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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산행기

화성 매향리(梅香里)에 있는 구비섬(거북섬)과 응도(새섬), 농섬(룡도)을 다녀오다.

by 휘뚜루50 2021. 12. 27.

Hurt(상처) / 나윤선(클릭하여 듣기)

▒ 화성 매향리(梅香里)에 있는 구비섬(거북섬)과 응도(새섬), 농섬(룡도)을 다녀오다.

    2021/12/20 - 월요일 -


54년, 무려 반세기 이상의 세월을 견딘 후에야 다시 조용하고도 소소한 일상을 되찾은 사람들이 있다. 

인심 좋고 매화 향기 가득했던 곳.. 싱싱한 굴이 많이 채취되던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마을, 
바로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위치한 매향리이다.

 

매향리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5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미 공군 
폭격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옛 마을 이름인 ‘고온리’가 미군에 의해 ‘쿠니(KOON-NI)’ 사격장
으로 불리며 매일 100 데시벨 이상의 사격 소음을 54년 동안 겪어야 했다.

 

미 공군은 매향리 앞바다에 있는 농섬을 태평양 미 공군 사령부 산하의 미군 전용 폭격장으로 사용

하였다. 이 때문에 짙은 녹음이 우거져 있던 농섬은 매일 쏟아지는 폭탄으로 인해 3분의 1 가량을 

잃은 채 민둥섬처럼 변했으며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었던 매향리 갯벌은 포탄의 잔해들로 

오염되어갔다.

 

매향리 사람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던 폭격소리 때문에 불면증과 우울증, 그리고 죽음의 
공포와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오폭으로 인해 주택이 파괴되는가 하면 만삭의 여인이 
굴을 채취하다가 사망하고 불발탄을 갖고 놀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죽기도 하는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휴전이 논의될 때에도 계속해서 폭탄이 떨어졌고 휴전된 후에도 매향리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오염된 갯벌, 처리되지 못한 폭탄의 잔해, 매향리 주민들의 정서적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국내 
평균 자살률의 7배가 넘는 자살률을 보이기도 했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2005년 8월12일 매향리 사격장이 완전히 폐쇄될 때까지 매향리 주민들은 
폭격의 굉음과 오폭의 두려움 속에서 고통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매향리 주민들이 평범한 
일상을 되찾게 된 건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16년 전에 끝난 일로, 과거의 아픔
이라고 묻어버리기엔 아직도 치유해야 할 상처가 너무도 크다.

 

서울에서 화성 매향리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대략 2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 방법은 사당역 9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8155번 조암행 광역버스로 조암까지 가서 조암터미널에서 2번이나 2-1번,

2-3번 군내버스로 갈아타기하고 고온리(매향리) 종점까지 가는 방법이 있고..두번째 방법은 1호선

지하철과 국철로 병점역에 내려 경기대로길로 가서 동부출장소 또는 병점초등학교 정유소에서

H105번 군내버스로 갈아타기하면 약 1시간 30분 후에 고온리(매향리) 종점에 도착한다.

 

매향리 종점..나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병점에서 H105번 군내소형버스를 이용하였는데..배차간격이

무려 한시간에 한대꼴이라 병점역에서 50분 정도 헛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병점역 사거리에서

H105번 버스는 회차역이라 건너편 동부출장소 또는 병점초등학교 버스승차장에서 승차해야 하였다.

 

그리고 버스 종점 이름은 매향리의 옛 이름인 고온리 종점이다. 고온리 버스 종점에서

바다쪽으로 가는 길은 '목포는 항구다' 식당과 '매화슈퍼'가 있는 사이길로 가면 된다.

 

고온리 버스 종점에서 직진하여 조금가면 왼편으로 고온리어촌계 건물이 있는 삼거리이다.

 

직진하면 700m 방파제로 가는 길이고..우틀하면 구비섬과 응도와 농섬 바다로 가는 철문이 있다.

 

밀물 때가 아니면 상시 열려있다는 철문을 지나면 농섬 바다로 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있다.

오른편 건물은 한 때 미군의 사격통제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농섬 사격장으로 가는 고온리 들머리길..쿠니사격장의 이름은 미군이 고온리를

발음하기 쉬운대로 고온리를 쿠니라고 하여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멀어지는 고온리(매향리) 전경..

 

바다에 일터를 두고 있는 어민들이 트럭을 타고 갯벌로 나가고 있다.

