산이 서너번 바뀐뒤 찾아 간 내 어린 유년시절의 꿈들이 산그리메와 함께 애절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네요.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들이지만 내에게는 소중했던 시간들이였어요.



Dream on / 개미(Whisper 귓속말) OST



장성 축령산(鷲嶺山 621.6m)은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노령지맥 위에 솟아 있는 산으로 문수산

(文殊山)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울창한 편백나무숲으로 유명하며, 옛 이름은 취령산(鷲嶺山)이라고 불렀다.



축령산은 영산기맥 산줄기로 영산강을 가르며 전북 고창과 전남 장성의 경계를 이루면서 입암산(654.3m), 방장산(743m)을
거쳐 이곳 축령산(문수산)을 지나간다. 영산기맥은 목포의 유달산 앞바다까지 도상거리 약 157km의 산줄기이다.




축령산 일대에는 삼나무, 편백, 낙엽송, 테다, 리기다소나무 등 수령 5~50년생의 숲이 1천정보 가량 널찍하게 바다를 이룬다.
주변엔 천연림인 상수리, 졸참나무, 떡갈나무 등이 둘러싸고 있어 더욱 툭 뛰어난다. 인공수림 사이로 산의 7부 능선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임도로 들어서면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삼림욕을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속설에는 신라 자장율사가 당(唐)의 청량산(淸凉山)에서 기도하여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깨닫고 귀국한 후, 이곳에서 돌로 된
문수보살을 찾게 되어 문수사를 창건하였고, 그 뒤부터 청량산 또는 문수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수라는 명칭이 '조선지형도'(고창)에서 ‘문수산’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근대 접어들어 새롭게 등장한 지명

으로 생각되며, 백제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문수사(文殊寺)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축령산은 ‘한국의 조림왕’이라고 불리는 독림가였던 춘원 임종국(1915~1987)선생이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무입목지에
1956년부터 21여년간 조림하고 가꾸어 전국 최대조림 성공지로 손꼽히고 있다. 축령산 남서쪽 산록에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조성면적은 약 2.9㎢에 이른다. 이 숲은 산림청과 유한킴벌리(주),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2000년)의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숲’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숲을 가로지르며 조성된 약 6km의 길은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산림청은 2002년 그 숲을 사들인 후 ‘고 임종국 조림지’로 이름을 붙였고, 삼림욕의 최적지로 홍보되면서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국내외 관광객이 찾아온다.


오늘은 더불어님들 중에 한 분의 고향인 장성에 있는 축령산에서 백비마을까지 다녀 오기고 하고 용산역에서 모두 만나서 06시

27분에 출발하는 광주행 기차를 타고 4시간 10분만에 장성역에 도착하였다. 곧 바로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추암리 백련

마을까지 갔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보니 영산기맥 산줄기들은 어제 내린 눈으로 하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우리들이 축령산에서 백비마을까지 산행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근심어린 걱정을 하였다. 더군다나 어제내린

눈으로 산행에 지장을 줄것이며 축령산에서 백비마을까지는 공식등산로가 아니므로 길찾기도 수월하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등로라 장애물이 많아서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라는 등등..진심으로 애정어린 충고를 해 주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청명한 날이면 초행이지만 길 찾기는 염려할 필요가 없겠다. 오직 백비(호사)마을의 산줄기를 모두 처음 걸어

본다는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택시는 제설작업이 완료되어 있는 추암골 마지막 마을인 백년(큰골)마을에서 내렸다.



기상청 예보로는 오늘 이곳에 적령량 1~4mm의 눈을 예보하였데..완전 예보가 빗나가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맑고 투명한 세룰리안 블루 하늘빛이 눈부시게 펼처지고 있었다. 빗나가는 예보가 횡재를 하는 날이다.



지방도로가 끝나고 장성편백치유의 숲이 시작하는 추암리쪽 임도길이다.



큼직한 바위가 있는 간이쉼터..



눈꽃이다. 이름하여 설화(雪花)가 만발해 있다. 어제 내린 함박눈이 만들어 낸 겨울산의 아름다움이다.

그것도 맑고 투명한 세룰리안 블루 하늘빛과 마주한 눈꽃(설화)은 우리들을 어린시절의 몽환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아마도 이 길 끝자락 어디쯤에서는 우리들의 어린시절의 몽환의 세계와 만날수 있을 것 같았다.



춘원 임종국선생의 조림 공적비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조림공적비가 있는 광장쉼터..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있는 치유의 숲길은 바로가는 임도길이고 축령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좌측 오름길이다.



영하 2~3도의 청량함이 가득한 산길은 산행하기 더 없이 좋은 날씨이다.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번갈아 식재되어 있는 숲은 오늘따라 더 향기로운 것 같다.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구분하는 방법..편백나무의 잎은 납작하면서 손바닥처럼 곱게 되어 있으며 멀리서 보면 나무전체의 모형이

정원추형이다. 삼나무는 잎이 짧고 억세며 잎이 약간 모여있어 사람손이 닿으면 약간 찌르는 현상이 있다. 이 나무 또한 편백나무

처럼 겨울에도 낙엽이 지지않는 상록침엽수이다. 전체의 나무 모형은 원추형은 맞으나 나무 꼭대기가 약간 뭉퉁한 느낌을 준다.



