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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산행기

고려시대 가릉(嘉陵)과 석실분(石室墳) 유물이 있는 진강산(鎭江山) 산행

by 휘뚜루50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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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가릉(嘉陵)과 석실분(石室墳) 유물이 있는 진강산(鎭江山) 산행

       2021/12/28 - 화요일 -


진강산(鎭江山)은 산 기슭에는 고려 희종의 능인 석릉을 비롯하여 가릉(嘉陵), 곤릉(坤陵) 등이 
있어 옛 도읍지의 면모를 엿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 이래로 유명한 진강목장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조 효종임금이 타시던 명마 벌대총(伐大總)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가릉(嘉陵)은 고려 24대 원종(1259-1214)의 왕비인 순경태후의 무덤이다. 순경태후는 장익공, 
김약선의 딸로서 고종 22년(1235) 원종이 태자로 책본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그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았다. 그리고 고종 31년(1244) 무렵에 사망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 그후 충렬왕이 
즉위(1274)하자 순경태후로 추존되었다. 무덤 주변의 석조물은 파괴되어 없어졌고 봉분도 
무너진 것을 1974년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하였다.

 

강화 능내리 석실분 (江華 陵內里 石室墳)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28호로 진강산 남쪽 자락에 
있는 고려시대 무덤이다. 무덤의 앞쪽에는 고려원종(1259~1274 재위)의 왕비 경순태후의 무덤
인 강화 가릉이 있다. 무덤의 구조는 지하에 만든 석실 위로 흙을 쌓아 올린 봉분이 있고 
그 바깥쪽으로는 난간석과 석수(짐승의 형상을 새겨 만든 석물)가 배치된 형태이다.

 

무덤 뒤에는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나지막한 담이 둘러쌓여 있다. 석실의 높이는 203cm로 
무덤의 주인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석실 규모와 은으로 만든 장식 등 출토 유물로 보아 
왕실과과 관련된 인물로 추정된다. 축조연대는 강화가 도읍이었던 시기를 크게 벗어
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진강산 기슭에는 고려 희종의 능인석릉을 비롯하여 가릉과 곤릉 등이 있어 옛 도읍지의 면모를
엿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 이래로 유명한 진강목장이 있던 곳으로 조선조 효종임금이 타시던 

용마 벌대총의 전설이 서려 있는 산이다. 높이는 443m로 인천광역시 강화읍 양도면 능내리,
삼흥리 ,하일리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넓고 강화도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다. 남쪽으로 마니산
(469m)이 있고 서쪽으로는 석모도의 해명산(320m)을 마주 한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덕정산
(320m), 혈구산(460m)이 있다. 봄이되면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아름다운 산이기도..

 

발산역에서 3000번 광역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만에 강화종합터미널에 도착하여 곧 바로

강화군내버스 41번을 타고 능내리 버스정유소에 내리니 오전 8시 15분이다. 

 

진강산 산행 들머리인 능내리 마을회관 전경..

 

능내리 마을회관 앞마당에 있는 큰 느티나무 한 그루..

 

큰 나무 안내문..

 

능내리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마니산 전경..

 

진강산으로 가는 길은 마을길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지어진 함석지붕 집들이 아직도 여러 가구가 남아 있다.

 

어린 날 함석지붕 안에서 지나가는 소낙비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다. 겨울날의 바람소리도..

때로는 경쾌한 음악소리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공포의 저주스러운 울음의 소리이기도 했다.

 

진강산이 눈앞에 보인다.

 

둘레길 안내 표시판을 따라 마을을 휘돌아 가니 새로 만든 미니 주차장이 있다.

 

가릉과 석실분을 찾는 고객을 위하여 마련된 미니 주차장인듯..

 

가릉과 석실분을 알리는 이정목..그런데 이상하게 푸른곰팡이가 피어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릉으로 가는 길..

 

가릉 전경..

 

가릉 시(詩)..

 

가릉 전경..

 

가릉 안내문..

 

가릉에서 조금 위쪽에 있는 석실분으로 가는 전나무 숲길..