멀리 보이는 섬은 응도, 또는 새섬라고 한다.

 

물이 빠진 갯벌에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

 

갯벌 사이에 있는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바닷물..

 

뒤돌아 바라본 매향리 전경..

 

응도 또는 새섬(왼쪽)과 농섬(룡도) 전경..

 

화성호 방파제 방향..방파제 끝에 궁평리가 있다.

 

매향리 방향..

 

갯벌에는 매향리 어민들 수십명이 바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일명 구비섬(거북섬)이라고 한다. 지금은 밀물 때 완전히 잠기는 섬이 되었지만..예전에는 거북이를

닮은 온전한 섬이였는데, 미군의 엄청난 폭격으로 섬의 형태는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왼쪽의 응도(새섬)와 오른쪽의 농섬(룡도).. 역시 미 공군의 폭격 훈련으로 본래의 자기 모습에서

삼분의 일은 사라지고 없게 된 응도(새섬)와 농섬(룡도) 전경이다. 

 

응도와 농섬까지 가는 길에는 이런 가교가 두곳 설치되어 있다.

 

갯벌밭의 물길 전경..

 

갯벌밭의 물골 전경..

 

갯벌밭 중간지대에 있는 모래사막 전경..

 

모래사막지대에서 뒤돌아 바라본 매향리 방향..

 

응도(새섬) 전경.. 이 섬의 이름은 갯벌에서 일하는 어민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응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새섬이라고 한다.

 

농섬(인터넷 지도에는 룡도로 되어 있음) 전경..

 

구비섬(거북섬) 전경..

 

경운기를 타고 갯벌로 작업하로 가는 매향리 어민부부..

 

갯벌 넘어 바위지대에서는 어민 십여명이 무엇인가 캐고 줍고 있다.

 

어민들이 주차해 놓은 트랙터 한 대..

 

농섬..매향리 주민들은 농(濃)섬이라 부르고.. 미군들은 룡도라고 부른다.

아마도 발음의 어려움 때문이였나 보다..^^

 

갯벌 물골길에 설치되어 있는 두번째 가교 전경..가까이 응도(새섬)가 조망되고 있다.

 

갯벌에서 작업을 하는 어민들..

 

응도, 또는 새섬이라고 한다.

 

응도(새섬)에서 바라본 농섬(룡도) 전경..

 

농선(룡도) 전경..

 

오늘 썰물 최저 높이는 68m.. 간조 시간대는 11시 55분..마지막 썰물지대로 가는 오토바이 한 대..

 

응도(새섬) 전경..

 

멀어지는 응도(새섬)..

 

가까워지는 농섬(룡도)..

 

점점 가까워지는 농섬(룡도)..

 

농섬 주변의 풍경..

 

농섬에서 바라본 응도(새섬) 전경..

 

농섬 전경..

 

농섬을 파노라마로..

일단 농섬(룡도) 위를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수십년간 폭격을 맞은 지표는 과연 어떤 모양일지..?

 

가는잎 그늘사초..

예상 밖으로 농섬(룡도) 위는 평면이 였고 전체적으로 가는잎 그늘사초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쑥과 같은 다년생 식물들이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나무 종류로는 아카시아와 개복숭아나무, 그리고 인공조림을 한듯한 대왕갈참나무도 심어져 있었다.

 

내체로 북쪽은 다년생 식물들로 조성되어 있고..

 

햇살이 좋은 남쪽 사면은 아까시아와 같은 나무들로 조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농섬 위에는 몇년전까지 누구인가 밭으로 조성하여 농산물을 제배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밭에 버려져 있는 물새알(?) 하나가 덩그렇게 놓여져 있다. 크기는 계란보다 조금 작다.

 

농섬 위에서 바라본 응도(새섬) 전경..

 

가는잎 그늘사초밭에 심어져 있는 대왕갈참나무 몇 그루..

 

농섬에서 바라본 동남쪽 사구지대 전경..

 

농섬 동남쪽 사면에 폭격 잔해물로 설치해 놓은 조각물..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는 폭격 잔해물 조각품..

 

허긴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농섬의 아품을 설명하고도 남는 것 같다.

 

굴꺼데기의 잔해물로 가득한 해변..

 

북쪽 해안 풍경..

 

다시 응도(새섬)으로 가며 뒤돌아 바라본 농섬 전경..

 

아직은 간조시간대가 많이 남아 있다.

 

농섬 뒤로 매향리가 흐미하게 조망되고 있다.