편백과 삼나무가 끝나는 언덕에는 토종 참나무군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다시 편백나무 지대이다. 올 곧게 자란 편백나무 군락지는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휠링이다.



머리위에 잔득 이고있는 눈들이 스처지나가는 바람에도 눈꽃가루를 뿌려주고 있다.



찰나의 순간들이 만들어 주는 축복받은 산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올라갔다.



능선길에 올라서자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추위가 기다리고 있다.



편백나무와 삼나무 조림지역이 끝나니 다시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토종 참나무 군락지이다.



나무가지에 매달려있는 눈꽃송이들..마치 목화솜뭉치들이 매달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축령산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



이토록 맑고 투명한 세룰리안 블루의 겨울 풍경은 또 얼마만이던가..^^



축령산을 처음 찾았지만 축령산 산신령님은 우리들을 배척하지 않으시고 눈부시게 축복해 주고 있다.



행여 산행길이 지루할까 가끔씩 조망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축령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눈꽃송이들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주말이라 가벼운 차림의 지역 사람들이 눈꽃을 보러 온 것 같았다.



축령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눈꽃(雪花)-1



축령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눈꽃(雪花)-2



축령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눈꽃(雪花)-3



축령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눈꽃(雪花)-4



축령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눈꽃(雪花)-5





축령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눈꽃(雪花)-6



축령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눈꽃(雪花)-7



축령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눈꽃(雪花)-8




축령산(鷲嶺山 621.6m) 정상이다. 정상주변은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체감온도가 영하 5도 이하인듯하다.

하여 방한복을 다시 꺼내서 입었다.



축령산 정상에서 처음으로 인증샷을 남겼다.



이제 여기 축령산 정상에서부터 백비마을까지 가야한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무난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멀리 백비마을 뒷산인 망월산(호산, 깃대봉)이 조망되고 있다.



축령산 정상에 있는 팔각정자..



팔각정자에서 바라본 방장산과 입암산 갓바위봉 전경..벽오봉은 방문산이라고 하기도 함..



영산기맥의 내장산과 백암산, 그리고 추월산이 어림짐작으로 조망되고 있다.



병풍산과 불태산 방향..



광주의 주산인 무등산이 육안으로는 분명 구분되었는데..



추암천 뒤로 장성시내가 구분되고 있다.



파노라마로-1



파노라마로-2



줌으로 당겨본 광주의 무등산 전경..



팔각정자에서 인증샷..



줌으로 당겨본 영산기맥의 벽오봉, 방장산, 쓰리봉, 장성갈재 전경..저 산들을 금명간 한번 걸어보고 싶다.



산 아래 축령편백나무 조림지 전경..



축령산 정상은 제법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기온이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만 하고 바로 하산을 한다.

우리들도 약간의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시장끼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산기맥 구황산 방향으로 내려갔다.



바람 한 점없이 따사로운 양지바른 바위밑에서 더불어님들이 정성껏 준비해온 먹거리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조금 이동하니 전망좋은 테라스가 있었다.



산 아래 골짜기는 추암저수지가 있는 추암리이다. 오른쪽으로는 백비마을의 뒷산인 망월산이 조망되고 있다.



아침에 택시를 내린 백년(큰말)마을이 바로 발아래에 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550m 무명봉으로 영산기맥은 오른쪽으로 꺽어져 가고 백비마을은 왼편으로 가면 된다.



안부지대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



잠시 뒤돌아 바라본 축령산 전경..



아무도 가지 않은 영산기맥 북사면은 눈들이 발목이상 빠진다.



550m 무명봉 정상..여기까지 영산기맥이고..우리들은 왼편 백비 방향으로 산행을 하였다.



550m무명봉에서 바라본 고창군 방향..



남사면은 기온 상승으로 습기를 잔득먹은 눈들이 아이젠을 한 발바닥에 인정사정이 달라붙어 보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백비방향으로 가다 잠시 뒤돌아본 전경..



임도가 있는 망월재에 도착하였다. 이쪽으로 가면 고창방향이고..



저쪽으로 가면 추암리로 가는 임도길이다. 그리고 망월재에는 무인 산림기상관측 시설물과 산불감시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었다.



망월재에서 임도를 건너 직진하면 백비방향으로 가는 길인데..등로길은 없고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였다.



산허리를 돌아가다 바라본 우리들이 가여할 산줄기이다.



추암저수지로 내려가는 골짜기..길은 중간에서 끝나고 본격적으로 길 없는 산행이 시작되었다.



길 없는 산행중에 만난 금년에 자란 영지버섯..잡목과 산초가시나무들로 뒤엉켜있는 지대를 힘겹게 벗어났다.



대체로 등로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어 길을 따라 걸으면 되었다.

지도상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은 작은 구릉들을 여러번 오르내리며 걸었다.



마침 조망이 열리는 곳에서 뒤돌아 바라본 지나온 산능성이들..