 

석실분으로 가는 전나무 숲길..

 

강화 능내리 고려시대 석실분 전경..

 

강화 능내리 고려시대 석실분 안내문..

 

강화 능내리 고려시대 석실분 전경..

 

강화 능내리 고려시대 석실분 전경..

 

강화 능내리 고려시대 석실분 전경..

 

강화 능내리 고려시대 석실분 전경..

 

석실분 주변에 있는 말벌집 하나..이곳에서 정규 등산로를 따라가지 않고 석실분 뒤쪽 능선으로 갔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능선은 밤나무와 갈참나무 군락지였다.

 

첫번째 가파른 능선의 돌밭을 지나니..

 

유순한 능선이다.

 

그런데 좌측 계곡에서 올라오는 넓은 산길이 있다.

산길은 어느 개인 무덤까지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이곳은 사유지인가 보다.

 

무덤으로 가는 길섶에는 키 작은 음나무들이 군락지을 이루고 있다.

 

무덤을 살펴보니 부부 무덤인듯.. 통상 이렇게 합장을 하면 봉분을 하나로 통일하는데, 두 개이다.

 

봄 산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동박나무)의 겨울눈이다.

 

막다른 직벽이다.

 

요리조리 직벽을 올라가다.

 

이 직벽은 맨숀으로는 불가능하여 우회를 하다.

 

왠 벌집..? 자세히보니 직벽으로 올라온게 아니고 등산로로 와서 암릉으로 내려온것 같다.

 

벌통 주변에 있는 부처손 몇 송이..

 

화도면 방향..

 

일엽초(一葉草)군락지를 만나다. 일엽초는 와위(瓦韋), 검단(檢丹), 골패초(骨牌草), 낙성초(落星草)
라고도 한다. 고사리과에 속하는 상록 다년생초. 일본과 필리핀, 대한민국, 중국이 원산지로, 
바위와 나무에 서식한다. 크기는 약 10~30cm이다. 꽃말은 ‘즐거운 추억’이다.

 

일엽초속의 산일엽초, 다시마일엽초, 애기일엽초, 고사리잎 전체에 황갈색 털이 밀생하는 
우단일엽, 제주도의 그늘진 바위 틈에서 자라는 밤일엽, 잎의 길이가 50㎝에 달하지만 
너비는 1㎝도 안 되는 일엽아재비, 한라산 계곡의 바위나 큰 나무 표면에 자라는 
버들일엽속의 숟갈일엽, 버들일엽, 주걱일엽 등을 모두 일엽초라 일컫기도 한다.

 

식물전체를 말려 한방에서 이뇨제나 지혈제로 쓰며 임질 치료에 사용하기도 한다. 뿌리를 
볶아서 가루를 낸 것은 독사 등에 물린 상처에 쓰면 해독이 되어 효과가 좋다. 민간에서는 
차로 이용하기도 하며, 항산화와 면역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통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도면 곡창지대 전경..

 

마니산 끝자락에 있는 장곶돈대와 선수선착장 전경..

 

양도면과 석모도 해명산 전경..바다는 겨울 해무로 구분이 되지 않고 있다.

 

석모도의 산들과 외포리 뒷산인 국수산과 망산(또는 덕산) 전경..

 

양도면 전경..

 

마지막 암릉 석벽을 기어 오르다.

 

석벽 끝자락에 자라고 있는 반송 한 그루..

 

공식 등산로에 접선하다.

 

잠시 뒤돌아 길상산과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을 바라보다. 

 

겨울해무와 구름조각들이 몽환의 분위기로 이끌고 있다.

 

이곳 등산로 주변에는 해송(리기다소나무)과 반송나무들이 즐비하다.

 

석벽길..

 

석벽길에 있는 해송(리기다소나무)..

 

석모도의 해명산이 겨울해무에 떠 있다.

 

석벽길에 있는 바위 군락지..

 

줌으로 당겨본 석모도 해명산 전경..

 

석벽길에 있는 해송(리기다소나무)

 

뒤돌아 바라본 마니산 전경..