 

응도(새섬)까지 산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콘크리트 바다길..

 

응도(새섬)에서 잠시 망중한의 시간을 보냈다.

 

준비해간 보온병물로 따뜻한 길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생에 대하여 음미해 보았다.

 

우리는 왜 행복해지고 싶어할까..? 행복이라는 건 무엇일까..? 행복은 어떨 때 느낄 수 있는 걸까..?
를 생각했다. 그러다 행복과 낭만의 전제조건이 '자유로움'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자유가 
많아 질수록 행복해지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의 '행복', '자유', '낭만'에 대하여 알아보니 다음과 같은 해석이 달려 있다.

▶ 행복 :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 자유 :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 낭만 : 현실에 메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행복의 선행조건으로..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구는 
보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는 일상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자주 말했지만,
상대적으로 자유에 대해서는 특정한 상황에서만 언급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란 인간이 자신의 세계, 자신의 인생설계,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
한다. 인간은 여럿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이며, 개인 스스로의 결단
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자신의 존재를 개척하며 자신의 인생행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흔히들 자유는 기준없이 마음가는대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오해를 한다. 자유는 무계획과 통제하지 않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나는 퇴사를 한 이후에, 

더 절실히 느꼈다. 사실 내 인생에 계획이란게 없었다. 학교 시간표와 회사 스케출에 맞춰 살아

왔으니, 그런데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규칙적인 자기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나의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더 계획을 철저히 해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자유에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의지가 있어야 했다. 자유는 책임과 의지를 동반하기에, 책임없는 자유는 독이 된다. 
자유는 나의 기준이 확립된 상태에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가질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사고하면서 만들어진 신념위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지향하는 삶을 살아내는 일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유로운 
삶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걸까..?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
이 세상에서 나로서는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하기 싫어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을 때..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그 싫어하는 것에 마음 쏟지 않고 추구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면 나를 인정하고 
지키면서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은 본연의 나의 색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 인위적인 마음이 없었을 때..나는 더 자연스러워 진다.

 

나는 지금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까..?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유로운 삶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지금 살고 있는 시대에서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능력과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그 두가지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불행하거나 

어느 한 곳에만 얽매여 있다면 느낄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자유로운 사고를 지켜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경우도 온전히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자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하고, 좋은 것을 경험하는
것에 돈이 필연적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돈의 역할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 내가 지향
하는 자유 중 하나는 사고에 갇혀있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그리고 이렇게 텅텅 비어 있는 
갯벌을 혼자 자유롭게 걸어 가는 것이다..^^

 

한달에 한 두번씩 최대의 썰물 시간에 맞추어 매향리 구비섬(거북섬)과 응도, 농섬(룡도)을

나홀로 나그네되어 걸어 갔다가 밀물 시간보다 조금 일찍 고온항으로 되돌아 왔다.

 

밀물 때는 수평선이 되고..썰물 때는 지평선이 되는 매향리 앞바다..

 

분단의 우리 역사에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화성 매향리..

 

그러나 이제 미공군 쿠니사격장은 폐쇄되고 매향리 마을은 평화로운 마을로 돌아가고 있다.

 

반세기의 상처가 하루 아침에 치유될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역사의 유물로 남아 있는 쿠니사격장 관제탑..

 

옛 철조망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매향리에서 농섬까지의 거리는 대략 편도 3.5 ㎞, 왕복 7 ㎞

쯤이다. 소요되는 시간은 왕복 약 2시간쯤 되는데..조금 여유롭게 다녀 오려면 3시간은 잡아야 할듯..

 

한밤의 불꽃놀이 같은 이 사진은 흐릿한 농섬 언덕에 폭탄이 떨어져 생긴 화염의 빛살이 
부채꼴처럼 피어오른 사진작가 노순택씨가 앵글에 담은 폭격 장면으로 '고장난 섬'이다.

매향리 미공군사격장 철수를 주장하는 마을 어린이..

 

당시 농섬에 있는 목표물들..

 

고온리 마을 주차장 정자에서 준비해간 먹거리로 점심을 먹고 곧 바로 병점역으로 가는 아침에

타고온 버스(H105번)를 타고 이른 시간에 귀경하였다. 인근에 있는 매향리 평화마을 관람은

매화나무에 매화꽃이 활짝 필 때인 봄날에 다시 찾아 보기로 하고 매향리를 떠났다. 

 

2021/12/27 - 휘뚜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