추암저수지 방향..예상했던 산행시간보다 시간이 많이 지연되고 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없이 계속진행을 하니 피로가 몰려 오고 있다. 습설이 아이젠을 한 신발밑창에 달라 붙지만 않는다면 여유있는 산행이 되겠는데..습설에 완전히 발목이 잡혀 진행속도가 거북이 걸음이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사면이 숲에 가려지고 등로의 길이 사라져 약 10여분간 알바를 해야 하였다.

산 아래쪽으로 내려 올수록 산길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없다. 그래서 오로지 육감으로 알아서 가야하는 코스가 되었다.



드디어 백비의 뒷산인 망월산에 도착하였다. 새마포산악회가 망월산 높이를 잘 못 알고 있는 듯 하였다. 그리고 여러 자료에

보면 이 산의 이름이 호산(狐山) 또는 깃대봉이라 하였는데..어찌하여 다음지도에서 망월산이라 표기하였는지 모르겠다.



망월산에서 백비(호사)마을 골짜기는 산정골이라고 한다. 호사마을의 옛 이름은 ‘여절(狐寺)’이다.

여절은 뒷산이 여우형국이고 마을 북쪽 산정골에 절이 있어서 ‘여절(狐寺)’라 불렀다 한다.



예전에는 숲으로 가득했던 골짜기가 좌, 우로 벌목이 되어 휑하니 을씬년스럽다고 한다.

산천(山川)이 의구(依舊)하지 않고 많이 변해 버렸다. 급경사 잡목지대를 겨우 벗어나 도로에 도착하였다.



산정골 골짜기에는 예전에 없던 움막같은 새로운 집들이 두 가구 있었다.



더불어님이 살던 옛 집이다. 돌아 갈 기차 시간이 촉박하여 오늘도 지척에 있는 더불어님의 어머니 산소는 찾아 뵙지 못하고

떠나와야 했다. 다음에 올 때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어머니 산소를 찾아 뵙기로 하고 아침에 타고온 택시를 콜하였다.

더불어님이 살 때와는 많이 변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옛 모습으로 남아 있는 옛 집이 더 없이 반갑다고 하였다.



호사(백비)마을의 느티나무는 옛 모습은 그대로라고 한다.


▒ 호사(狐寺)마을의 유래
호사(狐寺)마을 유래는 뒷산이 여우형국이고 산정골에 여절(狐寺)이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밀양박씨가 4대째 살고 있으며

100여년전 울산김씨, 일제때 연안차씨, 창녕조씨, 광산김씨, 문화유씨, 경주최씨가 들어와 해방 후 25호 150여명이 살다가

6·25때 25명이 죽고 가옥이 전소되었다. 그후 20여호가 다시 들어왔는데 현재는 밀양박씨 5, 광산김씨 3, 울산김씨 3,

창녕조씨, 옥천조씨, 공, 차, 오, 이, 정씨 등 모두 17호 34명이 살고 있다. 마을유물유적으로는 박수량의 묘와 재실이

있으며 특히 묘비는 백비로 널리 알려졌다.


▒ 호사(狐寺)마을 주변의 재미있는 지명들
▶ 호 산(狐山) : 마을 뒷산. 여우형국이기 때문에 (狐山)이라 했다.
▶ 깃 대 봉 : 호산 봉우리. 일제 때 깃대를 꽂아 측량을 했었다.
▶ 판 사 등 : 깃대봉 밑 박수량의 묘가 있는 곳.
▶ 북록고개 : 깃대봉 밑 빌양박씨 재실옆에 있는 고개. 넘으면 서삼면 추암리이다.
▶ 남 록 : 마을 동남쪽에 있는 산. 호산의 지맥으로 넘으면 아곡리 거르매이다.
▶ 몰총머리 : 마을 서남쪽에 있는 산. 말의 머리에 해당된다.
▶ 좌 구 : 마을 남쪽에 있는 산. 개가 앉아있는 형국이라 한다.
▶ 노 적 봉 : 좌구 동쪽에 있는 산. 노적처럼 생겼다.
▶ 산 정 골 :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모개나무골 : 산정골 옆에 있는 골짜기. 모과나무가 있었던 것 같다.
▶ 달 바 우 : 산정골 절터 옆에 있는 바위. 보름달처럼 생겼다.
▶ 천락시암 : 산정골 절터에 있는 석간수.
▶ 대 착 글 : 마을 앞에 있는 논.
▶ 홈 논 : 송강골 밑에 있는 논.
▶ 가 는 골 : 마을 동쪽에 있는 논.
▶ 홈 논 보 : 홈논 옆에 있었던 보.
▶ 방아실보 : 마을 앞에 있었던 보.


☞ 자료출처 / 장성군민일보에서..



백비마을에서 콜한 택시를 타고 장성역에 내리니 약 20여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17시58분에 출발하는 용산행 누리호를 타고 어둠속에 장성을 떠났다.

함께 동행해 주신 더불어님들 오늘도 수고하였습니다..^^


2018/12/31 - 휘뚜루 -


↑ 축령산(문수산)에서 백비(호사)마을까지


↑ 백비(호사)마을과 홍길동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