 

마니산 상봉과 선수선착장 방향.. 주문도, 아차도, 볼음도 정기 여객선이 운행되는 선수 선착장..

 

석모도의 해명산은 아직도 겨울해무에 갇혀 있다.

 

마니산을 줌으로 당겨보다. 강화도 마니산 정상은 469m인데..

정상석은 참성단 옆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465m에 정상목이 설치되어 있다.

 

양도면 전경..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반송 한 그루..

 

또 다른 반송 한 그루..

 

양도면 전경..

 

중간 쉼터..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처음 만난 이정목..급경사 지대를 따라 갓바위로 내려가 보았다.

 

갓바위와 아기장수의 전설..
옛날 공숙마을 어느 평법한 집안에 아기가 태여났는데, 태여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날 부모가
외출하고 돌아오니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 부모는 어느 날 이곳저곳을 울고불고 찾아보았지만 역시 
아기가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기가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방안에 들어 왔다.

 

이상하게 생각한 부모는 아기의 몸을 살펴보았다.아기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또 아기가 보이지 않았다. 부모는 예사롭지 않은 라기의 행적을 알아내기 위하여 진강산 정상까지 
올라갔을 때 진강산 큰 바위 밑에서 아기가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당황하였다. 부모는 못 본 체 집으로 돌아와 아기가 돌아오면 죽여버릴 계획을 세웠으나 죽일 
방법이 없었다.

 

아기를 죽이는 것은 당시 하민층에 장사가 태여나면 삼족을 멸한다는 통념에 따른 것으로 
남들이 알면 큰 벌을 받을까 조바심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스님이 '아기가 돌아오면 졸절구를 
덮어 씌루고 그 위에 챁 한 가머니를 올려놓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일러주며 스님의 말씀대로 
아기를 죽였다. 아기가 죽자 진강산 그 큰 바위는 사라지고 버섯같이 생긴 닷 바위가 솟아 올라 
아기의 죽음을 애통히 슬픈 모습으로 내려다 보고있다.

 

급경사지대로 되어 있는 갓바위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 보니 약 30여분 소요되었다.

 

쉼터에서 바라본 진강산 정상 방향..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시간이 흐를수록 겨울해무현상으로 점점 몽환적으로 변해가는 풍경들..

 

마지막 암릉을 돌아서..

 

올라서면 진강산 정상 직전의 쉼터를 만나게 된다.

 

쉼터 가운데 있는 나무가 내가 보기에는 야광나무 같은데..어느 블로그에서는 보리수나무라고 한다.

이리저리 보아도 나는 야광나무가 아니면 아그배나무인듯 하다.

 

쉼터에 있는 이정목..그리고 이 부근에는 벌대총(伐大總)이란 바위가 있었다.

 

진강산에서 난 용마 벌대총(伐大總)..
6년동안의 임진왜란이 끝난 후 청나라는 조선을 신하국으로 삼으려 하자 조선은 임진왜란 때
신세를 진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려 사양하자 청나라는 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처들와 
조선은 다시 전잴에 휘말린다.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전쟁은 한달여만에 끝나고 결국 청나라에 
굴복한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국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청나라의 간섭을 받고 조공을 바치며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게 된다.

 

이후 왕에 오른 효종은 항상 청나라에 못마땅하여 북벌의 기상을 품고 그에 필요한 명마를 강화도 
진강산의 진강목장에서 길렀다.효종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진강목장의 벌대총(伐大總)이다. 효종
은 강화유슈에게 특별히 임명을 내린다. "벌대총을 기름지게 잘 먹여서 항상 필요했을 때는 나한테 
올려 보내라" 별대총은 목장의 문만 열러 놓으면 삽시간에 궁에 달려가 효종을 맞이하고 했다고 한다.

 

고려 말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한반도에는 북방의 기마민족과 대적할 수 있는 말들을 제주도와
강화도 진강산의 진강목장에서 길려냈다. 당시 경기 우도에는 진강목장 외에도 길상목장, 북일
목장, 신도목장, 매도목장, 등 5곳에서 1500여 필의 말을 사육했으며 강화는 목장으로서 유일한 
입지조견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건국 직후부터 마장의 축조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당시 마장은 국가를 적으로부터 방기하기 위하여 말의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태종은 
"강화의 땅으로 온전히 목장을 만들 수 있다면 제주 못지않은 것이다."라고 확고히 강화의 마장 
축조에 적극적이였으며 효종 역시 목장을 확장하고 "태조께서 타시던 팔준마 중 한마리가 이곳 
진강목장에서 나론 것"임을 강조하였다. 

 

진강목장은 양도면 삼흥리, 하일리, 조산리, 도장리,길정리 전역에 걸처 진강산을 중심으로 축조
되었으먀 말의 물을 먹이던 용정(龍井)., 말이 죽으면 묻었던 용팡골, 용마가 났다는 용천(龍川)들
이 지명으로 전해지며 진강산 정상의 큰 바위에는 아직도 벌대총의 말 발굽자국이 선명하게 
전설로 남아있다. (진강산에서 난 용마 벌대총(伐大總) 안내문에서..)

 

진강산(鎭江山, 443m) 정상..

 

진강산(鎭江山, 443m) 정상에서..

진강산(鎭江山, 443m) 정상에서..

 

진강산(鎭江山, 443m) 정상에서 본 석모도의 산들..

 

진강산(鎭江山, 443m) 정상에서 본 외포리 방향의 국수산과 망산(덕산), 그리고 별립산..

 

진강산(鎭江山, 443m) 정상에서 바라본 석모도와 석모대교, 그리고 망산(덕산) 방향..

 

외포리 방향의 국수산과 망산(덕산) 방향..

 

양도면과 선수선착장 방향..

 

마니산 방향..

 

길상산과 정족산 방향..

 

혈구산 방향..고려산이 살짝 머리만 보인다. 퇴모산과 낙조봉이 키재기를 하고 있다.

 

줌으로 당겨본 강화 들머리에 있는 문수산 전경..

 

석모도의 산들과 외포리 국수산과 망산 전경..

 

별립산과 혈구산을 파노라마로..

 

진강산(鎭江山, 443m) 정상..

 

정상에서 내려다 본 쉼터 전경..

 

외포리 방향.. 석모대교는 겨울해무로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산문마을 전경..

 

진강산 정상에 있는 산불무인감시카메라..

 

경고문..

 

삼흥리로 하산하는 급경사 길..

 

테크 계단길..

 

조망처..

 

조망처 부근에 있는 반송 한 그루..

 

하산길과 석모도와 망산(덕산) 전경..

 

뒤돌아 바라본 진강산 전경..

 

급경사 두번째 테크 계단길..

 

유순한 능선길..

 

커다란 반송 한 그루..이곳 부근에서 준비해간 먹거리로 조금 이른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중에

해병대 장병 두 명을 만났는데..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하기에 30분 정도 걸린다고 알려 줬다.

 

옛 헬기장 삼거리에 있는 이정목..

 

뒤돌아 바라본 진강산 전경..

 

해병대 장병과 해여진지 20여분만에 그네들은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역시 강철 해병들이다..^^

 

암릉에 설치되어 있는 고마운 밧줄..

 

민가는 아직 멀었는데..갑짜기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식용개를 키우는 곳인듯..

 

허물어진 성벽길..

 

삼거리 이정목..나는 하일로로 내려갔다.

 

능선길을 버리고 좌측 편안한 길을 선택하였다.

 

내려와서보니 갈멜산기도원 입구이다.

 

하우고개 버스 정유소에서 10여분 기다려 강화종합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강화터미널에서는

곧 바로 3000번 광역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만에 편안하게 발산역에 도착하였다. 그동안 강화도

를 헤아릴 수 없이 다녀 가면서 진강산은 오늘이 처음산행이였다. 늘 관심밖의 산이였는데..막상

진강산을 오르고 내리며 보니 사계절 언제 어느 때  찾아도 좋을 그런 산이였다..^^

 

2021/12/30 - 휘뚜루 -